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자리

감사 결의안은 이틀 동안 「아직」이 하나씩 늘었다.
결의안이 올라올 때마다 외는 이들은 지난 회의를 먼저 외웠고, 지난 회의를 외는 동안 일행이 모라에서 한 일이 다시 나왔다. 수레 하나를 650으로 셌소. 9할이라 했소. 아무것도 부러뜨리지 않았소. 그것을 다 듣고 나서 외는 이들이 차례로 「아직」이라고 했다.
"…감사가 줄어요."
니카가 말했다. 마루 아래 배에 걸터앉아 다리를 물에 담그고 있었다.
"줄지 않습니다. 미뤄질 뿐입니다."
오벨이 말했다.
"미뤄지면 줄어요. 이자가 거꾸로 붙어요."
오벨이 무언가 반박하려다 수첩을 펴서 셈을 해 보았다. 셈을 끝내고 수첩을 덮었다. 반박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소아레 아이들이 다리 위에서 「아직」을 셌다. 감사 결의안에 「아직」이 몇 나올지를 두고 조개껍데기를 걸었다. 니카가 그 판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끼지 않았다. 끼면 아이들 조개껍데기를 다 딸 것이었고, 다 따면 그것도 어느 외는 이가 외울 것이었다. 타르실 니카. 아이들 조개를 땄소. 니카는 그 한 줄이 큰 마루에서 외워지는 것을 듣고 싶지 않았다.
아침마다 같은 일이 있었다.
린이 오나보다 먼저 일어나 마루를 쓸었다. 다 쓸고 나면 오나가 나왔다. 오나가 그물 앞에 앉으면 린이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할머니. 차례 주세요."
"무엇을 말하려고."
그날 아침에는 물음이 하나 새로 붙었다. 열흘 넘게 오나는 「아직」만 했다. 무엇을 말하려느냐고 묻는 것은 처음이었다.
린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큰 마루에서 소리쳤던 말들이 아직 입안에 있었다. 주문, 맨발, 사례, 회의. 그런데 그 말을 차례를 받아 다시 하면 무엇이 되는지 린은 몰랐다. 그날 밤의 말은 화가 나서 나온 말이었다. 화가 가라앉은 뒤에 같은 말을 차례로 하면 그것은 다른 말이었다.
"…모르겠어요."
"그럼 아직이다."
오나가 그물코를 기웠다. 린이 일어나 빗자루를 도로 집었다. 다 쓴 마루를 한 번 더 쓸었다.
켈리는 문 옆에서 그것을 보았다. 날마다 보았다. 그날은 오나의 「아직」 앞에 물음이 하나 생겨 있었다. 켈리가 아는 셈으로는, 물음이 하나 생기면 그만큼 가까워진 것이었다.
점심때 모라의 젊은이가 왔다.
늪에서 켈리가 끌어낸 젊은이였다. 배에 생선 한 바구니와, 무언가를 갈대로 싼 묶음을 싣고 왔다. 감사 결의안이 큰 마루에서 「아직」을 모으는 동안 모라 사람들은 결의안을 기다리지 않았다. 결의안은 수풀회가 하는 것이였고 생선은 사람이 하는 감사였다. 젊은이가 오나네 마루 끝에 생선 바구니를 놓았다. 그러고는 갈대 묶음을 풀어 켈리에게 내밀었다. 국자였다. 늪오리나무를 깎은 것이었다. 손잡이가 길었고 오목한 데가 깊었다. 손잡이 끝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새겨져 있었는데 목이 짧았다.
마루 끝이 조용해졌다. 옆집 마루에서 그물을 깁던 사람이 손을 멈췄다. 볼이 둥근 여자가 다리 위를 지나가다 멈췄다. 소아레 사람들이 열흘 넘게 켈리 손이 닿지 않는 데로 치워 온 것이었다.
켈리가 국자를 받았다.
손잡이를 쥐었다. 쥐는 손에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올라오면 내려보내면 되었는데 올라오지 않았다. 쥐는 데에는 마법을 걸 필요가 없었다. 국자는 부러지지 않았다.
마루 아래 배에서 니카가 말했다.
"…68.7퍼센트는 아직 유효해요."
린이 니카의 발을 밟았다.
젊은이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켈리가 국자를 든 채로 고개를 숙였다. 린에게 배운 각도였고 드는 것이 늦었다. 젊은이가 똑같이 숙였다. 둘이 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안 옆집 사람이 그물 깁는 손을 다시 움직였다.
켈리는 그날 국자를 허리춤에 매달았다. 뼈와 깃털 끈 옆이었다. 바르트가 그것을 보고 노트를 폈다가, 무엇을 적어야 할지 몰라서 도로 덮었다.
그날도 일행 안건 회의는 지난 회의를 외는 데 오후가 다 갔고, 해가 진 뒤에 「아직」으로 끝났다.
외는 이들은 회의가 끝나면 소아레 집집에 흩어져 묵었다. 먼 마을에서 배로 온 사람들이었다. 오나네에는 쇠물의 외는 이가 묵었다. 늪 남쪽 끝 마을이라고 린이 일러 주었다. 늪 바닥에서 붉은 녹 같은 것이 올라와 물이 늘 쇳빛인 데라고 했다. 머리가 다 빠진 늙은이였는데 손등과 손가락 마디에 쇳물이 튄 것 같은 검은 점이 박혀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마루에 등잔 하나가 놓였다. 오나와 쇠물의 외는 이가 그물 앞에 나란히 앉았고 일행이 그 둘레에 앉았다. 켈리는 허리춤의 국자가 마루에 닿지 않게 비스듬히 앉았다. 고슈는 마루에 올라오지 않았다. 장대 밑 물가에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마루 바닥 널빤지 틈으로 그 등이 조금 보였다.
바르트가 배낭을 정리하다가 저울을 꺼내 옆에 놓았다. 접시 둘에 쇠추가 딸린 작은 저울이었다. 쇠물의 외는 이가 그것을 오래 보았다.
"그 저울은 어디서 났소."
"제가 만들었어요. 카르소에서 배운 대로요. 열네 살에 대장간에 들어가서 거기 영감한테."
"그 영감은 어디서 배웠소."
바르트가 대답하지 못했다. 영감이 어디서 배웠는지는 물어본 적이 없었다. 대장간에서는 그런 것을 묻지 않았다. 쇠가 녹는지 안 녹는지를 물었다.
"…몰라요."
"나도 모르오."
쇠물의 외는 이가 말했다.
"그런데 닮은 것을 본 적은 있소. 쇠물 늪에서."
오나가 그물을 깁던 손을 멈추고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쇠물의 외는 이도 그렇게 했다. 큰 마루에서 길게 욀 때의 자세였다.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것은 외는 박자가 아니었다. 회의가 아니니 외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말했다. 그래서 빨랐고, 쉬는 자리가 군데군데 틀렸다. 틀려도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늪가에 쇠를 바꾸는 대장장이가 있었소. 그 법을 어디서 얻었는지는 본 사람이 없소. 우리가 아는 건 본 것뿐이오. 대장장이가 늪 바닥의 붉은 쇠를 바꾸었소. 바꾸는 건 했는데 다는 걸 못 했소. 저울이 없었소. 손으로 달았소. 손이 틀렸소. 남은 게 손등에 붙었소. 혹이었소."
바르트가 자기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그 사람이 저울을 만들었소. 남은 게 몸에 붙지 않게. 모자라서 몸에서 빠지지 않게. 그 사람 법에는 저울이 없었소. 저울은 그 사람이 메운 빈 자리였소."
쇠물의 외는 이가 바르트의 저울을 턱으로 가리켰다.
"같은 거라고는 안 하겠소. 닮았소."
"그 뒤로는요."
"그 뒤로 쇠물 늪에서 쇠를 바꾸는 사람을 본 외는 이가 없소. 본 건 거기까지요."
마루가 조용했다.
바르트가 무릎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큰 손이었다. 손등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르트의 혹은 소매 속 팔뚝과 목덜미에 있었다. 바르트는 그 깨끗한 손등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저울을 무릎 위로 옮겼다. 아무것도 달지 않았다. 놓기만 했다.
켈리가 그것을 보았다. 바르트가 저울을 꺼내 놓고 아무것도 달지 않는 것을 켈리는 처음 보았다.
니카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 발을 배에 올려놓고 있었다. 오른손이 왼 손목에 가 있었다. 오나가 그 손목을 보았다.
"그 천은 왼손에만 감소?"
"…예. 원래 그런 거래요."
"울음늪에도 왼손에 감던 사람이 있었소. 울음늪의 외는 이가 큰 마루에서 왼 것이오. 큰 마루에서 한 번 나온 말은 열넷이 다 외오."
오나가 말했다. 오나도 외는 박자가 아니었다.
"여자였소. 거는 술을 썼소. 어디서 얻었는지는 본 사람이 없소. 거는 건 했는데 돌아오는 걸 막지 못했소. 이웃집 개에게 걸었소. 개는 사흘을 앓았고 여자는 이레를 앓았소. 낫고 나서 천을 손목에 감았소. 왼손이었소. 돌아올 자리를 천에 정했소. 돌아오는 게 천으로 가라고. 그게 그 여자가 메운 빈 자리였소."
니카의 오른손이 천을 쥐었다. 천의 끝이 해어져 있었다.
"그 뒤로 울음늪에서 천을 감는 사람을 본 외는 이는 없소."
니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셈하는 입이었는데 오래 움직이다 멈췄다. 몇 할이 나왔는지 니카는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오벨은 수첩을 펴 들고 있었다. 무언가 묻고 싶은 얼굴이었는데 묻지 않고 오나를 보았다. 차례를 기다리는 눈이었다. 큰 마루에서 보름 넘게 앉아 있다 보니 몸에 붙은 것이었다.
"여긴 회의가 아니오."
오나가 말했다.
"…그럼 실례지만. 소환도 있습니까."
쇠물의 외는 이가 대답했다.
"갈림바위가 있소. 바위 하나가 가운데로 갈라져 있소. 갈라진 면에 뭐가 새겨져 있었소. 그 앞에서 부르던 사람이, 부를 때 맺는 약조라고 했소. 반쪽은 이쪽에 있었고 반쪽은 없었소. 그 사람은 이쪽 반쪽만 읽고 불렀소. 무얼 불렀는지는 알았소. 부르고 나서 무얼 불렀는지를 잊었소. 무얼 잊었는지는 몰랐소."
오벨이 등을 폈다.
"그래서 그 뒤로 적었소. 부르기 전에 적고 부른 뒤에 읽었소. 그게 그 사람이 메운 빈 자리였소. 실베인에서 처음 적은 사람이오. 이백 해 전이오. 그 사람은 마을에서 쫓겨났소. 적는 사람이라서."
"약조가 반쪽이었다면, 나머지 반쪽은 상대방이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쌍방 계약입니다."
"숲 너머에 있다고 그 사람이 말했소."
"열람 신청은 어디로 합니까."
쇠물의 외는 이가 오벨을 보았다. 오나도 보았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쇠물의 외는 이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오벨은 자기가 무엇을 물었는지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물었다. 법률가는 그 물음을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다.
"정령은 내가 하겠소."
