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bluelimn 2015.04.17 18:49

대구에서 아침일찍 출발하여 버스를 타고 단양으로 갔다.

단양으로 바로가는 버스가 없어 안동을 경유해서 가야 했다. 만약 직행이 있었다면 나는 엄청난 사고에 휘말려 크나큰 고통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당일치기 일정을 소화하려면 아침일찍 버스를 타야 한다. 3월의 아침은 아직 어두워 봄의 시작이라기보다는 겨울의 막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되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같이 간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가다가 잠이 들었는데 배에서 긴박한 신호를 느끼며 잠에서 깼다. 안동까지는 하니간 가량 더 가야 했다. 고속도로에서 세워달라고 하기도 힘든 상황이라 온 몸의 신경을 한곳에 집중하며 라마즈 호흡법을 시작했다.진통은 서서히 극에 달하여 더이상 참기 힘든 지경을 넘어설 때 다시 잦아들곤 했다.더이상 버틸 수 없어 고통의 끈을 놓아버리기 직전 버스가 안동에 도착했다. 걷는 것이 너무 힘들어 차라리 고통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뛰었는데 그 짧은 시간이 버스에서의 한시간보다 더 큰 고통의 액기스였던 것 같다.

바로 화장실로 뛰어가 속을 비웠는데 당시만 해도 안동의 버스정류장 화장실은 그야말로 푸세식이었다. 사로에 들어가면 발판아래 구멍이 있고 그 구멍아래 공간은 모든 칸을 아우르며 하나로 합쳐져 있었다.그럼에도 세상 어디보다 상쾌한 기분을 나에게 안겨준 그곳은 안타깝게도 휴지가 없었다.밖에도 없었다. 안에는 당연히 없었다.아직도 단양에 놀러갔던 기억을 하면 배가 아팠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심각한 고민에 빠진 나는 다행이 옆칸에 들어온 모르는 사람에게 휴지를 얻어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단양에 가서 버스를 타고 단양8경을 보러 갔다. 단양에 가면 8가지 꼭 봐야하는 절경이 있다는데 막상 보니 저게 좋다고 말하는 것이구나 하는 정도지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원래 감동은 아는 만큼 느껴지기 마련이니 아무런 조사도 없이 갔던 나에게 큰 눈요기가 되지는 않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8경 중 석문이라고 무지개처럼 아래가 뚫린 바위가 있는데 그 위로 올라가본 것 같다.그리고 전망대 앞으로 가 이름을 쓰고 왔다.

나무 벽에 칼로 새겨 오래오래 남긴 것이 아니라 먼지가 잔뜩 낀 금속 손잡이에 손가락으로 이름을 썼다. 그런데도 왠지 문화재에 이름 새기고 오는 것처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좀 더 기억을 파고 들면 나올만한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 그냥 이만 줄이는 것이 좋겠다. 군에 입대하기 전 마지막 여행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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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당일치기  (0) 2015.04.17
posted by bluelimn 2011.12.18 14:24
화석루를 갔다가 황도에 있는 공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곳에서 생산라인 체험을 3시간 하는 것으로 그 날의 공식 일정은 끝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중에 이벤트가 기습했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아무리 달려도 시속 30Km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rpm은 계속 올라간다. 주변에서 아무리 빵빵대고 차에서 고무타는 냄새가 나는데도 운전수는 신경도 쓰지 않고 여유롭다. 5000 rpm까지 올라가니 차에서 연기가 난다. 같이 타고 있던 사람들은 이미 패닉!! 결국 길 가운데서 연기나는 차가 멈췄다.
운전수는 대륙의 대인배 인정.. 연기가 나고 있는데도 본네트한번 열어볼 생각도 않고 시동 몇번 시도하더니 길가로 옮겨야 하니 차를 밀란다. 차를 밀면서 뒷차가 나를 들이받는 상상을 했다. 고속도로 터널 안에서...


40분정도 기다렸을까 드디어 견인차가 왔다. 이제 살았구나 하고 안도를 하고 차에 올랐다. 터널 끝이 거의 눈에 보일 것 같이 가까웠는데 터널 끝이 고속도로가 끝나는 곳이었다. 통행료를 내고 정비소까지 가는건가? 하는 순간 바로 견인차가 길가에 세워버린다. 나중에 알아보니 견인비가 없어 더이상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견인차가 들어올린 차 안에서 한참을(30분정도) 기다린 끝에 작은 차 한대가 왔다. 2M정도 되는 끈으로 차를 묶더니 끌고간다. 그런데 앞차 무게가 더 작아서 휘청휘청 하면서 끌고간다. 중국에서 사고의 위협을 여러가지로 많이 느꼈다. 아.. 한국은 그래도 안전한 편이구나..

 공장에 도차하니 3시간 일정이 1시간으로 줄어들었다. 일정을 끝내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중국에서 처음 먹는 중국식 음식.. 입맛에 맞을까..

 음식의 재료들을 직접 볼 수 있게 해두었다. 가끔 물고기가 뛰어올라서 옆 수족관으로 이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의외로 입맛에는 맞았다.

장난으로 개구리와 매미 튀김을 주문했다고 흘렸더니 신경쓰여서 많이 못 먹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매미 번데기 튀김은 정말이지 너무 리얼해서...

앞에 와인잔 비스무리하게 생긴 저것이 만능 술잔... 저걸로 맥주먹고 곡주먹고 다한다. 서양에선 평등을 중시하며 원탁에 앉았는데 중국은 원탁에서 철저한 자리순서가 있다.
우선 출입문 반대편은 초대한 집단의 장.. 그리고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자리는 초대한 집단의 이인자.. 일인자의 눈치를 보며 지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인자의 오른쪽은 초대받은 사람의 장.. 새롭게 나오는 음식은 모두 초대받은 사람 앞에서 시작된다. 그 다음부터는 지그재그로 앉는다고 하는데 정확한 순서는 모르겠다.

 저녁식사 후 발 마사지를 받고 다시 술집으로 갔다. 투다리.. 중국에도 투다리가 있다. 한국에선 일본식 꼬치구이, 중국에선 코리안 레스토랑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아무튼 별거없는 꼬치들이 똑같이 나온다. 칭다오 맥주는 역시 맛좋음.

얼큰하게 술이 떡이 되어서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에 호텔로 돌아가서 5시30분에 기상.. 둘째날은 여기저기 공장 견학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막간을 이용해서 갔었던 짝퉁시장..
일단 부르는 값의 반이 소비자가라고 한다. 그 반값에서 가격을 더 내리는 것은 흥정하기 나름.. 부르는 값의 반도 흥정하지 못하면 당신은 호구!!
그곳에 가면 외국인들을 위해 숨겨진 방을 보여준다. 앞에서 전시한 것은 저급이고 숨겨진 방에 좀 더 고가의 물건들이 있다. 심지어 흥정도 많이 안해주려고 한다. 그래도 결국 반은 내릴 수 있다.

짝퉁이라는 게 찝찝해서 사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질이 크게 나쁜 것도 아니고 해서 길거리에 파는 물건 싸게 산다고 생각하고 몇개 사올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략 가격은 가방은 3~5만원대 허리띠는 6천~만5천대.. 시계는 가격 못물어봄..

