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야말로 손을 쓸 사이도 없이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었다. 처음에는 배가 아프다고 하셨다. 극심한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분 나쁘게 지속적으로 아픈 느낌이 있다고 하면서도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고 하셨다.

 

한 주가 흐르고 그래도 배가 아프다고 하자 어머니가 억지로라도 가봐야 겠다면서 병원에 끌고 가셨다. 동네 의원에서는 큰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해봐야 한다면서 자신들은 검사를 할 장비가 없다고 했었다. 중급 병원에 갔더니 큰 상급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상급 병원에서는 하루 종일 기다려도 검사를 하지 못하고 다음날 금식 후 다시 검사를 하기로 했다.

건강에 대한 것 보다 금식을 하고 대기를 하느라 체력 소모가 너무 심해 오히려 건강이 상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물론 나중에는 그런 걱정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있었다. 깨끗하게 정리한 방에 햇살이 비치는데 먼지가 빛에 비쳐 날아다니는 것이 거슬리는 정도의 하찮은 거슬림이었다.

 

나는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었고, 부모님은 경상도 대구에 거주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미주알고주알 다 말해주는 성격이 아니었다. 내가 중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고 다니실때나, 대학생 때 집이 이사를 갔을 때도 괜히 공부하는데 방해가 될까봐 알리지 않았다면서 연락을 주지 않았다. 나 또한 대학생이 되면서 집을 벗어나 살면서 일주일에 한번 연락을 하는 것이 굳어져 군대생활을 거쳐 20여년간 '주말엔 부모님께 전화' 공식을 이어오고 있지만 그리 살뜰한 성격은 아니다. 아무튼 어머니의 판단과 결론을 믿으면서, 어머니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하고싶은 이야기만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병원에서는 각종 검사 결과 엑스레이에서 하반신 부분에서 하얀 색 안 좋은 부분이 여럿 보이는데 조직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자가면역 질환(흔히 류마티스 관절염도 포함되는)의 일종으로 보이는 증상이 있는데 이럴 경우 평생 약물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암일 가능성도 있기에 조직검사가 필요하고 그 결과는 2주일가량 걸린다고 했다.

 

검사 결과는 하루 이틀만에 나오지 않았다. 2주를 채우고 조금 더 걸렸다. 마음으로는 한 달 가량 걸린 것 같았다. 그 날은 회사 동료와 둘이서 소주를 먹고 있었다. 아버지가 아프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잠시 쉬는데 문자가 왔다. 검사 결과 암이라고 했다. 하반신에 하얗게 보이는 것은 자가면역으로 염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암이 하반신 전체에 퍼져 덮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있을 때 나는 직장 동료와 평화롭에 술잔을 기울이며,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걱정이라는 하소연을 하고 있었으니 아버지께 참담하고 안타깝고 미안하고 명목이 없었다.

 

방광암이라고 했으나 이미 4기이고 하반신 장기 전체에 퍼져 특정한 암의 치료법을 공부할 새도 없었다. 다만 전이가 잘 되고 치료를 하면 완치는 되지 않아도 생존율을 많이 높일 수 있다는 정보가 있었다. 병원에 가고 나서는 하루가 다르게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처음 검사를 할 때는 멀쩡히 혼자서 다니시다가 2주 후 검사 결과를 들을 때는 걸음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자주 필요했다. 그리고 3일 후 다시 정밀검사를 받으러 가려다가 집에서 제대로 걷지 못하고 넘어지셨다. 암세포가 신장으로 가는 혈관을 막아 한쪽은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한쪽은 30%정도만 기능을 한다고 했다. 소변은 방광에 모이지 못하고 신장에서 몸 밖으로 연결한 호스를 통해 주머니에 채워졌다. 집에서 이틀 정도 누워만 계시다가 병원에 입원을 했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아 미리 내려와 가족을 만났는데 내가 올라가고 바로 입원을 했다. 아직도 병원에서는 코로나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써야 하고, 입원한 환자는 상주 간병인(혹은 보호자) 한 명만 면회가 가능하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을 경우 사실상 가족이 환자를 만날 수 없게 된다.