오나가 말했다. 이번에는 빠르지 않았다. 한 마디를 놓고 다음 마디를 놓기까지 숨 하나가 더 들어갔다.
"소아레 동쪽 샘이오. 자매였소. 언니가 샘물을 빌렸소. 빌리는 건 했고 빌린 뒤에 무엇이 비는지는 몰랐소. 빌리고 나서 목이 마르지 않았소. 사흘을 마시지 않았소. 넷째 날에 쓰러졌소."
"동생이 옆에 있었소. 동생이 언니 입에 물을 부었소. 그 뒤로 동생은 언니가 빌릴 때마다 옆에 섰소. 빌리면 목마른 걸 모르니 옆에서 봐 줘야 하오. 그게 동생이 메운 빈 자리였소."
켈리가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다섯째 손가락이었다.
린이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을 린은 다 알고 있었다. 이 마루에서 이 할머니에게 열 번도 넘게 들었다. 그런데 손님들 사이에 앉아서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드루이드는요."
바르트가 물었다. 장대 밑을 한 번 내려다보고 나서였다.
"드루이드는 외는 이가 없소."
오나가 말했다.
"고슈 말고는 본 사람이 없소. 고슈는 마을에 살지 않소. 마을에 살지 않는 사람의 일은 외는 이가 없소."
널빤지 틈으로 보이던 등이 조금 움직였다가 멈췄다.
오나가 그물을 다시 집었다. 집어 놓고 깁지는 않았다.
"원본은 본 적이 없소. 우리가 본 술은 다 반쪽이었소. 처음부터 반쪽이었는지, 본 사람이 반쪽만 보았는지는 모르오."
"빈 자리는 쓰는 사람이 메웠소. 메운 사람마다 메운 게 달랐소. 그래서 닮았는데 같지 않소. 갈래마다 규칙이 다르고, 같은 갈래도 집집이 다르오."
오나가 한 번 쉬었다.
"바깥은 잡술이라 하오. 섞였다는 말이오. 맞는 말이오. 섞였소. 빈 자리마다 다른 사람의 손이 들어갔으니."
린이 고개를 들었다.
오나는 린을 보지 않았다. 앞을 보고 말했다.
"그게 잡술이오."
그러고는 그물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쇠물의 외는 이도 따라 일어섰다. 둘이 안으로 들어갔다. 마루에 다섯이 남았다. 등잔 하나가 마루 가운데 있었다.
바르트가 저울 접시 하나에 쇠추를 올렸다가 내렸다. 또 올렸다가 내렸다. 달 것이 없었는데 그렇게 했다.
"카르소 대장간에선."
바르트가 말했다. 저울을 보면서였다.
"연금이 카르소 거라고 했어. 카르소 사람이 처음 했다고. 영감이 그렇게 가르쳤고 나도 그렇게 알았어. 서른 해를."
"…여기서도 누가 했대요."
니카가 말했다.
"했대. 누가 먼저인지는 몰라. 근데 둘 다 같은 데서 틀렸어. 손으로 달다가."
바르트가 쇠추를 접시에 올려놓고 이번에는 내리지 않았다.
"그 영감도 혹이 있었어. 여기, 손등에. 내가 열네 살 때 물었지. 그게 뭐냐고. 영감이 그랬어. 저울 없이 단 값이라고. 그 말이 영감 말인 줄 알았어."
"그 영감 이름은요."
켈리가 물었다.
"몰라. 다들 영감이라고만 했어. 나도 그렇게 불렀고."
바르트가 그렇게 말하고 노트를 폈다. 맨 앞장을 펴더니 한참 보았다. 무엇을 적으려는 것 같았는데 적지 않았다.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적을 칸이 없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바르트도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 바르트가 저울 접시를 손가락으로 한 번 튕겼다. 작은 쇳소리가 났다.
니카는 왼 손목의 천을 풀고 있었다. 풀어서 무릎 위에 펴 놓았다. 붉은 천이었는데 여러 번 빨아서 분홍에 가까웠다. 가장자리에 해진 자리가 일곱 군데였다.
"엄마도 왼손에 감았어요."
니카가 말했다. 천을 보면서였다.
"왜 왼손이냐고 물었더니 원래 그런 거래요. 원래 그런 게 어디서 왔는지는 엄마도 몰랐어요."
니카가 천의 해진 자리를 손톱으로 하나씩 짚었다.
"감을 때 엄마가 흥얼거렸어요. 가사는 없었어요. 저는 그게 감는 데 필요한 건 줄 알고 따라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아니더라고요. 그냥 엄마 버릇이었어요."
"지금도 해?"
린이 물었다.
"…해요. 필요 없는 줄 알면서요."
"…셈해 봤어? 그 여자랑 같은 건지."
린이 물었다. 니카가 고개를 저었다.
"했는데 안 말할 거예요."
"왜."
"높게 나와서요. 높게 나와도 같은 건 아니고요."
니카가 천을 도로 감았다. 감는 데 오래 걸렸다. 매듭을 두 번 지었다가 풀고 한 번만 지었다.
오벨은 수첩이 아니라 다른 것을 꺼냈다. 가방 맨 아래에서 나온 얇은 책이었다. 표지가 떨어져 나가 실로 묶은 등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제가 소환을 배운 책입니다. 타르실 헌책방에서 샀습니다."
오벨이 책을 폈다. 첫 장에 글자가 문장 한가운데서 시작하고 있었다.
"앞장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서른 장쯤 떨어져 나간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저는 그 서른 장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를 이십 년 동안 짐작하면서 불렀습니다."
"짐작한 걸로 불렀어요?"
켈리가 물었다.
"짐작한 걸 적어서 불렀습니다. 적어 두지 않으면 무엇을 짐작했는지도 잊으니까요."
오벨이 책을 덮었다. 덮고 나서 표지 없는 등을 손바닥으로 한 번 쓸었다.
"갈림바위의 반쪽을 읽은 사람이 실베인에서 처음 적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랬지."
"그리고 쫓겨났다고 했습니다."
오벨이 웃었다. 소리 없이 웃었다. 켈리는 오벨이 그렇게 웃는 것을 처음 보았다.
"이백 년 만에 쫓겨난 자리에 와 있는 셈입니다. 이번에는 회의에 올라가 있고요."
린은 아무것도 꺼내지 않았다. 무릎을 안고 앉아 등잔을 보았다.
"할머니가 잡술이 맞대."
린이 말했다. 켈리에게 한 말이었다.
"…응."
"근데 기분이 안 나빠."
린이 그렇게 말하고 한참 등잔만 보았다. 등잔 불빛이 손목의 장신구에 닿았다. 열넷이었다.
"섞였다는 거잖아. 빈 자리마다 누가 손을 넣었다는 거잖아. 그걸 잡술이라고 하면… 그럼 잡술 맞지. 할머니도 손 넣었고 나도 넣었어. 할머니 할머니도 넣었고."
"…응."
"그 말을 벨류엔은 욕으로 했어."
"응."
"할머니는 아니었어."
린이 그 말을 하고 나서 입을 다물었다. 더 할 말이 있는 얼굴이었는데 하지 않았다.
켈리는 그 말들을 다 들었다. 듣는 동안 교범을 생각했다.
교범에는 빈 자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적혀 있었다. 눈금이 여섯이었고 위 셋은 돌파형이 배웠고 아래 셋은 아무도 가르치지 않았다. 아무도 가르치지 않은 것도 교범에는 적혀 있었다. 적혀 있는 것은 고칠 수 없었다. 고칠 필요도 없었다. 그 교범을 읽은 아이 누구라도 같은 자리에 서면 같은 일을 했다.
그래서 켈리가 떠난 자리에도 누군가 왔을 것이었다. 같은 번호를 받았을 것이었다. 켈리는 그 아이를 본 적이 없었지만 그 아이가 무엇을 배웠는지는 알았다. 교범에 빈 자리가 없었으므로, 그 자리에 누가 와도 되었다.
바르트의 저울은 쇠물 늪 대장장이의 저울과 닮았는데 같은 저울은 아니었다. 니카의 천은 울음늪 여자의 천과 닮았는데 니카의 엄마는 그 여자를 몰랐다. 오벨의 책에는 떨어져 나간 서른 장이 있었고 오벨은 그 자리를 짐작으로 메웠다. 린의 다섯째 손가락은 오나가 외어 준 자매에게서 왔다. 닮은 것은 많았는데 같은 것은 없었다. 빈 자리마다 다른 손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켈리가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을 위로 폈다. 폭발이 나가는 손이었다. 교범대로 배운 손이었다.
그런데 그 손에도 교범에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올라온 것을 쓰지 않고 도로 내려보내는 것. 열두 해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고 탈영한 뒤에 처음 했다. 벨류엔에는 그 동작의 이름이 없었다. 이름이 없는 것을 켈리는 그 뒤로 몇 번 더 했다. 모라의 늪에서도 했다.
켈리는 그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손끝이 조금 저렸다.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는데 저렸다.
이튿날 새벽에 린이 켈리를 깨웠다. 마루를 쓸기 전이었다.
둘이 배를 타고 소아레 동쪽으로 갔다. 멀지 않았다. 버드나무 사이를 두 번 꺾어 들어가자 물이 맑아졌다. 늪의 검은 물이 아니라 바닥이 보이는 물이었다. 바닥에서 모래가 조금씩 들썩였다. 물이 아래에서 올라오는 자리였다.
샘 가에 평평한 돌이 하나 있었다. 위가 반들반들했고 왼쪽 끝 두 군데가 조금 패어 있었다. 앉은 자리가 아니라 발 놓인 자리 같았다.
린이 배에서 내려 돌 위에 올라 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마가 물 가까이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손을 물에 대지는 않았다. 빌리러 온 것이 아니었다.
켈리는 린의 왼쪽에 섰다. 어디에 서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 린이 무릎을 꿇으니 그 옆에 섰다. 모라의 둑 끝에서는 옆에 앉아 있었는데 여기서는 앉을 데가 없었다.
린이 고개를 돌려 켈리를 보았다. 켈리의 발을 보았다. 그러고는 돌을 보았다.
"…너 지금 어디 서 있는지 알아?"
"옆."
"…그 자리야."
켈리가 발밑을 보았다. 두 발이 패인 자리에 하나씩 들어가 있었다.
"언니가 빌릴 때 동생이 서 있던 자리. 할머니가 어릴 때 데려와서 알려 줬어. 여기가 자매가 있던 데고, 여기가 옆에서 봐 주는 사람 자리라고."
켈리가 그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돌은 젖어 있었고 패인 데에만 이끼가 앉지 않았다. 아주 오래 누군가 서 있었던 자리라고 했다. 발을 넣어 보니 그냥 발 놓기 편한 자리였다.
"…비켜?"
"아니."
린이 다시 샘을 보았다.
"거기 있어."
물이 아래에서 올라왔다. 모래가 들썩였다. 둘은 해가 버드나무 끝에 걸릴 때까지 그렇게 있었다. 린이 일어나 무릎을 털었고, 켈리가 먼저 배에 올라 노를 잡았다. 노는 나무였다. 걸지 않고 저었다.