 그러고나서 저녁에 협력업체 총경리(우리로 따지면 사장쯤 된다)가 저녁 같이 하자고 해서 전날 갔던 곳보다 큰 음식점으로 갔다.. 상호간의 예의를 생각해서 사진은 없음.
그런데 전날 장난으로 말한 매미튀김이 진짜로 나왔다. 고담백 중국음식이라며 권한다. 그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두세개씩 먹음............
맥주로 시작했는데 처음 6잔은 무슨 법칙처럼 계속 원샷했다. 그후 '빼주'달라면서 지역술인 랑야타이를 시켰다. 권하는대로 받아마시는게 재밌어 보였는지 가득 채워놓고 원샷하란다. 물론 자기는 안마셨다. 원샷해대니 서빙하던 직원들도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봄.
원래 중국 술문화가 조금씩 마시고 계속 첨잔해서 잔을 가득 채워놓는 문화라 한다. 그런데 독한 술로 소주처럼 원샷해대니 그자리에서 골로 가버렸다. 살아남은 사람은 그 후 다시 투다리 갔다던데 난 이미 몸과 혼이 분리되어 있었다.

다음 날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폭주족 오토바이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내내 숙취에 시달렸다. 무슨 술은 숙취가 없고 무슨 술은 심하고 말이 많은데 무슨 술이건 섞어먹고 많이 먹으면 다 숙취 있음!! (다만 소주는 숙취가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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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luelimn 2011.12.05 22:55
11년 11월 21(수)~23(금) 2박3일 일정. 회사 공장 순회함.

21일 수
* 새벽 5시 15분 인천공항 리무진 버스 탐(성남 모란역 : 12000원)

 

(버스비는 어디서 타나 동일한 가격이다. 비행기 시간은 8시 45분, 7시에 공항에서 만나기로 함. 6시 30분에 도착.)

* 동방항공을 타고갈 생각이었으나 8시 출발 비행기밖에 없어 airchina(에어차이나)를 예약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탑승 위치가 인천공항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가서 무인열차타고 가서 다시 마지막까지 간 다음 내려가서 탑승할 줄은 몰랐다. 어머니 선물 하나 사고 바로 갔는데도 겨우겨우 탑승에 성공했다. 잘못하면 가기도 전에 버려질 뻔 했다.

* 관광으로 간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견학삼아 간 곳이라 일정이 너무 빠듯했다. 게다가 중국은 처음이라 예의에 어긋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진은 많이 못찍었다.

(중국은 붉은 색과 금색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눈에 잘띄는 붉은 계열의 여행가방을 선택했다면 중국 갈 때는 조심해라. 다들 그거 가지고 다닌다.)

(중국과 한국 사이에 밀거래가 많은지 가방을 일일이 개가 확인하고 다녔다. 귀엽게 생겼어도 일할 땐 카리스마가 철철 넘친다. 한국에서도 중국발 비행기는 일일이 탐지견이 검사를 하는데 한국는 그냥 귀엽게 생겼다. 그런데 찾으라는 마약은 안찾고 과자냄새에 환장한다. 그녀석 사진은 없음. 이름은 '실버'라고 들었음)















*9시(현지시각)에 중국 도착(한국이랑 1시간의 시차가 있음) 

* 칭다오에 도착해서 근처 공장 한번 구경하고 점심먹으러 감(한식당)
 

 고급스러운 한식당에 갔는데 유명한 곳이란다. 메뉴는 그냥 한국 식당 아무데나 가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인데 가격도 한국이랑 거의 같다.(중국 물가를 생각하면 무지하게 비싸다.)
맛은 한국 식당에서 먹는 맛 그대로..(가까운 나라여서 그런지 한국의 식당에서 사용하는 재료들이 중국산이 많아서 그런지 한국 아무 식당에서 먹는 맛이랑 똑같았다.

* 식후에는 경치구경이 빠질 수 없다.
* 먼저 요트 경기장으로 갔다. 
 

올림픽 경기장으로 쓰였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가며, 가장 먼저 안내한 관광지인 요트 경기장엔 아무것도 없었다.
역시 이런 건 행사가 있을 때 와야한다.

* 다음으로 간 곳은 화석루
 

장개석이 별장으로 사용했다던 화석루. 유럽식의 양식을 그대로 본따서 만든 축소 모형 같은 건물이다. 경치는 일품이나 중국의 건물이라기 보단 모형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어 실망했다. 아기자기한 것은 좋은데 땅 넓고 사람 많은 중국이라면 별장도 끝없이 펼처진 거실이 있을 줄 알았다..ㅎ 아무튼 일정이 바쁘다고 5분만 보고 나오라고 해서 초점 맞출 시간도 없었다. 이번 중국 일정은 무지하게 바쁜 일정이었다는 것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리고 칭다오 일정 중 즐거운 일정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이어진 험난한 일정은 시간날 때 다시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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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luelimn 2009.02.15 23:16
내연산이 좋아 내연산에 가려고 아침부터 서둘렀다.
그런데 어찌어찌하다보니 8시에 학교에서 출발하고 9시에 터미널에 도착하니 배가 고파졌다.
대강 편의점에 들러 아침을 먹고 9시 45분 차를 타고 경주를 거쳐 포항 터미널로 향했다.
12시쯤 됐을까.. 포항에 도착해서 정보센터에 물어보니 500번을 타고 가란다.
정보센터에서 하는 말이니 굳건히 믿고 탔더니 한바퀴 돌고 다시 터미널로 간다;;;;;;
뭐지???????
결국 내연산 포기하고 택시를 잡아타고선 해수욕장에 가서 바다나 보자고 마음먹었다.
택시 기사가 말하길 어느 정신나간 사람이 500번타고 내연산 가라고 말하냐고 묻는다;;;;;;
아무튼 송도해수욕장 가자고 하니 그쪽 망했다고 북부 해수욕장 가란다.
이러저러 해서 간만에 바다보고 오니 기분은 훨 좋아졌다.
덤으로 죽도시장에 들러 회도 한접시 먹고왔다. 횟값+명당2000원의 추가요금을 받지만 뭐... 나름 먹을만 했다.
아쉽지만 사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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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luelimn 2009.02.01 20:35
박물관이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막상 들어가 구경할랬는데 문이 닫혀버려서 못봤다. 여행의 진정한 매력은 아무런 걱정 없이 그냥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
다시 여행 좀 다니고 싶다. 일상에서 가능한 먼 곳으로..


