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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의 마지막 날은 친척들이 다시 모여 화장을 하러 갔다. 화장 시간이 마지막 시간이라 출발을 늦게 했다. 운구를 할 때 리무진, 혹은 버스를 대절할 수 있다. 버스는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가격이 비슷했다. 마지막으로 병원비와 장례식 비용을 처리해야 했다. 부의금 받은 것을 은행 ATM을 통해 통장에 다 넣어두어 체크카드로 다 처리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병원비와 장례식 비용은 예상보다 훨씬 적게 나왔다. 가격이 많이 나오는 것은 음식가격 뿐이었다. 음식 중에서는 음료 가격이 많이 나왔다. 마지막에 매점에 음식 가격을 결제하러 갔는데 체크카드가 일일 사용제한이 걸렸다고 나왔다. 그냥 통장에 있는 돈을 사용하는 것이라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결제 한도가 있는 것을 잊고 있었다. 사실 평소에는 체크카드를 한도까지 사용할 일이 없다. 그렇다고 신용카드로 하자니 나중에 계산이 복잡해질 것 같아 그냥 계좌이체를 했다.

 

화장터로 이동하기 전에 대기하면서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 보통 하관(매장)을 한다면 제를 지낼 음식과 떡을 준비한다고 하는데 간단히 김밥을 준비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김밥을 준비한 것이 여러가지로 좋은 선택이었다. 운구를 할 때에도 어머니가 초빙한 스님이 이리저리 나서는 바람에 유교식과 불교식이 혼재되어 번잡스러웠다.

 

화장터는 대구 명복공원을 이용했는데 시설이 상당히 깨끗하고 관리가 잘 되어있었다. 비용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저렴했다.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다른 장례비용에 비해 신경도 쓰이지 않을 비용으로 접수를 했다. 이미 예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대기하면 되는줄 알았는데 화장을 할 때에도 미리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접수할 때 갑자기 선택해야 했기에 가족과 상의할 시간이 없었다. 대략 화장후 처리를 습식으로 할 것인가 건식으로 할 것인가, 보철물 같은 것은 다시 가지고 갈 것인가 폐기 처리를 할 것인가 등을 선택하게 했다. 일반적으로 보철과 같은 것은 다 버리고 건식으로 뼈만 가루로 받는 것을 선택한다. 보관함도 명복공원에서 구매하는 것이 상품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별도로 절에서 구매하기를 희망하셔서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이번 기회에 절에 안치하기로 했는데 두 분이 누울 자리를 미리 마련해 놓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하여 그냥 예약하기로 했다. 장례의 절차가 죽은 사람보다는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살피는 절차라고 생각하여 원하는 것이 있으면 최대한 따라주려고 노력했다.

 

이틀간 밤을 새고 화장까지 마쳤으면 이제 끝인가 생각했는데 이제는 뼛가루를 안치하기 위해 이동을 해야 했다. 이동하는 버스에서 아버지의 뼈를 담은 나무 상자가 서서히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어제 차가웠던 시신이 이제는 뜨거운 가루가 되어 안겨있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자꾸 흘렀다. 대구에 불교대학이라고 이름을 짓고 도시에 크게 건물을 지은 곳이 있는데 그곳에 안치하기로 했다. 두 명 분의 자리를 예약해서인지 금액이 장례의 전체 비용을 상회했다. 심지어 계좌이체를 하고 현금영수증도 주지 않는다. 결혼식은 미리 계획을 하고 준비를 해서 진행하기에 이런 저런 고민과 판단과 협의가 가능하지만 장례식은 갑자기 진행하는 거라 맞지 않는다고해서 설득하고 처음부터 다시 진행하기가 어렵다. 특히나 부모님을 설득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다.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선산이 없는 우리 형편에 나중에 한번 더 있을 장례에 고민하고 선택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줄인다고 생각하고 그냥 진행했다.

