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종류의 오싹함이 있다.
하나는 누구나 겪는, 여름밤 바람 같은 오싹함. 그리고 다른 하나는—나만 아는, 등 뒤에 가만히 서 있는 오싹함.
그 큰일을 겪고 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그 두 번째 오싹함을 느낀다. 골목 그늘에서, 낡은 건물 틈에서,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그 느낌. 요괴가 유독 잘 꼬이는 내 체질은, 세상을 한 번 구했다고 해서 사라져 주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남들은 못 보는 걸 보는 겁쟁이다.
하지만—딱 하나, 달라진 게 있다.
이제 나는, 그 오싹함 앞에서 눈을 감지 않는다.
어둑시니와의 그 밤이 지나고, 며칠이 흘렀다.
가장 급한 일은, 지마를 회복시키는 거였다. 금이 간 몽당방망이는 여전히 잠잠했다. 이따금 희미한 온기만 느껴질 뿐, 그 시끄러운 목소리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애가 탔다.
"할아버지, 지마 어떻게 하면 빨리 나아요?"
"글쎄다. 도깨비 본체가 상한 건, 시간이 약이지." 고만복 할아버지가 수염을 쓸며 말했다. "한데, 회복을 좀 도우려면… 그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걸 먹이는 게 최고지."
지마가 제일 좋아하는 것. 그건, 물어볼 것도 없었다.
그날부터 나는, 용돈을 탈탈 털어 메밀묵을 사 날랐다. 방망이 옆에 메밀묵 한 접시를 놓아두면, 다음 날 아침엔 신기하게도 접시가 텅 비어 있었다. 잠든 와중에도, 지마는 메밀묵만은 꼬박꼬박 챙겨 먹은 거다. 나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게 살아 있다는 증거 같아서 안심이 됐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아침이었다.
"…어이, 꼬맹이."
잠결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지마?! 지마야!"
"흐암. 잘 잤다." 방망이 위로, 지마가 기지개를 켜며 스윽 나타났다. 금 갔던 자리는 아직 희미하게 흉터처럼 남아 있었지만, 그 왕방울 눈만은 예전 그대로 반짝였다. "한데 꼬맹이, 메밀묵이 좀 부족하더구나. 이 몸 정도 되는 대도깨비가 회복하려면, 최소 백 그릇은 있어야 하는 법인데. 겨우 며칠에 한 접시가 뭐냐."
"…너 지금 살아난 지 십 초 됐거든?"
살아나자마자 메밀묵 타령이라니. 나는 기가 막히면서도, 눈물이 핑 돌 만큼 반가웠다.
그런데 지마는, 기력을 되찾자마자 더 가관이었다.
"크흠. 아무튼 말이다, 꼬맹이." 지마가 팔짱을 끼고 거들먹거렸다. "지난번 그 어둑시니 말이다. 결국, 누구 덕에 이긴 것 같으냐?"
"…어, 다 같이?"
"어허, 무슨 소리! 마지막에, 이 몸이 딱! 깨어나서, 결정적인 힘을 보탰지 않았느냐!" 지마가 제 가슴을—가슴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탕탕 쳤다. "생각해 봐라. 이 천 년 대도깨비가 마지막에 짠! 하고 나타나지 않았으면, 네가 그 어둠을 어찌 이겼겠느냐? 결국 이 모든 게, 다 이 몸의 활약 덕분인 게지! 으하하!"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정작 그 '마지막 한 번'을 위해, 잠들기 전까지 나를 감싸다 방망이에 금이 간 건 쏙 빼놓고. 게다가 마지막엔 힘이 다 빠져서 "미안하다, 이제 정말 못 하겠다" 하고 다시 잠들어 놓고선.
"지마야. 너 그때, 마지막에 힘 다 빠져서 도로 잠들었잖아."
"뭐, 뭣이? 그, 그건 이 몸이 잠깐 전략적으로 휴식을 취한 거고—"
"그리고 결정타는 남구천 아저씨랑, 내가 낸 건데."
"어허, 세세한 건 됐다! 아무튼 큰 그림은 이 몸이 그렸다는 게 중요한 게지!"
"게다가 마지막에 '둘이서 함께 가자'고 멋있게 말한 것도 너였잖아. 나 그거 감동했는데."