'크게한걸음 > 06.02 호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주  (1) 2009.02.01
posted by bluelimn 2008.05.04 00:16
노숙을 해서인지 일찍 출발하게 되었다. 이미 대구 근처라 별로 힘들 것도 없었지만 도착지가 가까워지니 발이 가벼워졌다. 가는 도중에 안경을 떨어뜨려서 거의 망가지기도 했지만 그날만큼은 큰 사고없이 대구에 도착했다. 도착했을 때 11시도 채 되지 않았다. 마지막인데 남은 돈이 꽤 있어서(마지막 날에 시원한 맥주나 한잔 하려고 아껴뒀었다) 아침겸 점심은 사먹기로 했다. 도로변에 있는 아무렇지도 않은 음식점에 순두부 찌개를 먹었는데 꽤 감동적인 맛이었다. 같이 목욕도 하고 술도 한잔 하고 노래방에서 즐기다가 집에 가............ㄹ 예정이었으나 너무 이른 시간이라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우선 목욕탕을 찾았는데 잘 보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그날이 화욜이라 대부분의 목욕탕이 쉬는 날이었다. 어째서 같은 날 똑같이 쉬는건지..
다 같이 목욕탕이나 가고 싶었는데 그게 무산되자 무준이가 계속 집에 가고싶다고 보채기 시작했다. 아...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갈 때는 체력이 빵빵하니 3일잡고 돌아올 땐 엉금엉금 기어서 4일로 하자고 했건만 돌아올 때 무리했음 하루만에, 널널하니 이틀만에.. 그것도 오전에 도착해버렸으니 갈 곳도 없고 할 것도 없었다.
뭔가 특별한 뒷풀이를 원했지만 그날은 정말 피곤했는지 다들 집으로 흩어져버렸다.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마치고 나니 몸이 완전 나른해졌다. 5일만에 아들 보신 어머니의 소감은 '살은 안찌고 다리면 더 굵어져서 왔네'였다.

스무살.. 뭘 해도 좋게 봐줄 수 있는 풋풋한 시기여서 가능한 여행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가자면 갈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좋게 봐주는 사람은 많지 않을듯..

우리가 대구에 도착한 날 저녁부터 그해 여름 내내 비가 내렸다. 여름 내내 거의 하루도 쉬지않고 비가 내린 해는 내가 기억하는 한 그때 뿐이었다. 한여름에 보일러를 틀기도 했을 정도였으니 일찍 여행을 다녀온 것이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문득 포항에서 경주까지 같이 갔던 대학 팀이 생각났다. 그들의 전국일주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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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luelimn 2008.04.18 16:32
좁고 모기가 꽤 있었지만 따뜻한 방에서 깊이 잠들었던 우리는 멀리서 들리는 신음소리에 잠을 깼다. 조금씩 정신이 깨어나자 그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신음소리가 아니라 울음소리라는 것을 느꼈다. 그것도 흐느끼는 것이 아니라 통곡을 하는 소리였다. 소리는 한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통곡 소리가 한데 섞여있는 울림이었다.
예상치못한 상황을 만나면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욱 커진다. 살짝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큰 강당에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통곡을 하며 울고 있었다. 게중엔 무릎을 꿇은 상태로 제자리에서 계속 뛰는 사람들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은 독실한 믿음이라기보다 광기로 보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기도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종파가 있단다. 하지만 잘 모르고 보는 사람에겐 두려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잘못해서 우리를 끌어들이려고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인사도 없이 서둘러 도망쳐나왔다.

포항을 떠나려는데 재현의 자전거가 또 말썽을 일으켰다. 이번엔 다른 바퀴가 펑크나버린 것이다. 이른 아침은 아니었지만 주말 오전이라 수리점을 세군데 돌아다녔지만 없었다. 결국 수리점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서 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싸게 중고자전거를 샀지만 싼게 비지떡이라고 자꾸 고치니 수리비가 자전거 가격보다 비싼 것 같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구룡포로 갈 때는 해안도로를 따라 힘들게 갔는데 올 때 31번 국도를 타니 단숨에 지나갔다. 반나절 고생하며 걷고 달리며 갔던 길을 40분만에 가로질렀다. 포항을 지나칠 때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 무리가 있었다. 복장을 제대로 갖추고 안전모에 지도며 잡다한 것들을 다 갖추고 출발한 자전거여행 팀. 자전거 뒤쪽엔 대학 깃발까지 달고 달렸는데 포항대학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포항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세명으로 이루어진 그 팀은 포항을 시작으로 전국일주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포항에서 경주로 가는 7번 국도는 아주 평탄하고 거의 평지에 가까울 정도로 완만한 내리막길로 되어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엔 최고의 길이었다. 다만 곳곳에 동물들의 사체가 있었고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재현이를 기다리느라 시간이 조금씩 지체되었다. 빠른 속도로 계속 달려도 바람의 저항 때문에 생각처럼 속도감을 즐기기는 어려웠다. 맞바람때문에 숨쉬기도 힘들었고 시야도 조금씩 흐려졌다. 그렇게 열심히 달릴 필요는 없는 길이었지만 적은 노력으로 많이 갈 수 있다는 장점을 놓치고 싶지 않아 열심히 달렸던 기억이 난다.

경주에 도착할 무렵엔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경주에 도착하여 공원에 잠시 짐을 내려놓고 있는데 포항에서 만났던 자전거 여행객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신 앞서 달렸는데 길을 잘못 들어섰는지 우리보다 늦게 도착했다. 배가 고팠던 우리는 회비를 털어서 뻥튀기를 사먹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일었으나 돈을 남겨서 뒷풀이로 시원한 맥주한잔 하기로 약속하고 욕구를 버텨냈다.
경주는 벗꽃놀이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자전거 타기도 좋은 곳이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기거나 미니바이크를 빌려서 타기 좋은 곳들이 많이 보인다.

비가 잦아들자 우리는 다시 대구를 향해 전립선에 고통을 가했다. 그날은 하루종일 소나기가 내리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경주를 지나면서 재현이는 기어 조절방법을 터득하여 더이상 뒤쳐지지 않게 되었다. 비가 와서 국도는 더욱 위험해 보였다. 커다란 트럭들이 옆을 지날 때마다 트럭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달리다보니 무준이가 보이지 않았는데 알아서 잘 오겠지 하며 속도를 조금 줄여 달렸다. 한참이 지나도 따라오지 못하자 다 같이 멈추어 무준이를 기다렸다. 그때 무준이는 빗길을 달리다 넘어졌고 바로 옆을 트럭들이 질주하는,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꽤 충격적인 경험이었는지 그 이후부터 무준이는 어서 집에 가고싶다는 말만 반복했다.

내 자전거는 선배에게 공짜로 받은 자전거인 만큼 제대로 관리가 되어있지 않은 자전거였다. 기어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는데 빗물이 들어가자 더욱 뻑뻑해졌다. 힘이 들었지만 기어조절 없이 달리기엔 무리가 있는 도로라 억지로 힘을 줘서 기어를 변속하자 결국 부러져버렸다. 마침 마을이 보여 자전거를 수리하고 가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곳이 영천이라고 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그곳의 중심가로 보였는데 반갑게도 자전거 수리점이 보였다. 자전거 전문점은 아니고 손수레며 농기구 장비들을 모두 다루는 곳이었는데 출장수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무지 기뻤다.
 
오른쪽 기어 수리비는 8천원. 안이 녹슬어 있었다고 한다. 점심을 먹긴 했지만 무더웠던 그날 팥빙수가 너무 먹고 싶어 근처 제과점을 찾았다. 역시 팥빙수라면 제과점에서 찹쌀떡을 넣어주는 것이 진짜 아니겠어? 빙수를 하나씩 먹고나니 사람들 맛보라고 놔두는 빵이라면서 빵을 잔뜩 줬다. 맛있게 먹으니 몇개 더 줬는데 결국 배가 불러서 다 먹진 못했다. 영천의 인심은 기분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영천을 벗어나 계속 4번 국도를 따라갔다. 가는 길에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지만 쉴만한 곳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가기로 한 우리는 비상등 없이 어두운 날 자전거를 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지 실감했다. 날이 저무니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길에 가로등이 있긴 했지만 꽤 멀리 떨어져 있었고, 비가 온 다음이라 안개까지 껴 있었다. 지도가 없던 우리는 안내 표지판에 의지하여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도 하면서 경산에 도착했다.(그곳이 경산이 맞는지 기억이 확실치 않다.)