오나네 장대에 배를 매는데 옆 장대에 낯선 배가 하나 매여 있었다. 쇠물의 외는 이가 타고 온 배였다. 배 바닥에 붉은 덩이가 셋 놓여 있었다. 주먹 둘만 한 것들이었고 겉이 녹으로 거칠었다. 바람 부는 날 배가 뜨지 않게 싣고 다니는 것이라고 린이 말했다. 쇠물 사람들은 돌 대신 늪 바닥에서 건진 쇳덩이를 싣는다고 했다.
마루 끝에 바르트가 앉아 있었다. 저울이 무릎 옆에 있었다. 밤새 그 자리에 두었던 모양이었다. 바르트는 배 바닥의 덩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쇠물의 외는 이가 안에서 나와 그 옆에 섰다.
"저거, 달아 봐도 돼요?"
쇠물의 외는 이가 바르트를 보았다가 배를 보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바르트가 배로 내려가 덩이 하나를 들어 올렸다. 두 손으로 들고 나서 잠깐 그대로 있었다. 손이 무게를 가늠하고 있었다. 대장간에서 서른 해 동안 든 버릇이었다. 바르트가 그 버릇을 알아챘다. 덩이를 도로 내려놓고 저울을 가져왔다.
켈리는 배에서 내리다 말고 그 저울을 보았다. 발이 모이지 않았다. 바르트의 저울이었다.
바르트가 접시 한쪽에 덩이를 올렸다. 다른 쪽에 쇠추를 하나씩 올렸다. 접시가 기울었다가 셋째 추에서 거의 수평이 되었고 넷째에서 반대로 기울었다. 바르트가 넷째를 내리고 작은 추로 바꿨다. 수평이 되었다.
"4.3킬로그램."
손으로 들었을 때는 넷이라고 생각했다. 0.3이 틀렸다. 바꿀 때 0.3이 틀리면 그 0.3은 어딘가에 붙었다. 바르트는 그것을 목덜미로 알았다.
"바꾸진 않을 거예요. 달기만 했어요."
쇠물의 외는 이가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쇠물 늪 바닥에서 건진 쇠가 카르소 저울 위에 있었다.
"…본 것이 하나 늘었소."
"외실 거예요?"
"쇠물 늪 일을 욀 때 붙이겠소. 카르소 대장장이가 쇠물 쇠를 달았소. 손으로 들었다가 내려놓고 저울로 달았소."
바르트가 그 말을 듣고 한참 있었다.
"…내려놓은 것까지 외요?"
"본 것은 다 외오."
바르트가 덩이를 배 바닥에 도로 놓았다. 처음 놓여 있던 자리였다.
그날 오후 일행 안건 열여덟째 회의는 열일곱 회의를 외는 데서 시작했다. 지난밤 오나네 마루에서 한 말은 나오지 않았다. 회의가 아니었으니 외는 이들이 외지 않았다. 쇠물 늪의 대장장이도 울음늪의 여자도 오벨의 열람 신청도, 일행 안건에서는 아직 없었던 일이었다.
켈리는 그것이 이상했다. 켈리가 아는 장부는 무엇이든 적었다. 적힌 것은 있었던 일이었고 적히지 않은 것은 없었던 일이었다. 외는 이들도 같았다. 다만 무엇을 욀지는 차례가 정했다.
열일곱 회의를 다 외는 데 해가 졌다. 등잔이 올라왔다. 검은 탁자가 불빛을 먹었고 둘레의 늙은 얼굴들만 아래에서 비쳐 올라왔다. 회의 끝머리에 쇠물의 외는 이의 차례가 왔다.
"어젯밤 오나네 마루에서 넷 가운데 셋의 닮은 것을 말했소. 회의가 아니라 외지 않았소. 다음 회의에서 차례로 다시 말하겠소."
쇠물의 외는 이가 켈리를 보았다.
"오늘은 넷째를 묻겠소. 벨류엔 마법사. 벨류엔 술은 이 늪에서 닮은 것을 본 적이 없소. 욀 것이 없소."
켈리가 고개를 숙였다.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다.
"대신 묻겠소. 당신 술에도 빈 자리가 있소."
켈리가 고개를 들었다. 쇠물의 외는 이가 켈리를 보고 있었다. 검은 점이 박힌 손이 무릎 위에 있었다.
켈리가 대답을 찾았다. 이번에는 찾을 데가 있었다. 지난밤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찾아 둔 것이었다.
"…올라온 걸 도로 내려보내는 거요."
외는 이들이 들었다.
"교범에 없어요. 아무도 안 가르쳤어요. 탈영하고 나서 처음 했어요. 하면 손끝이 저려요. 이름이 없어요."
"그럼 당신이 메운 것이오."
쇠물의 외는 이가 말했다.
"이름을 붙이시오. 외겠소."
마루가 조용해졌다. 열넷이 켈리를 보았다. 마루 아래에서 린이 숨을 멈췄다. 바르트가 노트를 펴려다 말았다. 적을 것인지 욀 것인지를 정하지 못한 손이었다.
켈리가 생각했다. 생각하는 동안 외는 이들이 기다렸다. 실베인 사람들은 기다리는 데 익숙했다. 켈리도 기다리는 데 익숙했다. 그래서 꽤 오래 걸렸다.
"…아직이요."
쇠물의 외는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이면 다음 회의에서 묻겠소."
켈리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물을 것이 하나 생겼는데 차례가 아니었다. 켈리가 오나를 보았다. 오나가 켈리를 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차례를 주는 끄덕임이었다.
마루 아래에서 린이 그것을 보았다. 린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그거, 여기서 본 적 있어요? 올라온 걸 도로 내려보내는 거."
쇠물의 외는 이가 둘레를 보았다. 열셋이 하나씩 고개를 저었다. 오나도 저었다.
"없소. 처음 듣는 것이오."
"그럼…"
"그러니 외겠소. 이름이 붙으면."
니카가 마루 아래에서 소리 없이 무언가를 셌다. 켈리의 「아직」이 둘이 되었다. 땅 이름과 동작 이름이었다.
오벨이 수첩을 폈다. 켈리의 장을 찾아 맨 아래에 줄을 하나 긋고 두 줄을 적었다. 「땅 이름 — 아직」, 「동작 이름 — 아직」. 적고 나서 그 두 줄을 한참 보았다. 오벨의 수첩에는 동료마다 장이 하나씩 있었다. 이름과 얼굴과 버릇이 적힌 장이었다. 「아직」이 두 줄인 장은 그것 하나였다.
린은 회의가 끝날 때까지 오나를 보고 있었다. 오나는 한 번도 마루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큰 마루를 내려오는 길에 고슈가 장대 밑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회의 동안 내내 거기 있었던 모양이었다. 바짓단이 말라 있었다.
켈리가 그 앞을 지나갔다. 고슈가 켈리의 허리춤을 보았다. 뼈와 깃털 끈이 매달려 있었다.
"…드루이드는 외는 이가 없어."
고슈가 말했다.
"…예. 들었어요."
"…나는 마을에서 안 배웠어. 숲 어귀에서 처음 됐어. 경계의 숲. 마을이 아니라서 아무도 안 봤어."
"그럼 누가 알아요?"
고슈가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이 조금 움직였다.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소리가 났다.
"…숲지기가 알아."
"숲지기요?"
린이 뒤에서 걸음을 멈췄다.
"…영감님. 숲지기는 옛날얘기잖아요."
실베인 아이들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경계의 숲 어귀에 늙은 정령이 하나 산다고 했다. 숲을 가꾼다고 했고, 이백 해째 가꾸고 있다고 했다. 비 오는 날 숲 어귀 나무들이 한쪽으로만 눕는 것은 그가 쓰다듬고 지나가서라고 했다.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 자랐고 자라서는 웃으며 그 말을 했다.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네는 봤나."
바르트가 물었다.
"…봤어."
"언제."
고슈가 대답하기 전에 오래 있었다.
"…열한 해 전. 깊이 들어갔다가 못 돌아올 뻔한 적이 있어. 그때."
고슈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무엇이 되어서 깊이 들어갔는지, 무엇이 그를 돌아오게 했는지 말하지 않았다. 린이 고슈를 보았다. 린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고슈가 린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켈리를 다시 보았다.
"…보러 갈래?"
어귀

소아레를 떠나는 날 아침, 린은 차례를 청하지 않았다.
린은 여느 날처럼 마루를 쓸었다. 오나가 나와 그물 앞에 앉자 린이 그 앞에 무릎을 꿇은 것도 여느 날과 같았다. 다만 입에서 나온 말이 달랐다.
"할머니. 숲 어귀 다녀올게요. 영감님이 데려간대요."
오나의 손이 그물코에서 멈췄다. 열흘 넘게 아침마다 같은 청을 듣던 귀에 다른 말이 들어간 것이었다. 오나는 린을 한참 보았다. 린의 무릎 앞에 빗자루가 비스듬히 누워 있었고, 빗자루 끝에 마른 갈대 부스러기가 붙어 있었다.
"…숲지기 보러."
"예."
"나는 못 봤다. 그래서 외는 것도 없다."
오나가 그물을 다시 집었다. 그물코 하나를 다 기운 다음에야 말이 이어졌다.
"보거든 인사는 네가 해라."
"…예."
린이 일어섰다. 일어서고 나서 잠깐 그 자리에 있었다. 오늘은 「아직」을 듣지 않았다. 듣지 않은 아침이 듣는 아침보다 이상했다. 켈리는 문 옆에서 린의 발을 보았다. 맨발의 발가락이 마루를 한 번 움켜쥐었다가 펴졌다.
오벨은 떠나기 전에 큰 마루에 들러 일행이 며칠 자리를 비운다고 알렸다. 안건을 낸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회의는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쇠물의 외는 이가 대답했다.
"하오. 비운 것도 외오."
"저희가 없는 동안 저희 안건이 나아갈 수도 있습니까."
"나아가지는 않소. 비운 것이 늘어날 뿐이오."
오벨이 수첩에 적었다. 「궐석. 진행 없음. 누적만.」 적고 나서 그 줄을 한참 보았다. 법정에도 궐석은 있었다. 법정의 궐석은 자리를 비운 쪽이 지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아무 쪽도 지지 않고 다만 외워졌다. 오벨은 그것이 누구에게 유리한지 끝내 판단하지 못하고 수첩을 덮었다.
배는 두 척이었다. 바르트가 여섯의 무게를 어림해 나눴다. 앞 배에 고슈와 린과 니카가 탔고 뒤 배에 바르트와 오벨과 켈리가 탔다. 나누고 나서 바르트가 뒤 배의 뱃전을 내려다보았는데, 뒤 배가 손가락 두 마디만큼 더 잠겨 있었다. 바르트는 그것을 노트에 적지 않았다. 모라에서 저울이 가라앉는 것을 본 뒤로 바르트는 배에 오를 때마다 물 높이부터 보았다.
물길은 모라로 가던 길과 같았다. 그때는 밤이었고 지금은 낮이었다. 갈대가 키를 넘었다가 낮아지기를 되풀이했고, 낮아진 자리마다 물 위에 흰 꽃이 떠 있었다. 켈리는 노를 저었다. 이번에도 걸지 않고 저었다. 손바닥에 노의 결이 닿았고 결 사이에 낀 물이 미지근했다.
