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추석이라고는 하지만 명절과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추석날 아침 전복죽을 만들어 어머니께 전해 드렸다. 누나 집이 병원에서 가까워 누나 집에 갔다가 저녁을 함께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병원에서 연명치료 관련하여 이튿날 설명을 듣고 서명을 하러 오라고 하여 다음날은 같이 병원에 가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병원에서 대기를 했다. 의사는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지만 마음이 무거워 친절함이 닿지는 못했다. 방광에서 시작된 암세포가 신장으로 가는 혈관을 막아 신장기능이 많이 떨어졌고, 그나마 30%가량 동작하던 한쪽 신장은 이제 거의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하여, 급격히 나빠진 컨디션으로 인해 추석 이후에 계획했던 항암치료는 결국 포기하게 되었다. 치료를 위한 약을 주입하면 신장이 더 망가지고 약을 주입하지 않으면 몸이 망가지는 상황이라 진통제 외에는 크게 할 수 있는 처방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족끼리 상의해보고 요양병원을 알아보는 것이 어떠하냐는 의견을 주었다.

 

갑자기 가족회의를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나오는 길에 기진맥진하여 겨우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는 참았던 눈물을 잠시 내보내고는 연휴가 끝나는대로 요양병원을 알아보자고 하였다. 추석 명절이 일요일에 끝나는데, 월요일은 임시공휴일로 지정되고 화요일은 개천절이라 며칠동안이나 행정적인 처리는 대기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휴일을 즐기고 쉴 때는 몰랐는데 연휴라는 것이 피를 말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와 연계되어 있는 요양병원을 미리 알아봤는데 자리가 많지는 않지만 입원은 가능하다고 했다. 혹시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리 알아봐야 하기에 납골당 같은 곳도 알아봤다. 선산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만약 돌아가시면 화장을 하자고 이야기를 했다. 요양병원에 가면 이제 다시 긴 병마와의 싸움이 시작될 것 같았다.

 

아버지는 이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틀 전까지 음식을 받아 먹다가 이제는 암 환자식으로 나오는 음료만 드신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이제 말하지 않을 테니 더이상 질문하지 말라고 하고는 입을 닫으셨다고 했다. 직원들이 병실에 들어을 때마다 인지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이름과 이것저것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하는데 한번 그렇게 말하고 나서는 다시는 입을 열지 않는다고 했다. 누나 집에 도착한 휠체어는 포장도 뜯지 못하고 반품 신청을 했다. 요양병원에 들어가게 되면 그곳에서 제공하는 휠체어를 계속 타게 될 터였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 퇴원해서 집에서 항암치료를 받게 될 줄 알았는데, 암 환자라고 해서 언제나 아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는데 너무 급격히 상황이 나빠진 경우여서 어이가 없었다.

728x90

'bluelimn's > 일상과이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고 4  (2) 2023.12.26
부고 3  (0) 2023.12.20
부고 1  (0) 2023.12.09
#STOP  (0) 2018.06.25
Tiwan and Tibet  (0) 2016.01.18
후배  (0) 2015.05.07
이건 뭐지...스팸 경로에 등록된건가?  (0) 2011.12.14
바쁜 와중에 게으름  (0) 2011.02.02
2010 사자성어 ‘장두노미(藏頭露尾)’  (0) 2010.12.19
단풍  (0) 2010.11.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