경산에는 마땅히 잘만한 곳이 보이지 않아서 역사 안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늦은 밤이긴 해도 조금 더 달리면 대구까지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만에 대구까지 가는 것은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하룻밤을 더 지내기로 했다. 역에는 노숙자 너댓명과 가출 청소년으로 보이는 애들이 두어명 있었다. 그곳에서 서로 이야기도 하며 밤을 지내려고 했는데 막상 자려고 하니 잠이 오질 않았다. 결국 잠을 포기하고 TV도 보고 이야기도 하면서 밤을 새기로 했다.

그렇게 밤이 흘러 새벽 2시가 되자 역무원이 다가왔다. 역을 닫아야 하니 나가라고 한다. 예상치못한 상황이었지만 말 잘듣는 우리로써는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영천에서 구입한 5백원짜리 우의를 입고 있으니 꽤 따뜻했다. 벤치에 지붕이 있어 비는 피할 수 있었다. 그곳에 쭈구리고 앉아 살짝 잠이 들었다. 그땐 스무살 때였으니 그랬지만 지금은 비오는 날 노숙하라고 하면 힘들 것 같다. 꽤 힘든 상황이었는데 집이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푸근했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 끝나가고 있었다.
posted by bluelimn 2008.04.01 16:06
도시 중심가를 벗어나 다시 도로를 달린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걱정이 되어 꿀호떡과 라면을 사서 짐칸에 달았다. 일반적으로 다리에 부담을 적게 주기 위해 베낭을 메고 자전거를 달리는데 우리는 덥기도 하고, 미약한 우리의 가랑이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짐은 싣고 다녔다.

포항시내를 벗어나 31번 도로를 타고 달리던 우리는 925번 도로를 만나 그 길을 따라갔다. 해변을 따라가면 오르막이 완만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 길을 선택했는데, 해안도로의 최대 약점은 평지가 없다는 것이다. 오르막과 내리막길만이 계속 이어졌다. 길게 이어진 내리막길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다리는 움직일 필요도 없이 상체를 숙이고 드는 것을 이용해 바람의 저항만으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내리막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만큼 올라가야 하는 지극히 당연한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했다. 925번 도로를 타는 동안 재현이가 계속 쳐졌고 나머지 3명은 속도를 즐기며 한참 가다가 재현이가 도착하면 다시 가버리기를 반복했다.(생각해보면 재현이는 쉬지않고 계속 달린 셈이다.)
평지랑 다르게 오르막이 많은 지형에서 자전거로는 멀리가지 못한다. 나중엔 오르막을 만나면 그냥 포기하고 걸어다녔다. 옆을 지나가던 스쿠터족이 부러워 스쿠터에 줄을 묶어 자전거를 끌고가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구룡포에 도착한 것은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아직 해가 떨어지진 않았지만 계속 달리다가 길에서 자게되는 경우는 피하고 싶었다. 잘 곳을 돌아다니며 '아무도 없는 학교에서 자는 것이 어떨까'하고 생각했지만 춥기도 하거니와 경비원이 있어 그냥 들여보내주진 않을 것 같았다. 우린 첫날을 생각하며 다시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커다란 성당이 있긴 했지만 성당은 어쩐지 외부로부터 굳게 닫혀진 기분이 들어 교회를 찾아갔다. 마침 아주머니 서너명이 나오고 있었다. 주말이라 집이 멀리 있는데 교회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마침 만났다며 하느님이 정해주신 뜻깊은 인연이라 믿고 싶어했다. 바로 앞 국밥집을 교인이 한다며 국밥을 사주려고 했는데 마침 문을 닫으려고 정리중이라 그곳에서 그냥 라면을 끓여줬다. 소금기 없는 빵만 먹다가 라면에 열무김치를 먹으니 살 것 같았다.

교회에는 합창단의 단복을 보관하는 작은 방이 있는데 그곳은 보일러 불도 들어온다며 그 방을 내어줬다. 다음날 새벽기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도 없는 교회를 우리에게 내어준 친절이 고마웠다. 그날은 그렇게 피곤한 몸을 뉘었다. 날씨가 흐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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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luelimn 2008.03.28 02:31
포항에 일찍 도착한 우리는 목적지인 포항에 도착한 기념으로 짜뽜게리를 해먹었다. 수퍼마켓에서 5개를 구입한 우리는 바로앞에 있는 평상에서 해먹을 생각이었으나 아지매가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해서 쫓겨났다. 놀이터에서 물을 구하고 길거리에서 라면을 끓이는 우리가 거지같았지만 그제껏 먹어본 짜뽜게리중 최고의 맛이었다. 축구하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병원 대기실에서 축구를 보고나니 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병원에서 잠을 잘 생각이었지만 대기자들 때문에 제대로 자긴 힘들겠다고 판단하여 잘만한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때 문득 생각난 것이 파출소였다. 역 바로 옆에는 파출소가 있었고 파출소엔 당직실과 남는 방이 한두개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우리는 파출소에 들어갔다.
그곳엔 두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한 명은 마른 체형에 조금 신경질적으로 생겼고, 다른 한명은 살이 좀 있었다.
잘 곳이 없어 하룻밤 재워달라고 하자 마른 사람이 가출한거 아니냐 무슨 나쁜짓하고 다니는거 아니냐면서 신경을 긁었다. 좀 지나치다 싶었는지 뚱뚱한 사람이 일단은 신원조회를 해봐야 하니까 신분증을 달라고 했다. 쭈뼛거리며 신분증을 건네자 마른 사람이 신원조회를 했고, 뚱뚱한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재현이와 같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란 것을 알게되었다.
그러나 갑자기 친한 척을 하면서 음료수와 컵라면을 내어줬다. 우린 이미 저녁을 먹어서 배가 부른 상태였지만 무쟈게 배가 고팠던 사람인양 맛있게 먹어줬다. 그러자 흐뭇해하며 아는 여인숙이 있다면서 그곳에서 하룻밤 지내라면서 전화도 해주고 숙박비도 대줬다.
그다지 돈내고 잘만한 곳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따뜻한 곳에서 자게되어 좋았다. 복도측 창문이 깨져있어 모기가 많았고 밤늦게 불러준 매춘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소란을 피우는 아저씨때문에 시끄럽긴 했지만 따듯한 곳에서 이불을 덮고 잔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그런데... 너무 늦게 일어나버렸다. 10시 30분쯤 일어나 느릿느릿 준비를 하고 11시가 되어서야 나섰다. 여인숙에서 나선 것이지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꿀호떡과 쿨피스로 늦은 식사를 하고나니 12시가 다 되어갔다.
posted by bluelimn 2008.03.25 23:21