앞 배에서 니카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다. 한참 움직이다 멈췄다.
"…2할이요."
"뭐가."
바르트가 뒤 배에서 물었다.
"숲지기가 있을 확률이요."
"고슈가 봤다잖나."
"그래서 2할이에요. 영감님 혼자 봤으니까요. 열한 해 전에, 못 돌아올 뻔했을 때요."
물 위가 조용해졌다. 앞 배의 고슈가 노를 젓다 말고 돌아보았다. 털가죽 어깨 너머로 니카를 보았고, 오래 보았다. 니카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셈한 것을 셈한 대로 말했을 뿐이었다.
"…맞는 말이야."
고슈가 다시 노를 저었다. 노가 물에 들어가는 소리가 아까와 같았다. 니카는 입을 다물었고 그 뒤로 다시 셈하지 않았다. 린이 니카의 발을 밟으려다 말았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해 질 녘에 모라에 닿았다. 둑 끝에 탄 장대와 새 장대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 사이에 새 장대가 셋 늘었는데, 새것에는 아직 껍질이 붙어 있었다. 껍질 벗기는 데까지 손이 가지 않은 것이었다. 배를 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둑 위로 나왔다. 국자를 깎은 젊은이가 맨 앞이었다. 젊은이는 켈리의 허리춤을 보았다. 뼈와 깃털 끈 옆에 늪오리나무 국자가 매달려 있었다. 젊은이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고 켈리도 숙였다. 이번에는 드는 것이 둘이 같았다.
모라의 외는 이는 소아레에 남아 있었으므로 그날 밤 모라에는 외는 이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일행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묻는 것은 외는 이의 일이었다. 그들은 생선을 구웠다. 기침하는 노인이 켈리 옆에 앉아 생선 하나를 집어 들고 뼈를 발라 주었다. 켈리는 생선 뼈를 바르는 법을 몰랐다. 막사에서는 뼈가 없는 것만 나왔고 뼈가 있는 것은 뼈째 먹었다. 노인의 손가락이 가시를 하나씩 들어내어 나뭇잎 가에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켈리는 그것을 끝까지 보았다. 다 바르고 나니 가시가 열아홉 개였다. 켈리는 그 수를 셌고, 세고 나서 왜 셌는지 몰랐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젊은이가 둑 너머 늪을 가리켰다. 사초 무더기 사이에 물이끼가 유난히 고르게 덮인 자리가 있었다. 나흘 전 서기가 저울을 놓친 자리였다. 물이끼는 그 위를 벌써 메워 놓았고,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건지면 아직 쓸 만할 텐데."
바르트가 말했다. 대장장이의 말이었다. 쇠는 늪에서 나흘 만에 상하지 않았다.
"…거기 둬요."
켈리가 말했다. 켈리는 그와 같은 모양의 저울에 아침마다 올랐다. 막사의 것은 사람이 올라설 만큼 컸고, 접시가 균형을 찾으면 서기가 눈금을 읽었으며, 그 숫자대로 밥이 나왔다.
바르트가 켈리를 보았다가 늪을 보았다.
"그러지."
그 뒤로 바르트는 그 자리를 다시 가리키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자 고슈가 둑 끝으로 갔다. 켈리가 자다 깼을 때 그는 아직 거기 서 있었다. 서쪽을 보고 있었다. 늪이 끝나는 자리에서 땅이 조금 올라갔고, 그 위로 검은 띠 하나가 하늘을 가로막았다. 띠의 윗선에서 별이 끝났다. 별이 끝나는 선을 따라가면 그것이 숲이었다.
켈리가 둑 끝으로 가서 고슈 옆에 섰다. 고슈는 돌아보지 않았다. 둑 아래 물에서 개구리 하나가 울다 그쳤다.
"…저기서 처음 됐어."
고슈가 말했다.
"뭐가 됐어요?"
"…몰라. 그때는 알았는데."
켈리는 그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백로가 되었다 돌아온 날, 고슈는 그 늪 백로의 목이 왜 짧은지를 그렇게 말했다. 새일 때는 알았는데 돌아오면서 두고 왔다고 했다. 고슈는 무엇이 되었다가 돌아올 때마다 무언가를 그쪽에 두고 오는 사람이었다.
"열한 해 전에는요?"
고슈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검은 띠 위로 별 하나가 넘어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땐 이름을 두고 왔어."
"그럼 어떻게 돌아왔어요?"
"…내일."
고슈가 그렇게 말하고 둑을 내려갔다. 켈리는 그 뒤로도 한참 서쪽을 보았다. 검은 띠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안에서는 아무것도 빛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모라에서부터는 걸었다.
늪은 모라 서쪽에서 끝났다. 끝나는 방식이 갑작스럽지 않았다. 물이 얕아지다가 진흙이 되었고, 진흙이 굳다가 이끼가 되었다. 어느 순간 켈리는 발을 뽑지 않고 걷고 있었다. 한 달 가까이 발목까지 젖은 채로 지냈으므로 땅이 발을 붙잡지 않는 것이 처음에는 오히려 이상했다. 켈리는 몇 걸음마다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빠지지 않았다.
젖은 신발이 마르기 시작했다. 마르는 신발은 걸을 때마다 소리가 조금씩 달라졌다. 아침에는 질척였고 한낮이 가까워지자 끈적였으며, 해가 머리 위에 올 무렵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켈리는 그 소리가 없어진 것을 한참 뒤에야 알아챘다. 소리가 없어진 것을 알아채는 데는 소리를 알아채는 것보다 오래 걸렸다.
나무가 바뀌었다. 늪오리나무와 버드나무가 줄더니 줄기가 굵은 나무들이 늘었다. 사람 둘이 팔을 벌려도 둘레를 다 안지 못할 나무들이었다. 껍질에 이끼가 두껍게 앉아 있었는데 이끼는 줄기의 한쪽에만 있었다. 바르트가 그것을 먼저 보았다.
"다 같은 쪽으로 누웠어."
나무들이 조금씩 기울어 있었다. 한 그루만 보면 모를 만큼이었으나 여러 그루를 나란히 보면 알 수 있었다. 하나같이 서쪽으로, 숲이 짙어지는 쪽으로 기울었다.
"바람 쪽이 아냐. 이 늪 바람은 남쪽에서 오는데."
바르트가 배낭에서 저울을 꺼내 쇠추 하나를 끈에 매달아 들었다. 쇠추가 곧게 늘어졌다. 바르트는 그 끈과 나무 줄기 사이의 틈을 손가락으로 재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비 오는 날 숲지기가 쓰다듬고 지나가서래요."
린이 말했다.
"그건 재는 게 아니잖나."
"재는 거 아니에요. 옛날얘기예요."
바르트가 쇠추를 거두었다. 노트에 「기울기 — 모두 서쪽」이라고 적고, 까닭 칸은 비워 두었다.
해가 머리 위에 왔을 때 고슈가 멈췄다. 멈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금도 말뚝도 없었다. 켈리는 저도 모르게 말뚝을 찾았다. 벨류엔의 선은 말뚝으로 되어 있었다. 500미터마다 참나무 말뚝이 서고 말뚝마다 손이 얹혀야 선이 섰다. 손이 없으면 선도 없었다. 여기에는 말뚝이 없는데 선이 있었다. 고슈가 거기서 더 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있었다.
"여기서부터입니까."
오벨이 물었다.
"…응."
"영역 분리 협정에 따르면 경계의 숲은 사람이 들어가지 않는 땅입니다. 경계선이 정확히 어디입니까."
"…여기쯤."
"쯤은 법률 용어가 아닙니다."
"…나무는 법 몰라."
오벨이 무언가 대꾸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고슈가 숲 안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들어가도 돼. 들어가면 여기로 다시 나와."
"다시 나온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숲이 그렇게 자라. 걸어 들어간 길이 걸어 나오는 길이 돼. 숲지기가 그렇게 길렀어."
오벨이 숲 안쪽을 한참 보았다. 나무 사이로 길처럼 보이는 틈이 여럿 나 있었고, 틈마다 조금씩 휘어 있었다. 휘어 가다 보면 어디로 나오게 되는지 오벨은 수첩에 그려 보려다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한 걸음 물러섰다. 바르트가 따라 물러섰고 니카와 린과 켈리도 물러섰다. 고슈가 돌아보았다. 다섯이 한 걸음씩 뒤에 서 있었다.
"…여기가 어귀야. 어귀는 들어가는 데가 아니야. 서 있는 데야."
고슈가 그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해가 기울었다.
고슈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한 번 움직였는데, 바르트가 기운 줄기에 붙은 딱정벌레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을 때였다. 등딱지가 이끼와 같은 색이어서 움직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벌레였다. 고슈가 그것을 보더니 말을 시작했다. 그 벌레는 기운 나무에만 산다고 했다. 곧은 나무에서는 빗물이 줄기를 타고 곧장 흘러내리는데, 기운 나무에서는 빗물이 줄기 아랫면에 고였다가 천천히 떨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아랫면에만 이끼가 두껍게 앉고, 그 이끼 속에만 이 벌레가 알을 낳는다고 했다. 알은 서른 날 만에 깨는데 비가 적은 해에는 마흔 날이 걸린다고 했다. 깨어난 애벌레는 이끼를 먹지 않고 이끼 밑의 껍질을 먹는데 껍질을 먹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고 했다. 고슈의 말은 그 뒤로도 오래 이어졌다. 늪에서 사십 분을 설명하던 그 목소리였다. 사람 이야기를 할 때는 말끝마다 쉬던 사람이 벌레 이야기를 할 때는 쉬지 않았다. 바르트가 노트에 받아 적다가 두 장째에서 연필을 내려놓았다. 켈리는 끝까지 들었다. 알아들은 것은 절반이었다. 다만 그 벌레가 기운 나무에만 산다는 것, 나무가 곧게 서 있으면 그 벌레는 살 데가 없다는 것은 알아들었다.
고슈의 말이 끝나자 바르트가 노트를 다시 폈다. 날짜와 자리를 적고 그 아래에 「숲지기」라고 적었다. 옆에 무게 칸을 그었다. 칸은 비워 두었다. 니카는 나무 밑동에 등을 대고 앉아 눈을 감았는데 자는 것은 아니었다. 입술이 이따금 움직였다. 오벨은 수첩에 경계선을 그려 보려다가 그릴 기준점이 없어서 연필 끝만 종이에 대고 있었다. 린은 손목의 장신구를 하나씩 만졌다. 만지기만 하고 세지는 않았다. 열넷이었다.
켈리는 지팡이를 무릎에 가로로 얹고 앉아 있었다. 쇠 테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테 아래로 금이 지나갔다. 손톱 끝으로 느껴질 만큼만 벌어진 금이었다.
해가 숲 너머로 넘어갔다. 나무 밑이 먼저 어두워졌고 그다음에 나무 사이가 어두워졌다. 하늘이 가장 늦게 어두워졌다. 어두워지는 데에도 순서가 있었다.
그리고 나무 사이에 아주 흐린 빛 하나가 보였다.
푸른 빛이었다. 맑은 물을 오래 들여다보면 바닥에 어리는 하늘빛 같은 것이었는데, 그보다도 흐렸다. 사람 키만 한 길쭉한 빛이었고, 어귀에서 열 걸음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너무 가까웠다. 그 거리라면 오후 내내 보였어야 했다.
