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기가 끝나가는 만큼 저마다 무리를 지어 웅성거린다. 강의시작 5분 전. 교수가 들어오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긴 노래 두어 곡이 필요하다. 햇살이 뜨거워 다른 사람들이 앉지 않는 창가가 나의 자리다. 따분한 듯 창밖을 내다보는 것은 말랑하고 질긴 이질감을 가리는 좋은 도구가 된다. 사람들을 상대할 만큼의 노력을 기울일 수 없다면 사람들 밖에서 겉도는 것이 당연하다. 너무 당연하므로 더운 햇살을 받으며 창가에 앉는 모습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느린 노래를 흥얼거리는 정도로 시간을 견딜 수밖에 없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대부분이지만 간곳 알아들을만한 발음으로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어차피 나는 스크린 밖에 있는 사람이지만 혹시나 내 이야기가 오가는 것은 아닌지 신경이 선다.
교수가 들어올 때 쯤 휴대폰에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진동이 사라지기도 전에 번호를 확인했다. 혜원이 아니다. 이러한 외부의 간섭이 없었다면 한 시간 정도 창밖의 농구코드를 초점 없이 주시했겠지.
[강진우 맞지?]
명료한 문장이 모르는 번호로부터 수신되었다. 오랜만이다. 고객님이란 단어 없이 내 이름이 다른 누군가에게 불리다니. 약간의 설렘과 함께 무엇인가 거대한 시나리오에 휘말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를 아는 사람이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밥알에 숨겨져 있던 모래 부스러기를 씹을 때와 같은 경직이 일순간 몸속에 퍼진다. 강의실을 두리번거려봐야 마주치면 잠시 웃으며 지나칠 대상들 뿐 굳이 내 존재를 확인해야 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누구세요?]
[혜원 실종, 정문으로 나와.]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무력해진 내 심장을 얼음으로 만든 메스로 곧장 찌르고 들어온다.
그 전화, 아니다. 아니, 이 사람이 전화 했던 것일까?
섬뜩하다. 머리로 이어지는 핏줄이 쿵쾅거리며 머리카락을 곤두세운다. 누군가 계속 나를 감시하고 있었던 것만 같다. 혜원은 이미 맑은 날 키스의 기억을 남기며 떠났고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났다. 3년을 편안한 친구처럼 만났고 침묵의 시간은 일 년이 넘었다. 일주일 전 갑작스러운 전화가 걸려왔고 난 혜원의 전화라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누군가 나를 혜원과 연루시키고 있다. 그것도 실종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서!
얼마 전 걸려온 전화의 상대가 정말 혜원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분명 그녀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런데 지금은 확신이 없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혜원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혜원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나를 떠나간 이후에도 원하진 않았지만 가끔 연락이 오다가 반년 쯤 전에 내가 알고 있던 전화번호가 사라졌다. 번호를 바꾼 것인지 아니면 휴대폰을 없애버린 건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전화번호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5일분의 공허함에 시달려야 했다. 가끔 연락이 올 때는 받지도 않고 무시해버렸으면서 번호가 사라지고 나서야 수시로 전화를 걸어 없는 번호임을 확인했다.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다. 상황이 모든 것을 지배할 때가 있다. 지금의 나는 의지와 상관없이 걸음을 옮기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고 있다. 정오의 햇살이 따갑다. 나무그늘도 없는 정문에 가만히 서있는 사람은 한명 뿐이라 쉽게 눈에 띄었다. 본 적이 있다. 혜원이 친한 친구라며 소개시켜준 적이 있다. 그녀가 친구를 소개시켜 준 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무슨 일이야?”
처음 봤을 때 같이 술도 먹고 신나게 웃고 떠들었으니 편안한 상대인 것처럼 말했다. 그럼에도 둘 사이에 혜원이 빠지니 어딘가 얇은 녹이 슨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묻고 싶은 게 바로 그거야. 무슨 일이야?”
그녀가 되묻는다. 해줄 이야기가 없다. 오히려 일 년이 넘는 시간동안 소식이 없던 혜원이 뜬금없이 실종되었고, 단 한번 만난 그녀의 친구가 학교까지 찾아와 나를 불러내는 이유가 못 견디게 궁금하다.
“정말 실종된 거야?”
다시 질문을 이었다. 어떻게 보더라도 명백한 무죄의 상황이다. 그녀가 대답을 시작하자마자 나의 무관성에 대하여 열띤 연설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혜원의 안부만 묻고 애초에 나와 상관없는 이 상황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점심은 먹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