십자가 표시가 있기에 교회라고 생각했는데 교회는 앞에 따로 있고 그곳은 기도원이라고 했다. 남자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그 기도원의 강당으로 여겨지는 곳이었는데 온통 나무로 되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쉬고 갈라지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로 오셨는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다. 갑자기 바로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서 놀란 것도 있었지만 TV에서 보던 사이비 교수의 목소리와 엄청 흡사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길고 검은 머리에 창백해 보이는 인상의 여자였는데 작은 덩치에도 엄청난 포스가 느껴졌다.
이미 말을 꺼냈으니 용기를 내어 재워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미 온 사람을 내쫓을 수 없으니 사용하지 않는 방을 내어주겠다고 했다.
남자는 여자가 시키는데로 우리는 안내했다. 뒤쪽으로 돌아서 가니 커다란 컨테이너가 있었다. 남자는 그곳을 소개하는 종이 하나와 모기향, 그리고 얇은 이불을 두고는 조용히 사라졌다. 안내장에는 그곳의 이름과 함께 가정불화나 사업문제, 건강문제 등을 자기 기도원에서 기도하면 모두 해결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문제가 커질 수 있으니 그곳의 이름은 비밀~)
우리는 화재 위험때문에 독한 모기향을 머리쪽에만 두고 잠을 청했지만 그곳의 음산한 분위기 때문에 어서 나가고 싶었다.(곳곳에 원한은 품은 령은 어떤 령이고..하는 식의 낙서가 꽤 있었다.)

새벽... 아직 어둠이 지배할 시간 갑자기 눈을 떴다. 너무 추워서...
이불이 모자랐는데 잠결에 다들 이불을 돌돌 말아버리니 나만 이불없이 누워 있었다. 게다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창문이 열려 있었다. 워낙 큰 컨테이너여서 모르고 있었다. 창문을 닫고 다시 누웠는데 몸이 얼어서 잠이 오질 않았다. 6월의 마지막에...

6시쯤 그곳을 나섰는데 다들 몸이 얼어서 힘들어했다. 나서려고 인사를 하자 그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고 간다면서 방명록을 내밀었다. 이름, 주소 , 전화번호를 남기라고 했는데 겁에 질린 우리는 조금씩 다르게 적어버렸다. 생각해보면 아무런 대가없이 재워주고 이불도 주고 모기향도 줬는데 안좋게 생각하고 도망치듯 가버린건 정말 철이 없던 나이여서 그랬던 것 같다.

그날 아침은 919번 지방도로를 타고가다가 휴게소에 들러 빵과 우유먹었다. 그런 다음 4번 국도를 타고 열심히 가니 점심은 경주에서 먹을 수 있었다. 역시나 쿨피스를 샀고, 이번엔 꿀호떡 대신 소보로 빵을 샀다.
경주는 다 둘러보진 못했지만 가는 곳마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었다. 그런데 인도블럭으로 되어있는 곳이 많아서 자동차 도로를 타고 달리는 것이 더 안전하게 느껴졌다. 특수 자전거를 파는 상점이 곳곳에 보여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이미 걸인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버스 정류장에 있는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빨래까지 했다. 빨래는 짐 위에 덮어서 햇볕을 받으며 달리니 금방 말랐다.

경주를 벗어나 한참을 달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준과 재현의 자전거가 동시에 펑크가 났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길이라 자전거를 끌고 한참을 걸어 사람이 사는 동네까지 가서 그곳이 어딘지 물어보니 천북이라고 한다.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그곳은 자전거 수리점이 없다고 했다. 한달에 두번 출장수리가 오는데 며칠 더 있어야 한다고 그랬다.
우린 지도도 없었고 지리에 밝은 편도 아니라 그곳이 어딘지 감이오질 않았다. 모아 초등학교와 동국 휴게소가 있다는 것밖에..
114에 문의해서 가까운 자전거 수리점에 전화를 했더니 출장비로 3만원을 요구했다. 몇백원하는 패치와 휴대용 펌프만 있어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건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별수없이 와달라고 했다. 엄청 오래 기다렸다. 재현이 자전거는 타이어도 갈아야 겠다고 그러자 재현이는 바로 그러겠다고 했다.(출발할 때 검사할 땐 괜찮다고 그랬는데 이윤을 많이 남기려는 속셈 같아 싫었지만 본인이 그러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출장비를 제외하고 4만원이 나왔다. 상상도 못할 바가지였다.(패치를 붙일경우 개당 2천원이면 충분하다. 튜브를 가는 것도 5천원이다.) 아저씨는 인심쓰듯 5천원을 할인해줬다.

자전거 여행 시 주의: 애매한 곳에서 출장수리를 받아야 할 경우 해당 서비스를 이야기하고 가격을 합의한 다음 출장을 부탁해야 한다.

bluelimn's

한참 후에야 안 사실이지만 펑크가 난 곳은 경주도 벗어나지 못한 지점이었다

자전거를 수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힘껏 달려 포항에 도착했다. 그 때가 2002년이었다. 월드컵 열기로 다들 미쳐있을 때였는데 그날도 8시에 축구경기가 있었다. 그 경기를 보기위해 질주를 했더니 5시에 벌써 포항에 도착해버렸다.