 

이제는 정말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절을 옮겨 아버지의 혼백을 모시고 49제를 지낼 절도 이동한다고 했다. 심지어 아버지는 불교를 믿지도 않았는데 남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그곳에서 입제를 지내고 다시 누나 집으로 갔다. 이후 가족은 다음날 경기도로 올려보내고 일주일가량 어머니 옆에서 지내며 아버지의 짐을 정리하고 방의 배치를 다시 했다. 평일에 할 수 있는 서류 처리를 시작했다. 각종 서류 처리들은 접수는 바로 되지만 처리가 되는데 시간이 걸렸다. 일주일 내에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장례식은 금방이었는데 이후의 처리는 두 달이 넘게 걸렸다. 아버지가 너무 일찍 갑자기 돌아가셨지만 그동안 해드리지 못한 효도를 후회하기보다는 내 인생에 큰 일 하나를 보내고 있는 중이고, 나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나면 다음 차례는 내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살아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그럼에도 후유증이 생각보다 길게 스며들어 있다. 기억이 나는 간격이 서서히 멀어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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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아침에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상태가 많이 안 좋으셔서 요양원으로 가지 못하고 병원에 계속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병원에 미리 면회를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임종이 가까워지면 잠시 면회를 허용하기 때문에 누나 집에서 며칠 지내면서 상황을 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어머니 집에 잠시 있었는데 한동안 오지 못할테니 집을 정리하고 대강 청소를 했다. 정신이 없어 어떻게 청소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정리와 청소가 되어 있어서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정도만 하면 되었다. 누나 집에 가는 것은 차로 4~50분 거리였는데 길지 않은 그 시간 가운데 다시 전화가 왔다. 병원으로 바로 오라는 연락이었다. 마음은 급한데 신호는 많고 차는 밀렸다. 명절이고 아직 연휴가 많은데 왜이리 차가 많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연휴가 길어서 이제야 처가에 가는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병원에 도착하니 누나가 미리 와 있었다. 누나의 집은 병원에서 차로 5분 거리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숨을 쉬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태였다. 불과 며칠 전에 걸어다시던 사람이 갑자기 저렇게 숨도 쉬기 어렵다니, 그리고 이 자리가 임종을 위해 잠시 허용 된 면회 시간이라니 마음의 준비가 길었어도 현실감이 없었겠지만 예상치도 못한 속도감에 현실 감각이 사라졌다. 의사가 와서 사망선언을 하였다. 오전 10시 30분이었다.

 