"그, 그건… 크흠. 뭐, 그런 낯간지러운 말은 못 들은 걸로 해 다오." 지마가 괜히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부렸다. 왕방울 눈이, 어쩐지 살짝 붉어진 것도 같았다.
나는 그만 웃음이 터졌다. 그래. 이 시끄럽고 뻔뻔한, 그러면서도 은근히 정 많은 허풍쟁이가 돌아왔다. 이제야, 정말로 다 끝난 것 같았다.
세상을 구한 다음 날, 나는—평범하게 학교에 갔다.
정확히는, 지각을 했다. 며칠간 지마를 간호하느라 늦잠을 잔 탓이었다. 교문을 헐레벌떡 뛰어 들어가는데, 하필 담임인 마정숙 선생님—우리끼리는 '마녀쌤'이라 부르는—과 딱 마주쳤다.
"이민수! 너 또 지각이야?" 마녀쌤이 팔짱을 끼고 눈을 치켜떴다. "요즘 정신을 어디다 팔고 다니는 거니. 준비물도 자꾸 빼먹고, 수업 시간엔 꾸벅꾸벅 졸고. 내가 너만 할 때는 말이야, 새벽같이 일어나서 십 리 길을 걸어 학교를 다녔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녀쌤의 '나 때는 말이야' 이야기가 시작되자,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게 한번 시작되면 최소 십 분이었다.
세상을 구한 영웅이, 지각했다고 잔소리를 듣고 있다니. 어젯밤까지 거대한 어둠과 목숨 걸고 싸운 나인데, 오늘은 준비물 안 챙겼다고 혼나고 있었다. 나는 그 어이없는 낙차에, 웃음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그 잔소리가, 조금도 밉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웠다. 이 지루하고 평범한 잔소리가 있다는 건, 우리 동네가 무사하다는 뜻이었으니까. 마녀쌤이 이렇게 시시콜콜 잔소리를 할 수 있는 이 평화가, 나는 새삼 소중했다.
"…선생님, 죄송해요. 내일부터 안 늦을게요." 내가 순순히 고개를 숙이자, 마녀쌤이 오히려 김이 샜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소 같으면 우물쭈물 변명이나 하던 녀석이, 웬일로 순순히 사과를 하니 의외였던 모양이다.
"…어, 그래. 알면 됐어. 어서 들어가." 마녀쌤이 헛기침을 하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 무뚝뚝한 얼굴 뒤로, 아주 잠깐 어리둥절한 기색이 스쳤다. 나는 그게 어쩐지 우스워서, 교실로 뛰어가며 피식 웃었다.
교실에 들어가니, 수현이가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뒷자리의 서리는 여전히 두꺼운 요괴 책에 코를 박고 있었다. 다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범한 얼굴이었다. 온 동네를 구한 우리 넷이, 오늘은 그냥 평범한 초등학생으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건—어른들 중 누구도,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는 거였다.
쉬는 시간, 아이들이 창밖을 보며 떠들었다.
"야, 요즘 우리 동네 왜 이렇게 분위기 좋아졌지?"
"그러게.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재개발 얘기도 쑥 들어갔대. 사람들이 갑자기 '그냥 여기서 계속 살자'고 마음을 바꿨다나."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 요즘 하늘도 엄청 맑잖아."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슬며시 웃었다. 날씨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동네를 짓누르던 그 어둠이 걷혔기 때문이다. 사람들 마음에 고여 있던 불안과 슬픔이 사라지자, 다들 다시 이 동네를 사랑하게 된 거였다. 재개발로 흉흉하던 분위기도,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 진짜 이유를 아는 건, 오직 우리뿐이었다. 우리가 그날 밤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어둠과 싸웠는지. 아무도 몰랐고, 앞으로도 모를 거였다.
조금은, 서운할 법도 했다. 온 동네를 구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게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뿌듯했다. 아무도 모르게, 우리가 이 평범한 일상을 지켜 냈다는 것. 그거면, 충분했다.
"뭐 혼자 실실 웃냐." 수현이가 옆구리를 툭 쳤다.
"아니, 그냥. 좋아서." 나는 씩 웃었다.
"뭐래. 이상한 녀석." 수현이도 따라 웃었다.
그날 방과 후, 우리는 늘 그렇듯 고물상으로 향했다.