posted by bluelimn 2008.03.21 19:17
동굴..
비록 내 모습은 말이 아니지만 여행의 마지막 코스이고, 난 동굴구경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내심 기대 2452.7%..!!(불쌍하기도 하지...가본 곳이 없군..ㅠㅠ) 사람이 아주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있더군...어린이들 단체로 오기도 하고...
동굴이라....책에서나 보던 멋진 모습들이 잔뜩 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좋지 않은 것들도 많이 보였다. '절대 넘지 마시오.'라는 팻말 근처에는 발자국이 수도 없이 찍혀 있었고 길을 만드느라 동굴을 동굴을 다 잘라낸 흔적이 많았다. 길은 철로 된 다리로 계속 이어져 있었는데 다리 밑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는 시멘트가 가득했다.
그래도 멋진 동굴의 모습을 보고 만져보기도 했으니 만족한다. 종류석이 커튼처럼 늘어져 있는 모습이나 협곡의 모습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여행의 끝에서..
동굴 구경을 마치고 동해역으로 온 우리는 올 때 우리 뒤에서 계속 먹을 것을 꺼내던 가족들이 많이 부러웠는지 먹을 것을 사서 가자고 그랬다. 모자랄 것 같던 여행 경비가 많이 남았다. 나중에 계산해 보니까 실제로도 조금 남았지만(천연동굴에 가는 것을 너무 많이 계산하고 있었다.), 내 지갑에 넣어뒀더니 내돈 일부가 회비로 들어가 버려 여분이 있었다.(나때문에 병원도 가고 미안해서 모른 척 넘겼다.^^;;;)
김밥도 사고 과자랑 음료수도 사서 기차를 탔다. 이번엔 자리가 좋지 않아서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졸기도 하고 먹기도 하면서 6시간을 왔는데 꽤나 지루하더군... 기차에서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도 있고 무임승차했는지 역원이랑 실갱이하는 사람도 있고, 계속 자리를 바꾸는 사람도 있고...
갈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별로 할 일도 없어서 계속 먹으면서 그렇게 대구까지 왔다. 친구는 계속 이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쉽다고 했고, 나도 집에서 편히 쉬겠다는 마음과 함께 시원섭섭함을 느꼈다.
역에서 내려서는 버스 탈 사람은 버스 타고 지하철 타는 사람은 지하철을 타고...그렇게 헤어졌다. 나도 내가 다친 것을 집에서 뭐라고 할까..걱정하면서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음에 갈 때는 다치지도 않고 이번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가장 좋은 것 같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몰라서 그것을 알기 위해 일상에서 잠시 멀어져 여행을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일상에서 잠시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오니까 내가 집에서 보내고 있는 시간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역시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금 멀리서 전체를 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아무튼 친구들도 이번 여행이 만족스러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여름에 자전거여행을 갔으면 좋겠다. 여름이라면 겨울보다는 길이 더 많지 않을까?(또 다치면 어쩌지?..ㅡㅡ;)
posted by bluelimn 2008.03.21 19:12
숙소에서..
다치기 전에는 전혀 안추웠는데 다치고 나니까 엄청 춥더군...민박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불부터 펴고 자리에 누웠다. 불은 넣었다는데 별로 따뜻하지는 않았다. 자려고 했지만 TV소리 때문에 잠이 오질 않았다. 난 잘때가 되면 엄청 예민해 진다. 결국 같이 지친 친구들이 다 잠든 후에야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못가서 제일 먼저 일어나 버렸다. 으...난 역시 어쩔 수 없는 녀석인가 보다...ㅡㅡ; 저녁은 친구들에게 다 시키고 난 그냥 TV나 보면서 방에 있었다. 다친 후로는 일을 많이 하지 않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편했던 것은 아니다. 저녁식사는 된장찌개... 이것도 울 어머니가 다 만들어준 덕분에 물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었다. 이 기회를 빌어서 심심한 감사의 말을...ㅡㅡ;;;;
밥 먹고 아주 잠시 자다가 고기를 구웠다. 한번씩 자리이동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거의 내가 고기를 구운 것 같다. 바닷가라 그런지 고기가 많지 않았다. 그것도 제대로 자르지 못해서 고기들이 서로 붙어 있더군...ㅡㅡ; 그래도 두껍게 잘린 고기를 쌈에 싸먹는 맛이란~~~ 캬~~~ 또 먹고 싶다.
고기도 먹었겠다. 밤 새고 일출 보자는 각오로 놀기 시작했다. 그.러.나....게임 조금에 이야기를 계속 하니까 하나 둘 자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상당히 골치아픈 여행이다. 결국 남은 것은 나와 하루종일 엄청나게 잔 친구....3시쯤 되니까 나도 엄청 잠이 오더군...결국 나도 자겠다고 그러고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 6시쯤에 다시 일어났다가 친구들 이불 덮어주고는 다들 자길래 나도 자버렸다.
일출..
잠시 후에 어떻게 일어났는지 누군가 나를 깨우는 것 같았다. 바로 일어났다. 7시쯤 되었는데 아까와는 달리 밖이 환하게 밝아 있었다. 대충 준비하고 모자로 머리를 가린 다음 촛대바위로 향했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도 너댓명 보였고 가족끼리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들 연인들....
그곳에서 사진 몇장 찍고 일출을 기다렸다. 하루만 일찍 왔어도 구름에 가렸을 텐데 다행이 구름이 조금밖에 없었다. 하늘과 바다의 고향 수평선에서 구름 사이로 해가 뜨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필름이 많았다면 주변 경치나 가득 찍어가고 싶었지만 일회용 카메라의 울분을 안고 후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차안에서 본 설경을 담지 못한 것이 아직도 아쉽다.
민박집으로 돌아와 다들 씻고 떠날 준비를 했다.(난 머리도 감지 못했다...ㅠㅠ;) 마지막 끼니는 라면으로 해결했다. 원래는 참치찌개를 하려고 했는데 '불고기참치'를 가져오는 바람에 아침은 된장찌개 남은 거랑 참치, 김으로 해결하고 마지막은 라면을 먹었다. 하지만 라면도 우와~ 정말 맛있었다. 라면을 먹고 짐을 정리한 다음, 주인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랑 잠시 놀아주다가 마지막 일정인 천곡 천연동굴로 향했다.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posted by bluelimn 2008.03.21 19:07
25일..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기차에 올랐다. 동대구역은 기차가 처음 출발하는 역이라 한산했다. 기차가 출발했다. 다들 밤을 새서 피곤했던지 금새 잠이 들었다. 난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하자는 성격인데다 약간의 불면증까지 곂쳐서 잠을 못자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내 잠에 빠져들었고 새벽이 밝아올 때가 되어서 다시 깨어났다. 두시간도 채 자지 않았는데 너무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자고있는 친구들은 그대로인데 창 밖에 보이는 것은 온통 눈으로만 덮힌 경치....이런 곳에서 White Christmas를 맞게 될 줄이야.....경치가 너무 좋아서 들뜬 기분으로 창밖을 계속 내려다보고 있으니 벌써 다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친구들도 잠시 깨는 것 같더니 '우와 멋지다.' 한마디 하고는 다시 잠들었다.
생각해 보니까 이번 여행에서 가장 멋진 일은 너무나도 환상적인 설경을 맘껏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촌스러운 미소에 눈이 덮히면 그대로 그림이 된다. 나무들은 크리스마스 트리보다 훨씬 아름다운 장식을 입고 창문에도 눈이 덕지덕지 붙었다. 우리 자리가 기차의 아주 앞쪽에 있어서 나무에 쌓여있던 많은 눈들이 기차가 지날 때마다 우르르 쏟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현실의 세계에서 환상의 세계로 들어갈 때 보이는 풍경같은 장면이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저 귀찮겠지만 눈이 적은 대구에 사는 나로서는 마냥 신기하고 즐겁기만 했다. 아마 아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도착..
장장 6시간에 걸친 긴 눈구경이 끝나고 동해역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기로 하고 돈을 계산했는데 버스 타기가 어렵다고 해서 계속 택시를 타고 다녔다. 어차피 버스비로 계산한 가격과 택시비가 비슷했고 기차 안에서 다들 자는 바람에 식사비를 쓰지 않아서 어느정도 해결이 되었다.(참고로 난 잠을 자지 않아서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ㅠㅠ)
다행히 택시기사가 좋아서 이것저것 정보도 알려주고 민박집 가격도 깍아 주었다.(미리 알아본 것보다 5천원 절약!!) 미로같은 민박촌을 누비며 우리의 민박집에 도착... 그 때만 해도 기대로만 모든 것이 가득 차 있었다. 짐을 풀고 떡볶기를 해먹었다. 엉망이 될 위기도 다소 있었지만 울 집에서 비밀의 X소스를 미리 만들어준 덕분에 맛있게 요리해 먹었다.
사고..
회계도 하고, 요리도 하고, 무언가 일이 생기면 다 참견하려고 했다.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민박집 아주머니가 사람도 적고 하니 주방을 사용하라고 부탁해서 친구가 주방에서 설겆이를 하고 있는데 놀고 있기가 싫어서 좀 있다가 주방으로 가는데.....
"꽝"하고 눈앞이 하얗게 보이면서 나도 모르게 몸이 오그라 들었다. 엄청 세게 박았나 보다...하면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친구가 당황하면서 피가 난다고 그랬다. 그때부터 피가 얼굴에 흐르고 바닥에 쏟아지는데..... 놀러 오자마자 이런 꼴을 보이다니...아프다는 생각은 별로 안들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그냥 있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대로 있으면 조금만 움직여도 다시 피가 처음만큼 날 것 같아서(그때도 조금씩 나긴 했다만..)택시를 불러서 병원에 갔다. 엄청 멀리 있더군...그런데 마침 크리스마스라 병원이 쉰다고 다른 병원에 가라고 그랬다. 거기는 공휴일에도 한다나.... 다시 택시를 타고 멀리 가니까 조그만 병원이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밤에 먹을 돼지고기를 샀다. 다친 건 다친거고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니... 난 빨리 돌아가서 눕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는데 택시기사의 권유로 민박집 앞에 촛대바위를 한번 구경하고 나서야 숙소로 들어갔다.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 정말 피곤했다.
posted by bluelimn 2008.03.21 19:02
준비
수능도 끝나고 해서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다. 원래는 무전여행이 가고 싶었지만 겨울은 여러가지로 제약이 많아서 일단 친구들과 함께 가는 바다구경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막상 여행을 준비하려니 해결해야 할 거리가 많았다. 그동안 별 생각없이 단체로 가는 여행을 따라가거나 가족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내가 무엇인가를 준비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메신저로 계속 쪽지를 주고받고, 두번을 직접 만나 의논한 후에 부산쪽 바다를 물리치고 강원도 추암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강원도란 지역에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첫번째 위기는 금전적인 문제였다. 기차여행을 가자고 해서 기차를 오래타는 쪽으로 결정했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물론 낭만적이긴 하지만 기차비만 3만원이 나가니 잡비가 모자랄 수밖에..... 게다가 돈타령을 끝내주게 하는 친구까지 합세했으니...어우...
그러그러 해서 반은 강제로 회비를 정하고 '모든 돈관리는 내가 책임진다.'라며 내가 회계를 맡아버렸다...ㅠㅠ

