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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느다란 바람에도 남자는 하르르 입술을 떤다. 반 쯤 벌어진 눈을 끔벅이던 남자는 바쁜 걸음을 내쉬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헤아린다. 저마다 훌쩍 도망갈 티켓이 하나 쯤 필요하다.

천천히 일어선 남자가 너덜너덜한 걸음으로 역으로 향하자 그림자가 소리 없이 끌려간다.


그를 피해 그림자가 달린다. 바람의 벽을 견디기 힘든 숨결은 눈썹을 휘날린다. 가슴이 터질 듯 입에선 단내가 나고 온 몸이 달아올라 움직일 수 없을 무렵, 매표소를 되돌아 나오는 그림자들의 무리가 보인다.

우리는 방향을 모른다네, 목적지를 모른다네.
하늘을 나는 잠시간의 높이뛰기 이후엔 다시 원점이라네.

남자가 눈을 끔벅인다. 바쁘게 돌진하는 사람들 속에는 비어있는 그림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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