그런데 고물상 마당에, 뜻밖의 손님이 와 있었다. 낡은 중절모에 검은 정장. 발이 땅에서 한 뼘쯤 떠 있는—저승사자, 명두수 차사였다.
"아, 마침 오셨군요." 명두수 차사가 우리를 보더니, 어디선가 두꺼운 서류 뭉치를 척 꺼냈다. 그 두께가, 웬만한 사전만 했다. "지난번 어둑시니 건, 처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데 뒤처리 서류가 좀… 남아서요."
"서, 서류요?" 내가 되물었다.
"예. 여기, '초대형 요괴 소멸 신고서'. 여기 '흑막 요괴 처리 결과 보고서'. 그리고 이건 '재개발 구역 정화 확인서'에, '주민 기억 조정 면제 신청서'…" 명두수 차사가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읊었다. 넘겨도, 넘겨도 끝이 없었다. "아, 그리고 여기 '어둑시니 소멸에 따른 저승 인구 변동 정정서'도 있고요. 여기 세 군데, 여기 다섯 군데, 각각 서명 부탁드립니다. 도장도 있으면 좋고요."
"세, 세상을 구했는데… 상은 안 주고, 서류를 쓰라고요?!" 수현이가 기가 막힌 듯 외쳤다.
"상이라뇨. 저희 공단엔 그런 예산이 없습니다." 명두수 차사가 안경을 고쳐 쓰며 딱딱하게 말했다. "오히려 요괴를 소멸시키면 소멸시킬수록, 저희는 서류가 늘어나서 야근만 늘어납니다. 이번 달만 벌써 야근이 열두 번째예요." 그러고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 부디, 서류나 빨리 좀…."
결국 우리는 고물상 마당에 쭈그려 앉아, 산더미 같은 서류에 낑낑대며 서명을 했다. 세상을 구한 영웅들의 보상이, 서류 작업이라니. 나는 손목이 아프도록 이름을 쓰면서, 또 한 번 웃고 말았다. 요괴 세계의 관공서도, 사람 사는 곳이랑 똑같이 팍팍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아니, 다음엔 안 뵙는 게 좋겠네요. 요괴 사건은 없는 게 제일이니." 명두수 차사가 서류를 챙겨 둥실 떠오르며, 처음으로 아주 살짝 웃었다. "…아무튼, 고마웠습니다. 여러분 덕에, 저승도 한시름 놓았어요."
그러고는, 그는 스르르 사라졌다.
명두수 차사가 떠난 뒤, 고만복 할아버지가 조용히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낡은 밥상 위에, 정갈하게 차린 밥 한 상이었다. 따뜻한 쌀밥에, 나물 몇 가지, 그리고—된장국 한 그릇. 할아버지는 그 밥상을, 고물상 마당 한켠 별이 잘 보이는 자리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누구 주는 거예요?"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할아버지는 한참을 말이 없다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구천이하고, 그 아이 주는 거다."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어쩐지 촉촉했다. "그 녀석, 옛날에 늘 아침을 지었거든. 형편없는 된장국을 끓여서 말이야. 이제는 그 국이, 이상하게 그립구나." 할아버지가 옅게 웃었다. "저 위에서, 오랜만에 만난 스승하고 제자가—따뜻한 밥이라도, 같이 먹고 있으려나 싶어서."
나는 그 밥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두려움을 없애려다 사랑까지 잃어버렸던 사람. 그러다 마지막 순간, 눈물과 함께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 사람. 남구천 아저씨는, 그렇게 자기 손으로 어둠을 끝내고 별이 되었다. 나는 그가 밉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마지막에 지은 그 따뜻한 웃음이—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잘 드세요, 아저씨." 나는 밤하늘을 향해, 나직이 인사했다.
그때, 밤바람이 살랑 불어와 된장국의 김을 하늘로 실어 날랐다. 마치, 저 위의 누군가가 그 밥상을 받아 든 것처럼. 나는 왠지, 남구천 아저씨가 지금쯤 그 아이와 나란히 앉아—오랜만에 웃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었을까요?" 나는 문득,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한참을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저, 너무 아팠던 사람이지. 아픔을 견디는 법을 몰라서, 잘못된 길로 갔을 뿐이다." 할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그러지 마라. 아프면 아픈 대로, 무서우면 무서운 대로. 그걸 끌어안고 가는 법을, 너는 이미 알잖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구천 아저씨가 마지막에 되찾은 그 눈물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날 저녁, 고물상은 오랜만에 왁자지껄했다.