 

경기도에 올라오고 이틀만에 입원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다시 내려가겠다고 하니 어머니는 오지 말라고 했다. 내가 대구에 내려가도 빈 집에 있어야 하고 병원에 면회를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신경만 더 쓰인다고 하셨다. 다만, 며칠 후에 퇴원을 하고 다시 입원하는 것은 추석이 지나가 하니 추석에 내려와 같이 가족끼리 보자고 하셨다. 아버지가 제대로 드시지 못하니 추석 음식은 하지 말자고 하셨다. 혼자서 기차를 타고 내려가 잠시 어머니를 만나고 누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는 다시 올라왔다. 추석 명절이 시작되기 3일 전이었다. 병원에 어머니를 만나러 갔을 때, 마침 아버지가 1층에 검사를 하러 내려와 지나가면서 얼굴은 볼 수 있었다. 그 새 아버지는 걷지 않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셨다. 병실 안에서 잠깐씩 운동하러 돌아다니는 것 외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제는 걷기보다는 운동삼아 잠시 서 있는 정도라고 한다. 병원에서는 항암치료를 해야 하는데 치료가 힘들어 더 건강이 나빠질 수도 있으니 결정을 하라고 했다. 추석이 지나면 항암치료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누나가 암 환자들이 먹는 식사대용 음료를 주문하고 휠체어도 주문했다. 퇴원을 하셔도 평소처럼 걸어다니기는 어려울 듯 했다.

 

추석 명절이 시작될 때 미리 휴가를 내서 조금 일찍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퇴원을 못 하시게 되었다. 퇴원을 할 만큼 건강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같은 이유로 아예 추석 때 오지 말라고 했다. 이번에는 기차로 갈까 해서 기차표를 예약하고 짐을 싸고 역으로 가는 도중에 다시 돌아왔다. 다음날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와이프는 애를 데리고 처가에 내려가겠다고 나섰다. 나는 도저히 처가 식구들이랑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아 혼자 집에 남기로 했다. 기차 역까지 바래다주고 혼자 집에 돌아오다가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상황이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일단 내려와 있는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알겠다고, 가족 돌봄을 위해 장기 휴직도 가능하니 걱정 마시라고 안심을 시키며 급히 집으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대구에 있는 누나가 전화를 해서 어머니와 같은 말을 했다. 누나의 목소리에 눈물이 묻어 있어 사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표는 취소하는 바람에 없고 명절 첫날이라 버스 표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가장 막히는 날에 막히는 시간에 혼자서 운전을 해야 했다.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했는지 모르겠다. 처가에 내려가던 와이프는 일단 구미에서 대기하다가 내가 차로 태우러 가기로 했다. 제대로 된 상황을 모르고 전화로 오라고만 하니 온갖 생각이 들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차 안에서 소리를 지르며 겨우 운전을 했다. 출발은 아침에 했는데 도착은 밤에 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 며칠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와이프와 함께 근처 마트에서 간단한 장을 봤다. 어머니가 계속 병원에서 상주하고 있으면서 제대로 식사를 챙겨 드시지 못해 전복죽을 해 드리려고 전복도 샀다. 피곤하고 피곤한 밤이 지나고 있었다.

728x90

'bluelimn's > 일상과이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고 4  (2) 2023.12.26
부고 3  (0) 2023.12.20
부고 2  (0) 2023.12.20
#STOP  (0) 2018.06.25
Tiwan and Tibet  (0) 2016.01.18
후배  (0) 2015.05.07
이건 뭐지...스팸 경로에 등록된건가?  (0) 2011.12.14
바쁜 와중에 게으름  (0) 2011.02.02
2010 사자성어 ‘장두노미(藏頭露尾)’  (0) 2010.12.19
단풍  (0) 2010.11.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