"…처음부터 거기 있었어."
고슈가 말했다.
"해가 있으면 안 보여. 빛이 흐려서."
니카가 눈을 떴다.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가 멈췄다.
"…다시 셀게요."
빛이 나무 사이에서 나왔다. 나오는 것이 걷는 것 같지 않았다. 흐린 빛이 조금씩 사람 모양을 갖추어 가며 어귀 쪽으로 옮겨 왔다. 옮겨 오는 동안 곁의 나무들이 아주 조금씩 그쪽으로 기울었다. 바람이 없었는데 나뭇잎이 한쪽으로 쓸렸다.
어귀에 이르러서야 모양이 보였다. 사람보다 조금 컸고 몹시 말랐다. 어깨가 좁고 목이 길어서 그림자만 보면 여자 같았는데, 가까이 오니 여자라고도 남자라고도 할 수 없었다. 몸 전체가 흐린 물빛이었다. 빛이 몸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물빛이 다 빠져나간 자리에 조금 남은 것이 비치는 것 같았다. 얼굴의 주름이 나이테처럼 겹겹이 돌아갔다. 한쪽 팔뚝에 나뭇가지가 돋아 있었는데, 마디 몇 개가 마른 채로 굳어 안쪽으로 굽어 있었다. 펴지지 않는 가지였다. 다른 손은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아무 장식 없는 마른 나무였고 길이가 켈리의 것과 비슷했다.
켈리는 정령을 본 적이 없었다. 린이 불을 빌리고 물을 빌릴 때도 빌려주는 쪽은 보이지 않았다. 켈리는 보이지 않는 것이 정령인 줄 알았다. 옆을 보니 린의 입이 조금 벌어져 있었다. 린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늙은 정령은 어귀의 선을 넘지 않았다. 선 바로 안쪽에서 멈추고, 굳은 가지가 돋은 팔을 곁의 나무 줄기에 얹었다. 줄기가 그 팔 쪽으로 조금 휘었다.
"…고슈네요."
목소리가 낮았다. 나뭇잎이 서로 스치는 소리와 크기가 같았다.
"이름, 아직 갖고 있네요. 엊그제 같은데."
"…응."
켈리는 그 말을 셈했다. 고슈가 숲지기를 본 것은 열한 해 전이었다. 열한 해가 이 늙은 정령에게는 엊그제였다.
늙은 정령이 고슈 뒤의 다섯을 보았다.
"손님을 데려왔네요. 다섯이나."
린이 앞으로 나왔다. 어귀의 선 앞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등을 폈다. 숲지기를 만나면 뭐라고 할 거냐는 말은 소아레 아이들 사이에서 오래된 장난이었다. 린도 열 살 무렵 그 장난 속에서 이 인사를 수십 번 했다. 그 장난이 지금 무릎 앞에 서 있었다.
"…이름을 모르고 부르는 무례를 먼저 사과드립니다. 실베인 소아레에서 온 린입니다."
린이 이마를 숙였다가 들었다.
"이름을 여쭤도 될까요."
늙은 정령이 린을 내려다보았다. 그 눈이 어떤 색인지 켈리는 알 수 없었다. 몸의 빛이 너무 흐려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불러 주는 이가 없어서요. 다른 이들이 나를 어떻게 불렀는지 잊었어요."
"…그럼 뭐라고 불러요."
"아이들이 부르는 걸로 해요."
린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장난 속에서는 쉽게 나오던 말이었다.
"…숲지기님."
"님은 처음이네요."
몸의 물빛이 아주 조금 밝아졌다가 돌아갔다. 웃은 것이었다.
린의 손이 손목으로 갔다. 장신구 하나를 풀려고 매듭을 잡았다.
"빌리러 온 건 아니잖아요."
늙은 정령이 말했다.
"…예."
"그럼 넣어 둬요."
린이 매듭에서 손을 뗐다. 열넷 그대로였다.
켈리가 린 옆으로 와서 고개를 숙였다. 숙이는 것은 린에게 배운 각도였고 드는 것은 늦었다. 늙은 정령은 켈리가 고개를 드는 것을 끝까지 보았다. 다 든 다음에 켈리의 팔을 보았다. 걷은 소매 아래 붉은 실금이 옅게 남아 있었다. 그다음에 지팡이를 보았고 쇠 테를 보았다. 마지막으로 허리춤을 보았다. 뼈와 깃털 끈과 국자가 있었다.
"…많이 냈네요."
"…예."
켈리가 대답했다. 무엇을 냈는지 말하지 않았다. 늙은 정령도 묻지 않았다.
늙은 정령의 무릎이 조금 꺾였다. 지팡이를 짚은 손이 떨렸고 몸이 곁의 줄기를 따라 내려앉았다. 내려앉는 자리에 굵은 뿌리가 하나 있었다. 뿌리가 흙 위로 손바닥 하나만큼 올라와 그 몸을 받았다. 켈리는 뿌리가 움직이는 것을 처음 보았다.
"…오래 못 서."
고슈가 말했다. 켈리를 보지 않고 늙은 정령을 보면서였다.
켈리가 물었다.
"아파요?"
"아프진 않아요. 덜 차요."
켈리는 그 대답의 모양을 알았다. 백로였던 고슈가 돌아온 날 켈리가 똑같이 물었고, 고슈는 안 아프다고, 덜 돌아온다고 했다. 아프지 않은 대가가 있었다. 아프지 않아서 무엇이 빠져나가는지 모르는 대가였다.
"언제부터요?"
"오래전에요. 일을 하나 했어요. 그 값이에요."
오벨의 연필이 수첩 위에서 멈췄다. 무슨 일이었는지를 물을 자리였다. 오벨은 묻지 않았다. 오벨이 청구 원인을 묻지 않고 넘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켈리가 물었다.
"…그 대가는 언제 끝나요?"
늙은 정령이 켈리를 보았다.
"끝나지 않아요."
켈리의 손가락이 쇠 테 위에서 멈췄다. 켈리가 아는 대가는 끝나는 것이었다. 마법청 장부의 칸은 날짜마다 따로 있었고 날짜가 지나면 닫혔다. 번호 옆에 줄이 하나 그어지면 그 번호의 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대가가 끝나는 방법은 그것 하나였다. 그러니 끝나지 않는다는 말은 줄이 그어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아이들 이야기가 맞다면 이 늙은 정령의 칸은 이백 해째 열려 있었다.
"다만 나눠 지면 견딜 수 있어요."
늙은 정령이 등을 뒤로 기댔다. 등 뒤의 줄기가 그 무게를 받아 휘었다. 마른 가지가 꺾이기 직전의 소리가 났는데 꺾이지 않았다. 그 줄기 너머의 나무가 조금 휘었고 그 너머의 나무도 휘었다. 어귀의 나무들이 차례로 같은 쪽으로 기울었다. 아침부터 일행이 보아 온 그 기울기였다.
린이 그것을 보았다. 쓰다듬고 지나가서가 아니었다. 기대서였다.
"나무들이 나눠 져요. 이백 해째."
"고슈도 한 번 나눠 졌죠."
늙은 정령이 말했다. 고슈가 고개를 들었다.
"…그때 내 이름을 들고 있었어."
"떨어뜨리고 가길래요. 사흘 들고 있었더니 돌아오던데요."
"…무거웠어?"
"이름이 무거우면 아무도 못 갖고 다니죠."
고슈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털가죽 깃 아래로 입꼬리 한쪽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늙은 정령의 눈이 다시 켈리의 허리춤으로 갔다.
"그것도 고슈 거죠."
켈리가 내려다보았다. 뼈와 깃털 끈이었다. 고슈가 백로가 되던 날 벗어 던진 털가죽을 켈리가 개켜 들었고, 돌아온 고슈가 그 끈을 내밀며 다음에도 갖고 있으라고 했다.
"…맡은 거예요."
"그래요. 맡은 거."
늙은 정령은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켈리는 끈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끈 옆에 국자가 있었다. 국자는 받은 것이었고 끈은 맡은 것이었다. 둘이 같은 허리춤에서 같이 흔들렸다.
니카가 입을 열었다. 한참 망설이다 연 입이었다.
"…나눠 지면 얼마나 줄어요?"
"셈해 본 적은 없어요. 줄진 않아요. 견딜 만해지죠."
"그건 셈이 안 되는데요."
"그래서 안 했죠."
니카가 입을 다물었다.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셈할 수 없는 것을 받아 들고 어디에 둘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니카는 되돌아오는 것을 늘 혼자 앓았다. 혼자 앓는 것은 셈이 되었다.
오벨이 두 가지만 여쭙겠다고 했다. 늙은 정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은 지금 전쟁 중입니다. 알고 계십니까."
"알아요."
"그런데도 숲에만 계십니까."
"사람 일에는 끼지 않기로 했어요. 우리 모두 그렇게 정했어요. 숲을 길러서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데까지가 우리 일이에요."
오벨이 수첩에 적었다. 「불개입. 합의.」 적고 나서 연필 끝으로 그 두 낱말을 한 번 짚었다. 합의라는 낱말은 법률가에게 가볍지 않았다.
"갈림바위의 약조 나머지 반쪽이 숲 너머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숲 너머는 제가 가는 데가 아니에요. 저는 어귀까지예요."
오벨이 그 아래에 적었다. 「어귀까지.」 그것이 대답의 전부였는데 오벨은 그 줄 아래에 밑줄을 그었다. 관할을 밝힌 대답은 법률가에게 대답이었다.
바르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노트를 펴 놓고 비워 둔 무게 칸을 보고 있었다. 늙은 정령이 그 칸을 건너다보았다.
"…그건 안 재질 텐데요."
"알아요."
바르트가 말했다. 어른에게 하는 말투였다.
"그래도 칸은 있어야 해서요."
늙은 정령의 물빛이 다시 조금 밝아졌다가 돌아갔다.
빛이 흐려졌다. 처음 보았을 때보다 흐렸다. 늙은 정령이 지팡이를 짚고 뿌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혼자 일으키지 않았다. 등 뒤의 줄기가 휘었다가 펴지면서 그를 밀어 올렸다.
"오래 서 있었네요."
늙은 정령이 돌아섰다. 그때 린이 무릎을 꿇은 채로 불렀다.
"숲지기님. 하나만 청해도 되겠습니까."
늙은 정령이 멈췄다. 린이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오늘 밤 이 어귀에서 자고 가게 해 주십시오. 불은 피우지 않겠습니다. 선은 넘지 않겠습니다. 날이 밝으면 가겠습니다."
린의 손이 다시 손목으로 갔다가, 아까 들은 말이 생각났는지 무릎으로 돌아왔다. 늙은 정령이 린을 오래 보았다.
"정령들은 예의 바르게 청하면, 조금은 들어줘요."
그러고는 나무 사이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동안 곁의 나무들이 차례로 그쪽으로 기울었다. 빛이 흐려서 줄기 하나만 지나가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 줄기 사이에서 다시 보였다가 그다음 줄기에서 다시 가려졌다. 세 번째에는 다시 보이지 않았다.