24일..
우리는 동대구역 앞에 모여서 밤을 새고 다음 날 5시40분 기차를 타기로 결정했다. 11시에 모두 만나서 PC방으로 향했다. 미리 알아보지 않았다지만 근처에는 여관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보인 것이...'만화볼까 컴퓨터할까'대략 그런 간판이었던 것 같은데....아무튼 만화책과 컴퓨터를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처음 본 순간 '헉...디따 비싸겠군...'그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일인당 9천원이라네...라고 하는데 방금 회비로 사먹은 어묵이 뱃속에서 요동치는 것 같았다. 순진한 얼굴로(그다지..ㅡㅡ;)학생이고 새벽에 나가야 하고... 그래서 5천원으로 밤을 새기로 결정!! 그럼에도 피같은 회비가 잘도 나갔다. 거기서 만화책 좀 읽으려고 했는데 친구들과 함께인 관계로 같이 채팅하고 계속 오락하면서 밤을 새고 나왔다.
posted by bluelimn 2008.03.21 01:49

난 고생을 많이 하는 여행을 좋아한다. 도보여행이나 자전거여행은 항상 생각만 해보고 실제로 해보질 못해서 친구들에게 우리도 한번 자전거여행을 해보자고 꼬셨더니 예상외로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목표는 무전여행이었으나 정말 무전여행을 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최소한의 금액으로 고생을 많이하는 여행을 즐겨보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처음 만난 난관은 자전거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돌아보니 4명 모두 자전거가 없었다. 난 대학 선배에게 3만원이었던 동아리 회비를 대신 내는 조건으로 자전거를 얻었다.(사실 3만원에 산 것으로 보면 된다.) 종환은 친척의 자전거를 낚았고, 무준은 자전거를 새로 샀으며(12만원 상당의 알통자전거였다.), 재현은 중고자전거를 샀다.(자전거는 3만5천이었는데 수리비가 꽤 들었다.)

천천히 무리하지 말고 일주일동안 포항이나 다녀오자는 우리의 여행! 자전거를 장만한 우리는 여행을 시작한 6월 28일 10시까지 두류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8시 30분에 벌써 도착했다는 종환이의 문자가 왔다. 재현이와 난 집이 가까웠기 때문에 9시쯤 만나서 같이 가기로 했다. 재현과 만난 시간은 9시 20분쯤이었는데 이미 기다리고 있을 친구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다급해졌다.

재현은 자전거를 타는 것이 익숙치 않은데다 자전거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안장이 흔들려서 더욱 느렸다. 다급해진 내가 자전거를 바꿨는데도 속도는 비슷했다.
두류공원에서 만나서는 다 같이 자전거 수리점에 들렀다. 짐을 실을 수 있도록 안장을 달고, 줄도 달고나서 자전거여행을 갈테니 이상이 있는 곳은 없는지 잘 봐달라고 했다. 자전거 수리점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전거에 대한 낭만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자전거여행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수리를 마치고 천천히 준비를 해서 떠나니 11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한여름 가장 햇살이 뜨거운 시간에 한시간가량 달리니 시작부터 힘이 빠졌다. 상인동에서 시작했는데 MBC사거리를 만나고부터는 힘이 빠져서 방향도 잘 모르겠고 힘도 빠지고 해서 쉴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오후 1시무렵 대구도 벗어나지 못하고 동남쪽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쉬기로 했다. 자전거 수리비를 제외하고는 돈을 쓰지 않는 것이 목표였기때문에 점심은 아주 간단히 먹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의 식사는 '꿀호떡+쥬시쿨'조합이었다.

한시간을 쉬고나서 달리니 의외로 길이 쉬웠다. 국도를 타고 갔는데 길이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저녁 6시쯤 되니 배가 고파서 라면 6개로 끼니를 떼웠다. 점심도 대충먹고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난 후라 진수성찬으로 느껴졌다. 지금도 라면은 자주 먹지만 그때만큼 맛있는 라면은 드물었다고 기억한다.

지도라고는 대구를 벗어나는 길을 프린트해온 종이가 고작이었는데 그것마저 대구를 벗어나면서 쓸모없는 이면지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달린 길은 25번 국도.. 국도는 대부분 가로방향은 짝수, 세로방향은 홀수로 표시한다고 한다. 25번 국도는 대구에서 경산까지는 동쪽을 향하지만 경산부터는 진해까지 남쪽만을 향해서 달리는 국도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어 따라가던 길을 버리고 919번 도로를 탔다. 난 이상하게도 평소엔 길도 방향도 모르다가 길을 잃으면 감이 좋아진다.
저녁을 먹고도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달리다가 시골에 십자가 표시가 있길래 첫날은 그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특별히 종교를 믿는 건 아니지만 종교단체가 그나마 지나가는 행인을 잘 재워줄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다들 가정집에 들어가서 재워달라고 할 만큼 능글맞진 못했다. (절에서도 자보고 싶었지만 자전거로 산에 있는 절을 찾아가기란 무리였다.)