이후부터는 선을 그은 듯 바로 장례 절차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환자가 살아있는 동안과 죽은 이후는 물과 기름처럼 선명하게 구분이 되어 한 공간에 자리잡고 있었다. 장례식장 직원이 요즘은 Covid19로 인해 모두가 화장을 해야 하므로 화장터를 예약하는 것이 가장 급하다고 했다. 장례식장을 정하기도 전에 화장이 가능한 시간부터 확인했다. 대구에는 남는 곳이 없었다. 다른 지역에 가서 화장을 하거나 발인을 늦추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가지 희망은 누군가 예약을 변경하면서 취소분이 발생했는데 이것이 취소가 되자마자 바로 예약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한시간 후에 예약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일단 예약이 가능한 시간에 타이머를 맞춰놓고 장례에 대한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장례식장에서 호실을 구하고나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상복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식장에서 대여하는 옷을 입었다. 그러고나서 사진을 전달 해 영정사진을 만들었다. 도중에 타이머가 울려 화장터를 다시 예약했다. 대구에 있는 곳에 마지막 순서에 겨우 예약을 했다. 그곳이 전국적으로 잘 하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음식이 오고 도우미가 오고, 장례지도사가 왔다. 장례지도사가 진행하는 장례는 유교식을 따른다고 했다. 아버지는 열심히 다니지는 않았지만 개신교 교회에 가끔 다니셨다. 어머니는 나중에 불교대학을 다니고는 불교를 믿기 시작했다. 나는 종교라는 것은 심리를 안정화하는 정신적 서비스업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무교다. 천주교나 이슬람은 없었지만 온갖 종교가 뒤엉켜 있는 장례식장이었다. 어머니는 불교식으로 진행하기를 원해 자주 가는 절의 스님을 불렀다. 어머니의 상심이 가장 클 터였기 때문에 아무도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다만 이러한 행동들이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준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절이라 멀리서 나를 보러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었다. 그리고 이러이러한 사람은 꼭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빠진 사람이 더러 있었다. 내가 사회적으로 기반을 잡고 널리 인맥을 펼치는 것이 아니어서 빈소가 밤새 북적이지는 않았다. 가장 큰 곳은 아니지만 비교적 큰 곳을 잡았는데 그나마 사람들이 조금씩이나마 계속 있어 다행이었다. 장례를 치르는 3일장 중에도 순서와 절차가 있다. 장례지도사의 유교식과 스님의 불교식이 조금씩 달랐는데 장례지도사가 중간중간 의미를 설명해주어 훨씬 마음에 와닿았다. 그런데 그 분이 진행할 때마다 눈물이 너무 많이 나서 마음이 많이 고생스러웠다. 첫날과 둘째날 아침까지는 친한 사람이 올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렸는데 둘째 저녁부터는 그런 게 좀 나아졌다. 그래도 장례지도사가 올 때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은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둘째 날 점심무렵 입관을 진행했다. 부패의 위험때문에 시신을 냉동하였다가 입관할 때 내어주는데 옷을 입혀 뉘이고 염을 하는 것을 보여준다. 염을 하기 전에 이마에 손을 올리고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염이 끝나고는 입관을 할 때 상주가 안아들고 관에 넣었다. 차갑고 무거운 기운이 이후로도 며칠 간 팔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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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라고는 하지만 명절과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추석날 아침 전복죽을 만들어 어머니께 전해 드렸다. 누나 집이 병원에서 가까워 누나 집에 갔다가 저녁을 함께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병원에서 연명치료 관련하여 이튿날 설명을 듣고 서명을 하러 오라고 하여 다음날은 같이 병원에 가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병원에서 대기를 했다. 의사는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지만 마음이 무거워 친절함이 닿지는 못했다. 방광에서 시작된 암세포가 신장으로 가는 혈관을 막아 신장기능이 많이 떨어졌고, 그나마 30%가량 동작하던 한쪽 신장은 이제 거의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하여, 급격히 나빠진 컨디션으로 인해 추석 이후에 계획했던 항암치료는 결국 포기하게 되었다. 치료를 위한 약을 주입하면 신장이 더 망가지고 약을 주입하지 않으면 몸이 망가지는 상황이라 진통제 외에는 크게 할 수 있는 처방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족끼리 상의해보고 요양병원을 알아보는 것이 어떠하냐는 의견을 주었다.

 

갑자기 가족회의를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나오는 길에 기진맥진하여 겨우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는 참았던 눈물을 잠시 내보내고는 연휴가 끝나는대로 요양병원을 알아보자고 하였다. 추석 명절이 일요일에 끝나는데, 월요일은 임시공휴일로 지정되고 화요일은 개천절이라 며칠동안이나 행정적인 처리는 대기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휴일을 즐기고 쉴 때는 몰랐는데 연휴라는 것이 피를 말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와 연계되어 있는 요양병원을 미리 알아봤는데 자리가 많지는 않지만 입원은 가능하다고 했다. 혹시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리 알아봐야 하기에 납골당 같은 곳도 알아봤다. 선산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만약 돌아가시면 화장을 하자고 이야기를 했다. 요양병원에 가면 이제 다시 긴 병마와의 싸움이 시작될 것 같았다.

