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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 [陳列]


정갈하게 단추를 잠그고 오른 손은 허리에 왼손은 머리 위 왼쪽 이십도 방향으로 곧게 펴서  드는 거야. 허리는 꼿꼿하게, 오른 쪽 골반을 살짝 올려. 양쪽 발은 이십칠 센티미터 간격으로 벌려주는 것이 적당해.

어디나 기본도 없는 녀석들이 있는 건 마찬가지야.
오늘은 신참 하나가 조명아래 얼굴이라도 내밀려고 버둥거리다 면접관이 지나가니
‘나를 가져주세요. 나는 나긋나긋해. 발수건으로 써도 좋아요. 나를 가져주세요. 먼지더미에 던져둬도 불평하나 없을 거예요.’
머리를 조아리며 구걸해서 값싸게 팔려갔거든.

그런 지루한 표정 짓지 마. 난 일부러 남은 거니까.
팔짱을 낀 쭈글쭈글한 얼굴로 슬쩍 곁눈질하는 면접관들 앞에서 매번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엎드리긴 싫거든. 이래봬도 작년엔 메인 윈도우에 전시될 뻔 한 몸인데 자존심 상하게 ‘입어보고 마음에 들면’이 말이나 되니?
이봐, 난 대형 백화점에 전시될 거야. 여기 영어로 적힌 상표 보이지? 일류 브렌드란 이런 거야. 저기 한글로 적힌 중소기업 상표랑은 차원이 달라.

그런데 당신, 아까부터 뭘 그렇게 열심히 만드는 거야?
얼른 마네킹이나 가져와. 메인 윈도우도 깨끗하게 닦아둬. 내가 제일 돋보여야 하니까.
뭐야, 나 주려고 그렇게 열심히 만든 거였어? 뭐라고 적은 거야?
재 고 상 품 특 가 판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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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져주세요'를 퇴고한 시..
많은 조언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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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란 녀석
꽃잎 같은 날개에
온갖 밝은 것들을 다 지고서
괜한 엄살인 척 가볍게 끙끙대고 있지
작은 바람에 끌려 다니는 척
태풍을 만들려고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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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릇하게 튀겨진 만두를 입 속으로 천천히 넣어 보렴
그런 다음 혀의 움직임을 생각하며 턱을 움직여 봐
그러면 느끼게 될 거야.
우리의 작은 일상이 생각이 생명이
잘게 찢어지고 흩어져 목구멍으로 흘러가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를
꾸물거리며 발버둥 쳐도 혀의 느슨한 비웃음조차
전혀 이겨내지 못한다는 것을.

아가야, 너는 고통스러운 동물의 비명을 식물의 눈물을 땅의 주검을
씹으면서 달근하고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하겠지.
그러나 명심하렴.
끝끝내 순응하지 않는 작은 덩어리에 목은 사레가 걸린다는 것을
모두가 침에 범벅이 된 채 흐무러져 소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너는 고통스러운 잔기침 소리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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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특별한 느낌도 없이
실핏줄처럼 작은 힘으로 구석구석을 쥐어싸고 있어
날카로운 별똥별 자락에 손이 베어
한참동안을 지릿한 감각에 물들기 전엔 느낄 수도 없을 만큼
사라지고 나서도 없다는 것을 자꾸만 잊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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