입구에서 서성거리자 마침 관리자의 포스가 느껴지는 남자가 지나가다가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어본다. 자전거 여행 중이라고 말하며 포항에 가려고 한다고 그러니 길을 잘못 들었다며 길을 다시 알려준다. 그런 다음 잘 곳이 마땅히 없으니 재워줄 수 없느냐고 물으니 일단 들어오라고 권한다. 생각 없이 따라들어간 우리는 넓고 어두운 강당에 크게 적혀있는 그곳의 이름을 목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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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얼마 가지도 못했다

posted by bluelimn 2008.03.1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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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인모드로 있었다. 그런데 사고이후 더 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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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이후 모자를 절대 벗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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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있는 바위를 잡는 컨셉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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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사진.. 저거 계단에 올려놓고 찍었던가.. 주제에 타이머 기능도 있다니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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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는 걸 보려고 일찍 일어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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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해가 뜰 때는 구름에 가려 제대로 안보였지만 꽤 괜찮은 광경이었다.


사고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민박집의 문틈이 알루미늄으로 덧대여져 있었는데 문턱은 높고 천정은 낮았다.
내 키가 작은 편이라 별 생각없이 그냥 문을 드나들었는데 문틀 위쪽에 퍽!!하고 박아버린 것이다. 나무였으면 아프고 말았을텐데 각진 알루미늄이었다. 그것도 모서리가 살짝 벌어져 있어서 꽤 위험하게 있었다.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눈앞이 하얗고 3초가량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소리도 내지 못했다. 길진 않았지만 체감시간은 꽤 길었다. 그제야 짧은 신음이 새어나오고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고개를 드니 피가 철철 흘렀다. 내 몸에서 그렇게 피가 많이 흐르는 것을 처음 목격했는데도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냥 거즈나 휴지로 상처부위를 압박해서 지혈만 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좀 쉬면 괜찮을 거라고 친구들을 안심시키면서 앉아있는데 친구들 표정이 심상치않다. 그도 그럴것이 머리에서 피는 쉬지않고 흐르고 여행가서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많이 당황했을 것 같다. 결국 콜택시를 불러서 병원에 갔는데 마침 크리스마스!! 빨간날 의사는 쉰단다. 그래서 다시 택시를 타고 근처 다른 병원으로 가자고 그랬다. 병원에 갔더니 이마 정 중앙이 3Cm가량 찢어졌단다.
더 웃긴건 그 병원에서 꿰메고 이마에 밴드를 덧댄 후에 다시 민박으로 돌아가서 계속 놀았다는 거다.

이상하게도 난 여행가서 다치는 경우가 많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도 첫날 손목에 금이 갔는데 그냥 부어있는 거겠거니 생각하고 있다가 밤에야 양호선생님을 찾아갔었다. 밤늦게 병원가고 발칵 뒤집어졌었다.
대학 MT때도 실내에게 불꽃놀이는 금지하고 있지만 분위기를 띄운다고 이벤트업체에서 그냥 쏴버렸는데 로또맞을 확률로 내 옷에 불덩이가 떨어져 불이 붙었었다. 난... 사고를 몰고 다니는 건가?
posted by bluelimn 2008.03.1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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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카메라의 구린 화질로도 충분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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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컨셉사진 같지만 사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지금보니 조금쯤 어린 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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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힘들지만 저러고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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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부끄러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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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택시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버스를 타는 시간은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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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발일까?지금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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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중이를 프랑켄슈타인버젼으로 찍으려고 했는데 오히려 내가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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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유치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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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luelimn 2008.03.09 21:25

당시 친구들과 여행가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뭘 하면서 놀아야할지 몰랐다. 여행을 제대로 즐길 줄도 몰랐다. 그래서 그 전에 부루마블을 사놨었다. 비슷한 보드게임들이 1~2천원 하는데 그건 절판되어서 그런지 가격이 꽤 높았다.(당시 5천원 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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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엄청난 승부욕으로 부루마블 우승자가 되었다. 심무중(心無中 가명)씨는 이날 전재산을 탕진하고 술에 취해버렸다.우리가 도착한 곳은 추암 해수욕장으로 애국가가 나올 때 일출장면이 이곳에서 찍은 화면이란다.
말일엔 사람들이 북적거리겠지만 크리스마스여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그날 저녁에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그것도 그동네에서 구입한 삼겹살... 바닷가에서 회도 아니고 돼지고기를 사다니.. 정신이 나갔었나보다.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는 냉장고기였는데 맛은 최고였다.
다음날은 집에서 준비해간 양념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는데 이때 다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갈뻔한 사고가 있었다.
posted by bluelimn 2008.03.0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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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의 기억은 자꾸만 남해시의 기억과 헷갈린다. 남해의 바다도 꽤 깨끗하고 이국적인 경치가 좋았는데 아쉽게도 사진이 하나도 없다.
아무튼 동해시는 교통편이 제대로 없다. 역에서 민박촌까지는 택시를 타야 한단다.(조금 알고 가면 굳이 택시가 필요 없는데 당시엔 갓 수능을 마친 애들이라 아는 것이 없었다.)
택시 기사가 이런저런 설명을 많이 해줬는데 주로 동해시는 관광지로 알려진 곳이라 바가지요금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 기사분은 내릴 때 명함도 주면서 이곳은 교통편이 없어서 콜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그러면 추가요금이 있다고 설명해줬다. 자기에게 연락하면 추가요금 없이 태워주겠단다. 장소가 추암 해수욕장이라 그렇다. 지금은 어떨 지 모르겠지만 당시만 해도 대중교통이 거의 없었다. 그때 이후로 이동할 때마다 그 기사분을 불렀었다.
넷 다 카메라가 없어 그곳에서 즉석카메라를 하나 샀다. 디지털 카메라가 집집마다 있는 시기와 달라서 사진이 얼마 없는 것이 아쉽다. 그런데 막상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다니면 오히려 사진을 많이 찍지 않는다.
posted by bluelimn 2008.02.2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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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상제,무준,종환

 크리스마스 이브에 네명 모두 모였다. 목적지는 강원도 동해시 추암 해수욕장.
출발역이 동대구 역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근처에 PC방겸 만화방이 있어서 그곳에서 밤을 새기로 했다. 그곳에서 마땅히 만화책을 보지도 컴퓨터를 계속 하지도 않았지만 근처에 싸게 밤을 지샐 곳이 보이지 않았고, 처음 보는 곳이라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해서 그곳을 선택했다. 처음 들어갈 때 직원이 어느정도 싸게 해주기로 했는데 우리가 나올 땐 그사람이 퇴근해버려 조금의 논란이 있었다.

다음날(25일) 새벽 첫 기차를 타고 강원도로 향했다. 기차는 꽤 오랜시간을 달렸는데 기차 안에서 느껴지는 속도는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달리는 것과 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날은 만나기 힘들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이 시기에 많은 회사들이 '크리스마스에 함박눈이 내리면 모든 회원에게 엄청난 경품이...'라며 엄청나게 홍보하고 있었고 그날은 '함박눈'으로 인정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모두 통과해버려 전국적으로 대부분의 도시에서 함박눈이 내린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회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엄청난 액수의 경품들을 배송해야 했고 이때 이후로 화이트크리스마스를 내건 홍보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그날 내린 함박눈으로 인해 이 여행은 지금까지 최고의 기차여행으로 기억된다. 기차는 약 1M가량 두께의 눈을 얹고 달리고 있었고 가는 내내 엄청나게 쌓인 눈 속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기찻길 근처엔 어른 허리만큼의 눈이 쌓여 있었고 기차가 지나갈 때엔 주변 나무에 쌓여있던 눈이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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