떡쇠와 도깨비들이 놀러 와 씨름판을 벌였고, 갓파도 개천에서 오이를 한 아름 안고 찾아왔다. 서리는 이번 사건의 전말을 수첩에 빼곡히 정리하며 "어둑시니 완전체 목격 및 소멸 실증 사례… 이건 진짜 역사에 남을 자료야" 하고 혼자 감격했다. 수현이는 떡쇠와 팔씨름을 하다 어이없이 지고는 "다시! 나 이런 거 다 해봐서 아는데!" 하며 재도전을 외쳤다. 물론, 또 졌다.
그리고 지마는—어느새 회복해서, 메밀묵 접시를 끌어안고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 있었다. "역시 평화로운 날엔, 메밀묵이 최고지! 캬!"
"저 도깨비, 회복하더니 먹는 양이 두 배가 됐어." 서리가 수첩에 뭔가를 적으며 중얼거렸다. "'대도깨비, 회복 후 식욕 이백 퍼센트 증가.' 메모 완료."
"어허, 그건 다 회복에 필요한 정당한 영양 섭취니라!" 지마가 발끈했다가, 곧바로 다시 메밀묵에 코를 박았다. 다들 그 모습에 배를 잡고 웃었다.
떡쇠가 그 큰 손으로 내 등을 툭 쳤다. 그 '툭'에 나는 또 앞으로 휘청했지만, 이젠 그것도 익숙했다. "꼬맹이, 언제든 놀러 오너라! 우리 골목은 늘 열려 있으니까!" 방개도 옆에서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갓파는 오이를 아작거리면서, 그 큰 눈으로 나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나는 그 시끌벅적한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몇 달 전만 해도, 나는 혼자였다. 요괴가 무서워서 늘 숨어 다니던, 교실 창턱의 화분 같던 아이. 그때 내 소원은 딱 하나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 조용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디서나 흔한 평범한 중학생이 되는 것.
그런데 지금 내 곁엔, 시끄러운 도깨비와, 겁 없는 친구와, 요괴 덕후 친구와, 능청스러운 스승과, 유쾌한 도깨비들과, 오이를 아작거리는 갓파가 있었다. 하나도 평범하지 않은, 정신없이 시끄러운 나날.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이제, 그 평범한 소원이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밤하늘엔 별이 총총했다.
"꼬맹이." 방망이 위에서, 지마가 문득 물었다. "너, 처음엔 그렇게 평범해지고 싶어 하더니. 이젠 안 그러냐?"
"응."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평범한 것도 좋은데, 지금이 더 좋아. 무섭고 시끄럽지만… 그래도, 지금이 좋아."
"허. 제법 컸구먼." 지마가 흡족하게 웃었다.
나는 여전히 겁쟁이다. 앞으로도 무서운 건 무서울 거고, 오싹한 건 오싹할 거다. 요괴가 꼬이는 이 체질도, 아마 평생 안 고쳐질 거다. 나는 대단한 영웅도, 겁 없는 용사도 아니다. 그냥, 남들보다 겁이 조금—아니, 많이 많은 평범한 아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겁이 많다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걸. 그건 내가 그만큼 많은 걸 사랑한다는 뜻이라는 걸. 그리고 진짜 용기란, 겁이 없는 게 아니라—겁이 나도, 도망치지 않는 거라는 걸.
그러니 누가 나한테 어떤 애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거다.
나는 겁쟁이입니다.
그래도—무서운 걸, 똑바로 볼 줄 아는 겁쟁이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오싹함이 있다.
하나는 누구나 겪는 오싹함.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나만 아는 오싹함.
나는 오늘도 그 두 번째 오싹함을 느낀다. 저기, 골목 그늘 어딘가에서. 목덜미가 서늘해지고, 팔뚝에 소름이 돋는다.
예전 같으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도망쳤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몽당방망이를 꼭 쥐고, 그쪽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지마야. 저기, 또 하나 있다."
"오, 그러냐? 좋다, 꼬맹이. 이번엔 또 무슨 녀석인지, 어디 똑바로 한번 봐 주자꾸나."
나는 씩 웃으며, 그 오싹함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무서웠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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