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축축하고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지하실 계단 구석. 강하늘은 거의 슬라이딩하듯 털썩 주저앉으며 무릎 사이에 이마를 콕 박았다. 얼마나 식은땀을 흘렸는지 운동화 밑창이 계단 바닥의 먼지와 엉겨 붙어 찌적거리는 소리를 냈다.

“하아, 하아…… 죽는 줄 알았네, 진짜.”

입을 열 때마다 가쁜 숨과 함께 가슴속에 맺혀 있던 열기가 훅훅 터져 나왔다. 아파트 화단에서 느티나무의 기운을 몸 안으로 사정없이 밀어 넣었던 여파는 생각보다 훨씬 지독했다. 준비되지 않은 초등학교 6학년의 연약한 육체에 이질적인 자연의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가 강제로 주입되다 보니, 온몸의 혈관이 엔진 오일 떨어진 시뻘건 고물 모터처럼 터질 듯이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만약 민수나 같은 학년 애들이 봤다면 ‘야, 강하늘 얼굴에 라면 끓여도 되겠다!’라며 놀려댔을 게 분명할 정도로 시뻘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다행히 귀신 나올 것처럼 차갑고 축축한 지하실 공기가 피부에 닿으면서 전신을 괴롭히던 뜨거운 부작용은 저절로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홧홧하던 뺨의 열기가 가라앉고 땀방울이 턱끝을 타고 뚝뚝 떨어지자, 하늘은 겨우 흐릿해진 정신을 붙잡고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손가락이 바르르 떨리는 통에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처럼 생긴 천기패를 꺼내는 것조차 무슨 대단한 역기 들기 운동을 하는 것처럼 낑낑대야 했다.

겨우 천기패를 눈앞에 치켜들고 액정 화면을 켠 하늘의 눈에 선명한 숫자가 들어왔다.

‘42%’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수치. 보통 사람의 스마트폰이라면 ‘아직 넉넉하네’라고 생각하며 유튜브 쇼츠를 넘길 법한 숫자였지만, 하늘과 로그에게 이 숫자는 의미가 전혀 달랐다.

하늘은 도무지 가성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꽝손 도사였다. 부적 한 장을 날릴 때마다 기운을 물 쓰듯 펑펑 써대는 하늘의 비효율적인 도술 실력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살얼음판이나 다름없었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이 숫자가 ‘0’이 되는 순간이었다. 천기패의 동력이 바닥나면 로그는 데이터 조각으로 분해되어 소멸할 것이고, 로그와 신경계가 동기화된 하늘 역시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한마디로 이건 배터리 잔량이 아니라 생명 유지 장치의 남은 시간인 셈이다.

“야, 로그! 네가 비상 충전술인지 뭔지, 그 [기운 스틸(Energy Steal)]을 쓰면 빵빵하게 차오를 것처럼 말했잖아! 그런데 왜 이것밖에 안 돼? 거대한 나무 한 그루를 통째로 쥐어짜 놓고!”

하늘이 억울함과 허탈함이 잔뜩 뒤섞인 목소리로 천기패를 향해 갹갹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화면 너머에서 로그가 특유의 얄미운 기계음 섞인 목소리로, 하지만 평소의 장난기를 싹 뺀 채 짐짓 엄숙하게 대답했다.

— 야, 어쩔도사. 네 몸뚱이를 좀 돌아보고 소리를 질러라. 그 오래된 느티나무가 가진 전체 에너지가 100이라면, 지금 네 초딩 몸뚱이가 강제로 받아들이고 버텨낼 수 있는 한계치가 딱 그까지였던 거야. 만약 내 통제도 없이 욕심부려서 더 밀어 넣었으면, 넌 충전되기도 전에 몸이 펑 하고 터져서 지하실 벽지가 됐을걸?

로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다른 절박함과 걱정이 서려 있었다. 하늘의 서툰 도술 효율을 생각하면 이 상태로 전투를 치르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방금 쓴 [기운 스틸]을 다시 발동할 수도 없었다. 이질적인 기운을 억지로 몸에 밀어 넣는 비상술법은 부작용이 너무 막심해서 짧은 시간 안에 연속으로 썼다간 진짜로 목숨이 날아가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더 수치가 떨어져 0이 되면 둘 다 끝장이라는 사실을 로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늘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천기패 화면을 째려보았다. 요괴와 본격적으로 전면전을 벌이기에는 너무나 위태로운 수치였다. 당장 지하실 저 깊고 컴컴한 복도 끝에서 언제 거대한 국자를 든 지하 급식실 요괴가 다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인데, 42%라는 숫자는 초딩 도사의 심장을 여전히 쫄깃하게 타들어 가도록 만들고 있었다.