빛이 사라진 자리를 다섯이 한참 보았다. 늙은 정령이 앉았던 뿌리는 흙 속으로 도로 내려가 있었다. 린이 어귀의 선 앞으로 가서 그 뿌리에 손을 대 보려다 말았다. 선 너머였다.
니카의 입술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2할이 나왔어요."
"그게 맞힌 건가."
바르트가 물었다.
"2할도 나오면 나온 거예요."
니카가 그렇게 말하고 고슈를 보았다. 고슈는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열한 해 전에 혼자 본 사람을 2할로 셈한 것은 니카였다. 셈은 틀리지 않았다. 니카가 고슈 옆으로 가서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셈이 틀리지 않았는데도 무언가를 갚는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그날 밤 일행은 어귀에서 잤다. 린이 불을 피우지 않겠다고 했으므로 아무도 피우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자 이슬이 내렸다. 선 바깥의 풀은 금세 젖었는데 일행이 누운 자리만은 마른 채였다. 머리 위의 가지들이 어두워진 뒤로 조금 더 이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이슬은 그 가지 끝에 맺혔다가 일행이 누운 자리 바깥으로 떨어졌다. 조금이었다. 딱 다섯 사람과 고슈 하나가 누울 만큼이었다.
린이 깨어 있었다. 누운 채로 기운 나무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애들한테 말해 줘야 하나."
린이 말했다. 켈리에게 한 말이었다.
"뭘?"
"쓰다듬는 게 아니라 기대는 거라고."
켈리가 대답하지 않았다. 린도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나뭇잎이 바람 없이 한 번 쓸렸다가 멎었다.
"쓰다듬는 게 더 예쁜데."
린이 한참 있다가 다시 말했다.
"근데 나는 봤잖아. 할머니는 못 봤고. 외는 이는 본 것만 외니까, 내가 말 안 하면 아무도 못 외워."
린이 몸을 돌려 켈리를 보았다.
"그건 차례 받고 해야 하는 말이야."
그러고는 다시 돌아누웠다. 손목에서 장신구들이 서로 부딪는 소리가 작게 났다. 오늘은 하나도 줄지 않았다.
켈리는 잠들지 않았다. 지팡이를 무릎에 얹고 앉아 쇠 테 아래의 금에 엄지를 대었다. 넘친 것은 쥐고 있던 나무로 갔다. 소아레 빨래터에서 방망이가 결대로 갈라졌을 때 켈리는 그것을 알았다. 지팡이를 멀리 치워 두었더니 넘친 것이 방망이로 갔다. 그 전에는 넘칠 때마다 지팡이로 갔고, 그래서 금이 갔다. 켈리는 그 금을 부서진 것으로 알았다. 부서진 것이라면 켈리는 많이 보았다. 탁자도 문짝도 홑이불도 부서졌다.
그런데 이 금은 부서진 자리가 아니었다. 켈리 손으로 올 것이 나무로 간 자리였다. 금이 더 벌어지지 않게 쇠 테를 감은 것은 바르트였고, 테를 감은 날 새벽 바르트의 목덜미에 혹이 하나 늘었다. 켈리는 그 혹을 보았으나 그때는 그것을 셈하지 않았다.
어귀의 나무들이 어둠 속에서 같은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켈리는 그것을 보았고 무릎 위의 지팡이를 보았다. 켈리가 아는 장부에는 지불인 칸이 하나뿐이었다. 칸 하나에 번호 하나였다. 그 칸에 다른 것을 적는 법은 교범에 없었다.
켈리가 일어섰다. 바르트는 나무에 기대 자고 있었는데 켈리가 다가가자 눈을 떴다. 대장장이는 쇠 식는 소리에도 깨는 사람이었다.
"…아저씨."
"응."
"노트. 한 장만요."
바르트가 켈리를 보았다. 켈리가 바르트의 노트를 달라고 한 것은 처음이었다.
"뭘 적게."
"…제 거요."
바르트가 노트를 내밀었다. 찢어 주지는 않았다.
"한 장은 안 되네. 찢으면 맞붙은 장까지 빠져. 맨 뒤에 쓰게."
켈리가 노트를 받았다. 맨 뒷장은 비어 있었다. 연필을 쥐었다. 쥐는 데에는 마법을 걸 필요가 없었다. 켈리는 맨 위에 줄을 하나 그었다. 그다음에 칸을 몇 개로 나눌지 몰라서, 오래 연필을 들고 있었다.
칸

어귀의 아침은 풀이 먼저 알렸다.
선 바깥의 풀이 하나같이 젖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슬이 무거워서였다. 선 안쪽, 일행이 누웠던 자리의 풀만 고개를 들고 있었다. 여섯 사람이 누운 모양대로 마른 자리가 여섯이었고, 그 가장자리에서 젖은 풀과 마른 풀이 칼로 그은 듯이 갈렸다. 머리 위의 가지들은 밤새 그쪽으로 기울어 있었는데 해가 오르자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갔다.
린이 일어나 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무도 없는 숲을 향해 이마를 숙였다가 들었다.
"고맙습니다. 약속대로 선은 넘지 않았습니다."
숲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린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일어나 무릎의 흙을 털었다.
켈리는 바르트의 노트를 가슴에 얹은 채 깨어났다. 연필은 손에 쥐고 있었다. 노트를 펴 보니 맨 뒷장에는 어젯밤 그은 줄 하나뿐이었다. 칸을 몇 개로 나눌지 정하지 못한 채 잠든 것이었다. 켈리는 노트를 덮어 품에 넣었다. 바르트가 그것을 보았고 돌려 달라고 하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에 켈리는 몇 번 뒤를 돌아보았다. 어귀의 나무들은 여전히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기운 쪽 어딘가에 그 늙은 정령이 앉아 있을 것이었다. 켈리는 그가 짚고 있던 지팡이를 생각했다. 장식 없는 마른 나무였고 길이가 켈리의 것과 비슷했다. 그 지팡이에도 금이 있는지 켈리는 보지 못했다. 어두웠고, 보려고 하지 않았다. 다음에 보면 볼 것이었다. 켈리는 다음이라는 말을 생각한 것이 이상해서 한동안 그 말을 입 안에서 굴렸다.
고슈는 앞장서 걸었다. 올 때보다 걸음이 빨랐다. 늪이 다시 시작되는 자리에서 고슈는 한 번 멈추어 서쪽을 돌아보았고, 그다음부터는 돌아보지 않았다. 마르던 신발이 다시 젖었다. 질척이는 소리가 돌아왔고, 켈리는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모라에는 한낮을 조금 넘겨 닿았다. 배를 띄우기에는 늦은 시각이어서 그날 밤도 모라에서 묵었다.
켈리는 저녁을 먹고 둑 끝에 앉아 노트를 폈다. 맨 뒷장을 찾느라 뒤에서부터 넘겼는데, 맨 뒷장 바로 앞의 몇 장에 바르트의 글씨가 있었다. 앞쪽의 글씨와 달랐다. 앞쪽은 무엇을 먹었고 무엇을 샀고 어디서 잤는지가 길게 적혀 있었는데, 이 장들은 줄마다 짧았다. 날짜가 있었고, 몸의 자리가 있었고, 크기가 있었다.
앞의 줄일수록 먹이 바래 있었고 글씨가 작았다. 뒤로 올수록 글씨가 컸다. 눈이 나빠진 것인지 쓰는 손이 굵어진 것인지 켈리는 알 수 없었다. 남은 줄에는 크기가 곡식으로 적혀 있었다. 콩, 팥, 쌀알. 몸에 붙은 혹의 크기였다. 모자란 줄에는 곡식이 없었다. 대신 「살 파임」이라고 적혀 있었다. 모자라면 몸에서 가져갔고, 가져간 자리는 살이 파였다. 줄 끝마다 푼이 붙어 있었다. 한 푼 남음, 두 푼 모자람. 푼은 저울의 눈금이었다. 바르트는 제 몸에 붙은 것도 제 몸에서 빠져나간 것도 저울의 눈금으로 적고 있었다.
「왼 손목 안쪽. 살 파임. 손톱. 두 푼 모자람.」
「왼 팔뚝 안쪽. 팥. 한 푼 남음.」
모자란 줄은 열일곱 가운데 둘뿐이었다. 둘 다 맨 앞쪽, 먹이 가장 바랜 자리에 있었다. 그 뒤로는 전부 남은 줄이었다. 붙는 것은 무게만 늘렸으나 빠지는 것은 어디서 빠질지 몰랐다. 손목에서 빠지면 손목이 파였고, 더 안쪽에서 빠지면 더 안쪽이 파일 것이었다. 바르트는 그것을 두 번 배웠고, 그다음부터는 저울이 어느 쪽으로든 기울어야 한다면 남는 쪽으로 기울게 달았다. 바르트의 혹은 그렇게 해서 늘어난 것이었다.
맨 아래 줄을 켈리는 읽기 전에 알았다.
「5월 3일. 목 오른쪽. 쌀알. 한 푼 남음.」
쇠 테를 감은 날이었다. 그날 아침 켈리는 지팡이에 없던 것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고, 바르트는 금 갔길래 그랬다고만 했다. 켈리는 그날 바르트의 목덜미를 보지 않았다. 볼 줄을 몰랐다.
켈리는 그 장을 오래 보았다. 바르트에게도 장부가 있었다. 지불인 칸에 바르트 하나만 적히는 장부였다. 스무 해 동안 열일곱 줄이었다. 열일곱째 줄의 값은 켈리의 지팡이가 낼 값이었다.
켈리가 맨 뒷장으로 돌아갔다. 어젯밤 그은 줄 아래에 세로줄을 둘 그었다. 칸이 셋이 되었다. 첫째 칸 머리에 「켈리」라고 적었다. 둘째 칸에 「지팡이」라고 적었다. 셋째 칸에서 연필이 멈췄다가 「아저씨」라고 적었다. 바르트의 이름을 쓸 줄은 알았다.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어서 이름으로 적지 못했다.
그다음이 어려웠다. 줄마다 무엇을 적어야 하는지 켈리는 몰랐다. 날짜는 몰랐다. 켈리가 아는 것은 자리였다. 켈리는 칸 왼쪽 여백에 자리를 적었다. 언 땅. 도박장. 로엔. 품팔이 마을. 호위. 빨래터. 모라. 앞쪽 줄들은 칸이 다 차지 않았다. 켈리는 거기서 무엇을 냈는지 기억했으나 그것을 무엇이라고 적는지 몰랐다. 다리가 남의 것이 된 날을 무엇이라고 적어야 하는지, 컵을 못 든 저녁을 몇이라고 적어야 하는지 교범에는 없었다. 교범에는 출력이 있었고 소모가 있었다. 소모는 마법청이 적었다. 켈리가 적은 적은 없었다.
막사의 저울 옆에는 서기가 앉아 있었다. 켈리가 저울에 오르면 서기가 눈금을 읽고 장부에 적었다. 출격에서 돌아오면 켈리는 다시 저울에 올랐고 서기는 다시 적었다. 그 두 숫자의 차이가 켈리가 낸 값이었을 것이다. 켈리는 그 장부를 거꾸로만 보았다. 저울 위에서 서기의 붓이 움직이는 것을 내려다보았을 뿐이었다. 그 장부에 칸이 몇 개였는지 켈리는 몰랐다. 하나였을 것이었다. 번호 하나에 칸 하나였다.
