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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롤 타워’ 사라진 삼성, 순항할까
계열사가 재무·인사권 갖고 스스로 투자 결정
“순환출자 못풀어 과도기 체제” 한계 지적도
» 삼성의 새로운 경영체제(※ 클릭하시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독립경영체제 실험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25일 삼성 전략기획실 한 고위관계자의 말엔 불안감이 더 커보였다. 총수와 전략기획실이 사라지면서 삼성의 장점이었던 스피드경영과 장기전략 수립,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어쨌든 삼성은 주사위를 던졌다. 특히 삼성의 독립경영체제 실험은 총수의 황제경영으로 고속성장해온 한국 재계에서 지주회사 체제라는 선택지 외에도 다른 가능성이 있는지 보여줄 가늠자가 될 것이다.

이날 후속안은 적어도 지난 4월 발표한 쇄신안의 약속을 그대로 이행하려 한 노력이 보인다. 먼저 40여명의 계열사 사장들이 참석하는 사장단협의회는 이전의 교류회 성격의 사장단회의보다는 강화되지만 말 그대로 주요 사안에 대해 ‘토의’하고 ‘협의’하는 기구다. 윤순봉 전략기획실 홍보팀장은 “각 사안의 결정과 책임은 각 사장이 이사회와 주총의 승인과 감시를 통해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협의회가 법적실체가 없는 조직임을 의식해, 협의회 결정이 각 계열사 주주 이해와 상충되거나 법적 논란을 부르지 않도록 선을 분명히 그은 것이다.

삼성으로선 파격적인 실험의 핵심은 재무와 인사권한을 계열사에 넘긴 점이다. 전략기획실 체제에선 개별 회사의 큰 투자를 재무팀이 주도하고 결정했지만, 이제는 각 계열사 이사회가 결정한다. 각 계열사의 전무급 이상 임원인사를 조정했던 인사팀도 사라졌다. 한때 계열사간 인재 공유 등을 위해 인력조정위원회의 신설 필요성도 제기됐지만, 인사권 없이 사장들이 제대로 권한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점과 전략기획실 존속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경영진단팀이 사라지며 삼성그룹 차원의 감사기능은 완전히 사라지는데 이 팀의 직원 일부는 삼성경제연구소로 옮겨 경영컨설팅 사업에 합류한다. 결국 협의회를 실무 지원하기 위해 신설한 업무지원실에 남는 사회봉사와 공헌 등 대외업무, 홍보업무 외의 전략기획실 기능은 삼성의 조직도에서 모두 사라지는 셈이다.


»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왼쪽부터)과 이순동 전략기획실 사장,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이 25일 오전 경영쇄신안 후속조처 확정 발표를 위한 마지막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에 들어서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다만 비상설인 브랜드관리위원회와 투자조정위원회는 삼성 브랜드의 통일성 유지 및 브랜드 가치 제고와 신사업 추진·중복사업 조정 등에 대한 현실적 필요성에 의해 두게 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화학이나 서비스업종에 비해 중복투자 조정과 시너지 창출 논의가 필요한 전자업종과 금융업종은 각각 전자와 생명의 대표가 주도해 사장단 모임을 열 예정이다. 이 외에도 사장단협의회의 결정에 따라 필요한 비상설 위원회나 태스크포스팀을 설치할 가능성은 열려있어, 이 체제는 ‘완결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형태는 ‘느슨한 소그룹의 연방체제’인 일본의 전후 기업집단 형태와 비슷하지만, 오너가 없는 일본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이건희 회장의 경우 대주주의 역할은 하겠다고 했으므로, 이 회장의 의사가 어떤 식으로 반영될지도 관심이다. 사장단협의회가 그 통로가 되거나, 개별 계열사의 이사회에 직접 의사를 전달할 것이란 관측도 있지만 재판이 진행되는 당분간은 경영에 관련되는 일은 극도로 삼가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경영체제가 순항하는 데 걸림돌도 적잖다. 우선 각 계열사 사장들이 손에 쥐게 된 권한만큼 책임을 이행할 수 있을지 여부다. 반대로 자기 계열사의 실적 추구에만 급급해 사업이 충돌할 가능성도 있지만, 삼성의 중앙중심적 조직문화상 극단의 갈등까지 치닫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대부분의 시각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지배구조 검토를 ‘장기과제’로 남기고 순환출자 문제를 풀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재용 전무로의 승계구도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할 때, 독립경영체제와 이 전무의 승계는 ‘모순’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경제개혁연대는 “총수일가의 복귀를 전제로 하는 한 이 체제는 과도기적 체제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진방 교수(인하대)는 “지주회사가 무조건 선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며 “오늘의 발표만으로 평가를 내리기보다는 대주주 권한은 공식화하면서 다른 주주의 권한과 감시 기능을 증대시키는 노력을 삼성이 하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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