 

하늘은 천기패 화면에 뜬 야속한 배터리 숫자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 기운을 쥐어짜서 요괴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굴려보기도 전에, 로그가 먼저 쐐기를 박아버렸다.

— 야, 배터리. 머리 굴리는 소리 여기까지 난다. 꿈 깨셔. 너 지금 그 엉망진창인 효율로는 네가 제일 좋아하는 ‘어쩔티비 저쩔부적’ 세 장 날리면 바로 전원 꺼져.

“세, 세 장? 야! 아무리 그래도 42%나 남았는데 세 장은 너무 하잖아!”

— 내가 말했지? 넌 에너지 연비가 거의 덤프트럭 수준이라고. 게다가 적은 방금 전보다 훨씬 빡쳐 있는 상태야. 하급 부적 몇 장으로 간만 보다가 배터리 0% 되고 나랑 같이 데이터 저승길 가고 싶냐?

로그의 서슬 퍼런 으름장에 하늘의 목소리가 쏙 들어갔다. 배터리가 0%가 되면 자신도, 로그도 죽는다는 말은 엄포가 아니었다.

“그럼 어쩌라고! [기운 스틸]은 당장 못 쓴다며! 남은건 개이득 충전부적 뿐인데 야금야금 채워서 어디 써?”

하늘이 징징거리듯 묻자, 로그가 천기패의 저장장치를샅샅이 훑으며 대답했다.

— 그 부적이라면 한번에 충전해주진 못해도 시간을 벌면서 부적을 그릴만한 기운을 추가해줄거야.

하늘은 미간을 팍 찌푸렸다. 그 해괴망측한 주문의 이름은 사실 부적의 효능을 온전히 발휘하기 위한 핵심 설계 중 일부였다. 로그가 아직 도술에 서툰 하늘의 독특한 기운 흐름에 딱 맞춰 새로운 부적을 개발해 낸 결과물이었는데, 하필 이름까지 도력의 주파수를 맞추는 주문의 일환으로 엮여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로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그 ‘주문 이름’이 대한민국 평범한 13세 소년의 자존심을 시시각각 가루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미 고물상에서 ‘어쩔티비 저쩔부적’이니 ‘갑분싸 부적’이니 하는 이름들을 제 손으로 직접 천기패에 그리고 외치며 영혼이 가출할 것 같은 수치심을 다 겪었던 하늘이었다. 이번에 써야 할 충전 부적 역시 만만치 않은 시련을 예고하고 있었다.

“야, 로그! 제발 부적 이름 좀 평범하게 설계하면 안 돼? 꼭 그걸 써야 하냐고!”

— 지금 네 기운에선 그 주문 이름만큼 도력을 확실하게 이끌어내는 파형이 없어. 이름도 부적 그 자체란 말이다. 그리고 다른 부적들은 기운이 많이 들어서 지금 천기패 화면에 새로 그리지도 못해. 이거 보조 부적이라 단번에 100%로 완충되는 건 아니야. 일정 시간 동안 기운을 야금야금 지속적으로 공급해 주는 완속 충전 기능이거든? 이거라도 미리 켜두고 완충막을 깔아놔야 다른 하급 부적들을 천기패에 새로 그려 넣을 기운이라도 벌 수 있어.

부적의 효능을 설명하는 로그의 목소리는 자신의 도술 설계에 대한 일말의 의심도 없이 지극히 진지하고 덤덤했다. 도사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영혼을 갈아 넣은 수치심을 감내해야 한다는 로그의 촉구에 하늘은 이를 악물었다. 주문을 크고 정확하게 외쳐야 천기패 센서가 인식한다.

하늘은 눈을 질끈 감았다. 주먹을 부르르 떨며 지하실이 떠나가라 목청을 높였다.

“개…… 개이득! 충전부적 발동오오옹!!”

축축한 지하실 벽을 타고 하늘의 절규 섞인 주문이 메아리쳤. 개이득…… 이득…… 득…….

하늘이 언제나처럼 밀려드는 창피함에 얼굴이 터질 듯이 새빨개져서 바닥을 발로 쾅쾅 구르는 사이, 천기패 화면에 황금색 이펙트가 소소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늘의 귓가로 로그의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나직하게 흘러나왔다.

— 거봐, 되잖아. 수고했다, 어쩔도사. 아주 우렁차고 좋았어.

“아, 시끄러워! 조용히 해! 놀리지 마!”