 

아버지는 이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틀 전까지 음식을 받아 먹다가 이제는 암 환자식으로 나오는 음료만 드신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이제 말하지 않을 테니 더이상 질문하지 말라고 하고는 입을 닫으셨다고 했다. 직원들이 병실에 들어을 때마다 인지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이름과 이것저것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하는데 한번 그렇게 말하고 나서는 다시는 입을 열지 않는다고 했다. 누나 집에 도착한 휠체어는 포장도 뜯지 못하고 반품 신청을 했다. 요양병원에 들어가게 되면 그곳에서 제공하는 휠체어를 계속 타게 될 터였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 퇴원해서 집에서 항암치료를 받게 될 줄 알았는데, 암 환자라고 해서 언제나 아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었는데 너무 급격히 상황이 나빠진 경우여서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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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야말로 손을 쓸 사이도 없이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었다. 처음에는 배가 아프다고 하셨다. 극심한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분 나쁘게 지속적으로 아픈 느낌이 있다고 하면서도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고 하셨다.

 

한 주가 흐르고 그래도 배가 아프다고 하자 어머니가 억지로라도 가봐야 겠다면서 병원에 끌고 가셨다. 동네 의원에서는 큰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해봐야 한다면서 자신들은 검사를 할 장비가 없다고 했었다. 중급 병원에 갔더니 큰 상급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상급 병원에서는 하루 종일 기다려도 검사를 하지 못하고 다음날 금식 후 다시 검사를 하기로 했다.

건강에 대한 것 보다 금식을 하고 대기를 하느라 체력 소모가 너무 심해 오히려 건강이 상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물론 나중에는 그런 걱정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있었다. 깨끗하게 정리한 방에 햇살이 비치는데 먼지가 빛에 비쳐 날아다니는 것이 거슬리는 정도의 하찮은 거슬림이었다.

 

나는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었고, 부모님은 경상도 대구에 거주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미주알고주알 다 말해주는 성격이 아니었다. 내가 중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고 다니실때나, 대학생 때 집이 이사를 갔을 때도 괜히 공부하는데 방해가 될까봐 알리지 않았다면서 연락을 주지 않았다. 나 또한 대학생이 되면서 집을 벗어나 살면서 일주일에 한번 연락을 하는 것이 굳어져 군대생활을 거쳐 20여년간 '주말엔 부모님께 전화' 공식을 이어오고 있지만 그리 살뜰한 성격은 아니다. 아무튼 어머니의 판단과 결론을 믿으면서, 어머니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하고싶은 이야기만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병원에서는 각종 검사 결과 엑스레이에서 하반신 부분에서 하얀 색 안 좋은 부분이 여럿 보이는데 조직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자가면역 질환(흔히 류마티스 관절염도 포함되는)의 일종으로 보이는 증상이 있는데 이럴 경우 평생 약물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암일 가능성도 있기에 조직검사가 필요하고 그 결과는 2주일가량 걸린다고 했다.

 

검사 결과는 하루 이틀만에 나오지 않았다. 2주를 채우고 조금 더 걸렸다. 마음으로는 한 달 가량 걸린 것 같았다. 그 날은 회사 동료와 둘이서 소주를 먹고 있었다. 아버지가 아프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잠시 쉬는데 문자가 왔다. 검사 결과 암이라고 했다. 하반신에 하얗게 보이는 것은 자가면역으로 염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암이 하반신 전체에 퍼져 덮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있을 때 나는 직장 동료와 평화롭에 술잔을 기울이며,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걱정이라는 하소연을 하고 있었으니 아버지께 참담하고 안타깝고 미안하고 명목이 없었다.