켈리는 결국 교범의 말을 찾는 것을 그만두고 자기 말로 적었다. 「다리 남의 것.」 「컵 못 듦.」 「빵 반.」 「안 걸음. 멍.」 교범에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날그날 켈리의 몸이 켈리에게 한 말이었다. 적고 나니 앞쪽 줄들의 켈리 칸이 조금씩 찼다. 글씨는 삐뚤었고 획마다 연필이 한 번씩 멈췄다. 켈리가 글자를 배운 지 넉 달이 되지 않았다.
뒤쪽 줄은 쉬웠다. 바르트가 적어 둔 것이 있었다. 켈리는 노트 앞쪽을 넘겨 소아레의 줄을 찾았다. 「빨래 1. 빵 2.」 「방망이 1. 빵 2. 생선 1.」 그것을 빨래터 줄의 켈리 칸에 옮겨 적었다. 지팡이 칸은 비었다. 그날 지팡이는 널빤지 저쪽 끝에 있었다. 대신 방망이가 갈라졌다. 켈리는 방망이를 어느 칸에 적을지 한참 생각하다가 칸을 하나 더 그었다. 넷째 칸 머리에 「방망이」라고 적었다. 그 칸에 들어갈 것은 한 줄뿐이었다. 켈리는 그래도 지우지 않았다.
「로엔」 줄의 지팡이 칸에 「실금」이라고 적었다. 「품팔이 마을」 줄의 지팡이 칸에는 「금」이라고 적고, 아저씨 칸에 바르트의 줄을 그대로 옮겼다. 목 오른쪽. 쌀알.
「모라」 줄에서 켈리의 연필이 다시 멈췄다. 모라에서 켈리는 마법을 걸지 않았다. 늪에서 젊은이를 끌어낼 때 올라온 것을 도로 내려보냈다. 켈리는 켈리 칸에 「0」이라고 적었다. 0을 적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적고 나서 오래 보았다. 자기 칸에 0이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그건 내 칸이야."
바르트가 뒤에 와 서 있었다. 켈리의 어깨 너머로 아저씨 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저씨 거 맞잖아요."
"내가 낸 거지. 자네가 낸 게 아냐."
"제 일로 난 거예요."
"그래도 내 몸이야."
"그래서 칸을 따로 그었어요."
바르트가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서 있다가 켈리 옆에 앉았다. 앉으면서 목덜미에 손이 갔다가 내려왔다. 둘은 한동안 둑 아래 물을 보았다. 물이끼가 저울이 가라앉은 자리를 고르게 덮고 있었다.
"…그러지."
바르트가 말했다. 그것뿐이었다.
니카가 지나가다 멈춰 서서 노트를 넘겨다보았다. 니카의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가 멈췄다.
"그건 셈이 아니네요."
"그럼 뭐예요."
"장부요. 셈은 답이 하나 나와요. 장부는 칸이 늘어요."
니카가 그렇게 말하고 지나갔다. 켈리는 칸을 세었다. 넷이었다. 어제는 하나였다.
이튿날 소아레에 닿은 것은 해 질 녘이었다.
다리 위에서 아이들이 먼저 보았다. 「왔다!」 하는 소리가 다리를 따라 마을 안쪽으로 건너갔다. 아이 하나가 니카에게 달려와 빈손을 내밀어 보였다. 감사 결의안의 「아직」이 그사이에 또 늘었다고 했다. 아이는 이번에는 줄 거라는 쪽에 조개껍데기를 다 걸었다가 다 잃었다고 했다. 니카가 그 빈손을 내려다보았다.
"…다음엔 느는 쪽에 걸어."
니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이 어느 외는 이에게 외워질지 몰랐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리 저쪽으로 뛰어갔다.
큰 마루에 등잔이 올라 있었다. 회의 중이었다. 배가 장대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동안 마루 위에서 외는 소리가 내려왔다. 박자가 느리고 고르게 떨어졌다. 일행 안건 스물한째 회의를 외는 중이었다.
"일행이 없소. 아직."
외는 이가 그 두 마디를 외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열아홉째도 스물째도 스물한째도 그 두 마디였다. 넷이 다 그랬으므로 외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행이 자리를 비운 회의는 일행이 있던 회의보다 짧았다.
그리고 스물둘째 회의가 열렸다. 외는 이들이 차례로 돌았다.
"일행이 없소."
배는 바로 그 마루 밑에 매여 있었다. 오벨이 입을 열었다.
"있—"
린이 오벨의 소매를 잡았다.
"차례 아니에요."
"…저희가 지금 여기 있지 않습니까."
"회의에선 없어요. 들어온 게 아직 안 외워졌으니까요."
오벨이 입을 다물었다. 마루 위에서 외는 이들이 하나씩 「아직」이라고 했다. 스물둘째 회의는 일행이 마루 밑에 앉아 있는 채로 일행이 없는 회의로 끝났다. 니카가 소리 없이 무언가를 셌는데, 다 세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켈리는 노트에 칸을 하나 더 그었다. 다섯째 칸 머리에 「외는 이」라고 적었다. 그 아래에 「14」라고 적고, 옆에 「22」라고 적었다. 오벨에게 물으니 스물두 회의를 외는 데는 내일 하루 낮이 꼬박 갈 거라고 했다. 켈리는 그 옆에 「하루」라고 적었다. 열넷이 하루씩이었다. 켈리 일로였다.
이튿날 아침 린은 마루를 쓸었다. 다 쓸고 나서 오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할머니. 차례 주세요."
"무엇을 말하려고."
린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닫지 않았다.
"어귀에서 본 거요. 할머니가 못 본 거요."
오나의 손이 그물코에서 멈췄다. 오래 멈춰 있었다. 그물코 하나를 다 기울 만한 시간이 지났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저녁에 주마."
린이 고개를 숙였다. 숙인 채로 오래 있었다. 일어나 빗자루를 집었다. 다 쓴 마루를 다시 쓸지는 않았다. 빗자루를 벽에 세워 두고 마루 끝에 앉아 다리를 물 위로 늘어뜨렸다. 켈리가 문 옆에서 그것을 보았다. 린의 발끝이 물을 한 번 찼다. 물방울이 반딧불이 대신 아침 햇빛을 받았다.
외는 이들이 큰 마루로 모이기 전에 린이 켈리를 불렀다. 둘이 마루 끝에 나란히 앉았다. 린이 무릎 위에 두 손을 올리고 등을 폈다. 큰 마루에서 하는 자세였다.
"들어 봐. 이상하면 말해 줘."
"…난 몰라."
"그래도."
린이 하려는 말을 했다. 처음에는 길었다. 어귀에 가기까지의 일부터 나왔고 숲지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가 순서 없이 나왔다. 린이 말을 멈추고 한참 물을 보다가 다시 했다. 두 번째에는 어귀에 가기까지가 빠졌다. 세 번째에는 「그러니까」가 빠졌다. 네 번째에 린은 열여드레 전 큰 마루에서 소리쳤던 말을 붙여 보았다. 주문, 맨발, 사례, 회의. 「그게 왜」에서 목소리가 올라갔다. 린이 입을 다물었다.
"…이상해?"
"올라갔어."
"알아."
린이 다섯 번째로 했다. 「그게 왜」를 뺐다. 목소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같은 말이었는데 다른 말이었다. 린이 손목의 장신구를 내려다보았다. 세지 않았다.
"이거면 돼."
켈리는 무엇이 되는지 몰랐다. 다만 다섯 번째 말이 첫 번째 말보다 짧았고, 짧아진 만큼 무거웠다.
일행 안건 스물셋째 회의는 아침에 시작했다.
스물두 회의를 외는 데 하루 낮이 갔다. 첫째 회의의 「…아직이요」가 나왔고, 바르트의 「제 입으로는 카르소 사람이에요」가 나왔고, 니카의 「…저요」가 나왔다. 일곱째 회의의 교관의 줄이 교관의 박자로 나왔다. 켈리는 그 줄을 다시 들으면서 이번에는 무릎 위의 손을 보지 않았다. 앞을 보았다. 열여덟째 회의의 「당신 술에도 빈 자리가 있소」가 나왔고 오나가 켈리에게 차례를 준 끄덕임이 나왔다. 끄덕임은 말이 아니었으므로 외는 이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것으로 외웠다. 그다음에 넷이 다 「일행이 없소. 아직」인 회의가 나왔다. 스물둘째의 「일행이 없소」가 나올 때 오벨의 어깨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 하루 낮 동안 마을 사람들이 두 번 마루 끝에 생선과 빵을 올려놓고 갔다. 외는 이들은 외는 것을 멈추지 않고 번갈아 먹었다. 하나가 외는 동안 나머지 가운데 몇이 빵을 뜯었고, 틀린 데가 나오면 빵을 쥔 채로 손을 들었다. 일행은 둘레 바깥에 앉아 있었다. 바르트는 두 번 졸았고 두 번 다 「제 입으로는 카르소 사람이에요」가 나올 때 깼다. 오벨은 수첩에 회의 번호를 하나씩 적어 두고 외는 이가 그 회의를 다 외면 줄을 그어 지워 나갔다. 니카는 처음부터 끝까지 입술을 움직였다. 켈리는 빵을 둘 먹었다. 걸지 않았는데 둘을 먹었다. 앉아서 듣기만 하는 것도 배가 고팠다.
해가 졌다. 등잔이 올라왔다. 검은 탁자가 불빛을 먹었다.
오나가 입을 열었다.
"소아레 린. 차례요."
린이 일어섰다. 열여드레 전 일곱째 회의에서 일어섰던 그 자리였다. 그때는 언제 일어섰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이번에는 다들 보았다. 린은 맨발로 마루를 디디고 섰고 두 손을 앞에 모았다. 손목의 장신구가 떨리지 않았다.
"경계의 숲 어귀에서 숲지기를 봤어요."
외는 이들이 들었다. 열넷이 같은 자세로 들었다.
"있었어요. 해가 지고 나서야 보였어요. 빛이 흐려서 해가 있으면 안 보여요. 어귀의 나무가 한쪽으로 누운 건 쓰다듬고 지나가서가 아니에요. 숲지기가 기대서예요. 오래 못 서요. 나무들이 나눠 진대요. 이백 해째요."
린이 숨을 한 번 쉬었다.
"사람 일에는 끼지 않기로 했대요. 숲을 길러서 사람이 못 들어오게 하는 데까지가 자기들 일이래요. 그래도 예의 바르게 청하면 조금은 된대요. 그래서 우리가 이슬을 안 맞았어요."
"그리고 대가는 끝나지 않는대요. 나눠 지면 견딜 수 있대요."
마루가 조용했다. 탁자 끝에서 하벨의 붓이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 더 있어요."
린이 오나를 보았다. 오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문을 안 하는 건 남의 걸 빌리면서 소리 지르는 게 무례라서예요. 맨발인 건 가죽을 사이에 두면 아무것도 못 빌려서예요. 사례는 가진 것 중에 제일 좋은 걸 줘요. 회의가 긴 건 아무도 남 대신 안 정해서예요."
열여드레 전과 같은 말이었다. 박자가 달랐다. 그때는 끝까지 가지 못하고 「그게 왜, 그게 왜」에서 끊겼다. 이번에는 끝까지 갔다.
"바깥은 이걸 잡술이라고 해요. 섞였다는 말이래요. 맞는 말이에요."
린이 앉았다. 앉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손목의 장신구가 한 번 부딪쳤다가 멎었다.
"소아레 린. 외겠소."
오나가 말했다. 린을 보지 않고 앞을 보고 말했다. 켈리는 그 말을 들으면서 린의 손을 보았다. 린의 한 손이 다른 손목의 장신구를 덮고 있지 않았다.
회의가 이어졌다. 차례가 다시 오나의 왼쪽부터 돌았다.
"아직."
"아직."
쇠물의 외는 이 차례에서 물음이 나왔다.
"땅 없는 켈리. 이름을 붙였소."
"…아직이요."
쇠물의 외는 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넘겼다.
"아직."
"아직."
켈리는 무릎 위에 노트를 펴 놓고 있었다. 다섯째 칸에 「14」와 「22」와 「하루」가 있었다. 그 아래에 23을 적을 자리가 비어 있었다. 「아직」이 하나 나올 때마다 켈리의 엄지가 그 빈자리를 한 번씩 문질렀다. 넷째 아직에서 켈리는 그 아래에 24를 적을 자리도 비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아래도 비어 있었다. 맨 뒷장이었는데 칸은 아래로 얼마든지 내려갈 수 있었다.
켈리가 일어섰다.
차례가 아니었다.
일어서는 동안 켈리는 린을 보았다. 차례 아닌 데서 일어서는 것이 무엇인지 켈리에게 가르친 사람이 린이었다. 린이 켈리를 올려다보았다. 막지 않았다.
켈리는 말을 하지 않았다. 차례 아닌 말은 외지 않는다. 그 대신 탁자 앞으로 걸어갔다. 지팡이를 들었다. 탁자 모서리를 살짝 두드리려고 했다. 차례를 청하는 데 말이 아닌 것이 쓰여도 되는지는 아무도 정해 두지 않았다.
켈리에게 살짝은 없었다.
쾅.
등잔이 한 번 뛰었다. 하벨의 붓이 탁자 끝까지 굴러갔다. 마루 밑에서 장대가 한 번 울었다. 외는 이 열넷이 켈리를 보았다. 켈리가 지팡이를 내려다보았다. 걸지 않았다. 걸지 않아도 그랬다. 켈리의 팔은 삼 년 동안 모래주머니를 지고 달린 팔이었다.
"…그건 어떻게 외오."
쇠물의 외는 이가 말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린이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어깨가 떨렸다. 오나가 그쪽을 보지 않았는데, 오나의 입꼬리 한쪽도 아주 조금 움직였다가 돌아갔다. 켈리가 쇠 테 아래를 엄지로 쓸어 보았다. 금은 벌어지지 않았다. 검은 탁자 모서리에 지팡이 끝만 한 자국이 하나 나 있었다. 늪에서 건져 올린 뒤로 몇 대째 그 위에서 회의를 해 온 탁자였다. 자국은 그 탁자에 처음 난 것이었다.
오나가 켈리를 보았다.
"땅 없는 켈리. 차례를 청한 거요."
"…예."
"말하시오."
켈리가 지팡이를 내렸다. 내리는 데에는 살짝이 필요 없었다.
"이 안건, 저희 거잖아요."
외는 이들이 들었다.
"남 대신 안 정한다고 했잖아요. 그럼 저희 건 저희가 정해도 돼요?"
누구도 막지 않았다. 켈리가 노트를 들어 보였다. 칸이 다섯 그어진 장이었다. 외는 이들은 글자를 읽지 못했다. 그래도 칸은 보였다.
"손님은 안 할게요."
마루가 조용해졌다. 마루 밑에서 니카가 고개를 들었다.
"손님은 열넷이 다 정해야 하잖아요. 그건 안 끝나요. 니카가 1할이래요."
마루 밑에서 니카가 고개를 도로 숙였다.
"대신 오라는 데 갈게요. 오라는 건 마을마다 정하면 되잖아요. 남 대신 정하는 거 아니잖아요."
켈리가 말을 멈췄다. 할 말은 그것뿐이었다. 켈리는 고개를 숙였다. 숙이는 것은 린에게 배운 각도였다. 드는 것은 이번에도 늦었는데, 늦은 만큼 외는 이들이 켈리의 정수리를 오래 보았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차례가 다음 외는 이에게 있었는데 그 외는 이가 입을 열지 않았다. 「아직」이라고 할 자리였다. 그런데 무엇에 대해 아직인지가 없어졌다. 손님으로 둘지 말지를 묻던 안건에서 손님이 손님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모라의 외는 이가 입을 열었다. 차례가 그였다. 얼굴 한쪽의 그을린 얼룩이 등잔 쪽을 향해 있었다.
"…모라는 청하오."
그것뿐이었다. 모라의 외는 이는 차례를 넘겼다.
"쇠물도 청하오."
쇠물의 외는 이가 말했다.
"저울을 한 번 더 보고 싶소. 그리고 그 소리를 어떻게 외는지 아직 모르겠소."
그다음 외는 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도 하지 않았다. 청하지 않는 것도 그 마을이 정하는 일이었다. 다음 외는 이가 청했고, 그다음은 하지 않았고, 그다음은 청했다. 울음늪의 외는 이가 청하면서 니카 쪽을 보았다. 니카가 왼 손목을 소매 속으로 넣었다.
차례가 늪 북쪽 끝 마을의 외는 이에게 갔다. 윗늪이라고 린이 귓속말을 했다. 경계의 숲과 산 사이로 물이 빠져나가는 데라고 했다. 등잔 빛이 겨우 닿는 자리에 앉은 늙은이였는데, 회의 내내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윗늪도 청하오."
외는 이가 잠깐 쉬었다.
"짐승이 앓소. 어디가 아픈지 모르겠소. 본 것이니 외오."
마루 밑에서 무엇이 움직였다. 널빤지 틈으로 보이던 고슈의 등이 펴졌다.
차례가 오나에게 돌아왔다. 오나가 무릎 위의 손을 들어 그물을 집었다. 집어 놓고 깁지는 않았다.
"일행 안건. 손님은 정하지 않소. 청은 마을마다 하오."
오나가 한 번 쉬었다.
"끝났소."
소리가 바로 나지 않았다. 외는 이 열넷이 그 말을 외느라 입술이 조금씩 움직였다. 「끝났소」는 스물세 회의 동안 처음 나온 말이었다.
마루 밑에서 니카의 입술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짧았다.
"…올해 안이네요."
"1할이 나왔군."
바르트가 말했다.
"1할도 나오면 나온 거예요."
오벨이 수첩을 폈다. 「일행 안건 — 종결. 당사자 결정. 청은 마을별.」 적고 나서 오벨은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으려다 말았다. 법률가는 그런 종결을 본 적이 없었다. 안건이 기각된 것도 가결된 것도 아니었다. 안건이 스스로 일어나서 다른 데로 간 것이었다.
하벨이 탁자 끝까지 굴러간 붓을 집어 왔다. 붓끝을 다시 적시고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받는 곳이 어디인지 켈리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 소리를 어떻게 외는지는 끝내 정해지지 않았다. 그 소리를 욀 다음 회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외는 이들이 하나둘 마루를 내려갔다. 모라의 외는 이는 켈리 앞을 지나가다 걸음을 늦추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쇠물의 외는 이는 탁자 모서리의 자국을 손끝으로 한 번 쓸고 갔다. 윗늪의 외는 이만 오래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올린 손을 끝까지 풀지 않았다. 등잔이 그 늙은 얼굴을 아래에서 비추었는데, 그 얼굴은 다른 외는 이들처럼 쉬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날 밤 켈리는 오나네 마루 끝에서 노트를 폈다.
다섯째 칸의 「22」 아래에 「23」이라고 적었다. 그 옆에 무엇을 적을지 생각하다가 「끝」이라고 적었다. 그러고는 맨 아래에 줄을 하나 새로 넣었다. 왼쪽 여백에 「소아레. 탁자」라고 적었다. 켈리 칸에 「0」이라고 적었다. 걸지 않았으므로. 지팡이 칸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금이 벌어지지 않았으므로. 다른 칸을 하나씩 내려다보다가, 칸 바깥 여백에 작게 「자국 1」이라고 적었다. 탁자의 칸은 긋지 않았다. 탁자는 실베인의 것이었다.
켈리 칸에 0이 둘이 되었다. 켈리는 그 둘을 한참 보았다.
바르트가 와서 노트를 달라고 했다. 켈리가 내밀자 바르트는 맨 뒷장을 펴지 않고 그 앞의 장을 폈다. 바르트의 장이었다. 바르트가 열일곱째 줄 끝에 연필로 무언가를 작게 적었다. 켈리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바르트가 노트를 덮어 다시 켈리에게 내밀었다.
"맨 뒷장은 자네 거야. 쓸 때마다 달라고 하게."
"…매번요?"
"매번. 찢어 주면 맞붙은 장까지 빠진다니까."
켈리가 노트를 받았다. 앞쪽에는 바르트가 스무 해 동안 먹고 사고 잔 것이 있었고, 그 뒤에 열일곱 줄이 있었고, 맨 뒤에 켈리의 다섯 칸이 있었다. 한 권이었다. 켈리는 바르트가 열일곱째 줄 끝에 무엇을 적었는지 넘겨 보지 않았다. 남의 칸이었다.
린이 옆에 와서 앉았다. 다리를 물 위로 늘어뜨렸다. 손목의 장신구를 세지 않았다. 열넷이었다.
"할머니가 외겠대."
"…응."
"내 말을. 다음에 아무 회의에서나 숲지기 얘기가 나오면 할머니가 내 말로 외는 거야. 소아레 린이 봤소, 하고."
린이 그렇게 말하고 물을 내려다보았다. 반딧불이가 떠다녔다. 하나가 떠오르면 물에 비친 것이 같이 떠올라서 둘로 보였다.
"이제 내 말도 남아."
켈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노트를 덮지 않고 무릎 위에 펴 둔 채로 있었다. 칸은 다섯이었다. 아래로 얼마든지 내려갈 수 있었다.
마루 아래 장대 밑에서는 고슈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등잔이 다 꺼질 때까지 고슈는 북쪽을 보고 있었다. 윗늪의 외는 이가 짐승이 앓는다고 말한 뒤로 고슈는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bluelimn's > 물리법사 켈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물리법사 켈리 13 (0) | 2026.10.08 |
|---|---|
| 물리법사 켈리 12 (0) | 2026.10.07 |
| 물리법사 켈리 11 (0) | 2026.10.06 |
| 물리법사 켈리 10 (0) | 2026.10.05 |
| 물리법사 켈리 9 (0) | 2026.10.04 |
| 물리법사 켈리 8 (0) | 2026.10.03 |
| 물리법사 켈리 7 (0) | 2026.10.02 |
| 물리법사 켈리 6 (0) | 2026.10.01 |
| 물리법사 켈리 5 (0) | 2026.09.30 |
| 물리법사 켈리 4 (0) | 2026.09.2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