 

방광암이라고 했으나 이미 4기이고 하반신 장기 전체에 퍼져 특정한 암의 치료법을 공부할 새도 없었다. 다만 전이가 잘 되고 치료를 하면 완치는 되지 않아도 생존율을 많이 높일 수 있다는 정보가 있었다. 병원에 가고 나서는 하루가 다르게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처음 검사를 할 때는 멀쩡히 혼자서 다니시다가 2주 후 검사 결과를 들을 때는 걸음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자주 필요했다. 그리고 3일 후 다시 정밀검사를 받으러 가려다가 집에서 제대로 걷지 못하고 넘어지셨다. 암세포가 신장으로 가는 혈관을 막아 한쪽은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한쪽은 30%정도만 기능을 한다고 했다. 소변은 방광에 모이지 못하고 신장에서 몸 밖으로 연결한 호스를 통해 주머니에 채워졌다. 집에서 이틀 정도 누워만 계시다가 병원에 입원을 했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아 미리 내려와 가족을 만났는데 내가 올라가고 바로 입원을 했다. 아직도 병원에서는 코로나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써야 하고, 입원한 환자는 상주 간병인(혹은 보호자) 한 명만 면회가 가능하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을 경우 사실상 가족이 환자를 만날 수 없게 된다.

 

경기도에 올라오고 이틀만에 입원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다시 내려가겠다고 하니 어머니는 오지 말라고 했다. 내가 대구에 내려가도 빈 집에 있어야 하고 병원에 면회를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신경만 더 쓰인다고 하셨다. 다만, 며칠 후에 퇴원을 하고 다시 입원하는 것은 추석이 지나가 하니 추석에 내려와 같이 가족끼리 보자고 하셨다. 아버지가 제대로 드시지 못하니 추석 음식은 하지 말자고 하셨다. 혼자서 기차를 타고 내려가 잠시 어머니를 만나고 누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는 다시 올라왔다. 추석 명절이 시작되기 3일 전이었다. 병원에 어머니를 만나러 갔을 때, 마침 아버지가 1층에 검사를 하러 내려와 지나가면서 얼굴은 볼 수 있었다. 그 새 아버지는 걷지 않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셨다. 병실 안에서 잠깐씩 운동하러 돌아다니는 것 외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제는 걷기보다는 운동삼아 잠시 서 있는 정도라고 한다. 병원에서는 항암치료를 해야 하는데 치료가 힘들어 더 건강이 나빠질 수도 있으니 결정을 하라고 했다. 추석이 지나면 항암치료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누나가 암 환자들이 먹는 식사대용 음료를 주문하고 휠체어도 주문했다. 퇴원을 하셔도 평소처럼 걸어다니기는 어려울 듯 했다.

 

추석 명절이 시작될 때 미리 휴가를 내서 조금 일찍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퇴원을 못 하시게 되었다. 퇴원을 할 만큼 건강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같은 이유로 아예 추석 때 오지 말라고 했다. 이번에는 기차로 갈까 해서 기차표를 예약하고 짐을 싸고 역으로 가는 도중에 다시 돌아왔다. 다음날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와이프는 애를 데리고 처가에 내려가겠다고 나섰다. 나는 도저히 처가 식구들이랑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아 혼자 집에 남기로 했다. 기차 역까지 바래다주고 혼자 집에 돌아오다가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상황이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일단 내려와 있는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알겠다고, 가족 돌봄을 위해 장기 휴직도 가능하니 걱정 마시라고 안심을 시키며 급히 집으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대구에 있는 누나가 전화를 해서 어머니와 같은 말을 했다. 누나의 목소리에 눈물이 묻어 있어 사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표는 취소하는 바람에 없고 명절 첫날이라 버스 표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가장 막히는 날에 막히는 시간에 혼자서 운전을 해야 했다.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했는지 모르겠다. 처가에 내려가던 와이프는 일단 구미에서 대기하다가 내가 차로 태우러 가기로 했다. 제대로 된 상황을 모르고 전화로 오라고만 하니 온갖 생각이 들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차 안에서 소리를 지르며 겨우 운전을 했다. 출발은 아침에 했는데 도착은 밤에 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 며칠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와이프와 함께 근처 마트에서 간단한 장을 봤다. 어머니가 계속 병원에서 상주하고 있으면서 제대로 식사를 챙겨 드시지 못해 전복죽을 해 드리려고 전복도 샀다. 피곤하고 피곤한 밤이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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