하늘은 쥐구멍이 있다면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매번 부적을 쓸 때마다 겪는 일이지만, 로그가 ‘배터리’ 대신 ‘어쩔도사’라는 명칭으로 쓱 바꾸어 부르며 짚어주는 묘한 뉘앙스에 굴욕감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몸서리를 치는 와중에도, 충전 부적이 발동되자 미세하고 따뜻한 기운이 손끝을 타고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로그가 완벽하게 설계해 둔 영혼을 갈아 넣은 이름의 완속 충전은 확실하게 작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축축하고 곰팡내 나는 지하실의 무거운 공기 사이로, 천기패 화면에서 뻗어 나온 미세한 황금빛 연기가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가습기 연기마저도 감성적으로 보이기 마련이거늘, 이 연기는 어쩐지 ‘개이득’이라는 희대의 굴욕 명칭을 품고 있어서인지 하늘의 코끝으로 스며들 때마다 묘하게 킹받는 주황빛 기운을 뿜어내는 듯했다. 하지만 로그가 설계한 [개이득 충전부적]의 효험만큼은 확실했다. 요괴를 마주하고 얼어붙을 것 같던 손가락 마디마디에 따스한 온기가 사르르 돌기 시작하자, 하늘은 그제야 잔뜩 웅크렸던 어깨를 펴고 막혔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야, 로그. 그래도 기운이 좀 들어오는 것 같긴 하다. 손가락 끝이 간질간질한 게 몸이 살짝 가벼워졌어.”

하늘이 콧물을 훌쩍이며 천기패 화면을 톡톡 두드리자, 화면 중앙에서 빛나던 푸른 불빛이 마치 아침 조회 시간 교장 선생님의 안경알처럼 번뜩이며 깜빡였다.

— 좋아할 때가 아니야, 어쩔도사. 방금 그 눈물겨운 주문으로 완속 충전을 겨우 켜두긴 했지만, 이건 밑 빠진 독에다가 스포이트로 실개천 물 한 방울씩 톡톡 붓는 격이야. 네 천기패 배터리는 지금 겨우 42%를 아슬아슬하게 턱걸이하고 있다고.

“그니까! 42%면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쇼츠를 한 시간은 넘게 볼 수 있는 대용량이잖아! 이 정도면 하급 도술 몇 개는 넉넉히 쓰지 않냐? 튕겨내고 막고 다 하겠구만!”

하늘이 가슴을 팡팡 치며 도사 꿈나무 특유의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펼치자, 로그가 기가 찬다는 듯 인공지능도 아니면서 기계음보다 더 싸늘하고 한심하다는 쯧쯧 소리를 액정 너머로 길게 뱉어냈다.

— 착각하지 마, 배터리. 네가 앞으로 써야 할 대형 도술들, 예컨대 저번부터 머리 싸매고 준비했던 ‘와이파이’나 네 부실한 다리뚱둥이를 강화해 줄 ‘딜리트’ 같은 실시간 기술들은 도력 소모량이 거의 에어컨 세 대 동시 가동 수준이야. 너처럼 기운 연비가 8기통 덤프트럭 급인 초딩 몸뚱이로는 한두 번만 삐끗해도 바로 방전이라고. 배터리 0% 되면 나랑 같이 데이터 저승길로 직행하는 거 알지? 지금은 느긋하게 의자 깔고 앉아서 하급 부적들을 새로 그려 저장해 둘 시간적, 심적 여유가 눈곱만큼도 없어.

“뭐? 부적도 못 만들어? 그럼 저 안에 있는 시커먼 요괴랑 맨몸으로 타이틀 매치라도 하라고? 야, 이건 아동 학대야!”

하늘이 경악하며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린 채 지하실 깊은 복도 쪽을 바라보았다. 컴컴한 복도 저 멀리서 스으으으…… 척…… 스으으으…… 척…… 하는, 들어 본 자만이 안다는 공포의 마찰음이 고막을 긁어댔다. 지하 급식실 요괴가 제 몸만 한 거대 국자를 바닥에 박박 질질 끌며 이쪽으로 런웨이를 걷듯 다가오는 발소리였다. 당장이라도 어둠 속에서 붉은 안광을 부릅뜬 요괴가 국자를 치켜들고 돌진할 것 같아, 하늘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자진모리장단으로 쫙 흘렀다. 미리 그려서 쟁여둔 든든한 부적 한 장 없는 맨주먹 상태에서 적을 맞이해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은, 13세 초딩 도사의 간당간당한 심장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 진정해라, 어쩔도사. 원래 진정한 고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고, 부적을 미리 저장해 두지 못했다면 현장에 굴러다니는 아이템을 써서 가성비 극강의 효율을 뽑아내면 되는 법이지.

“현장에 있는 무기? 야, 눈을 씻고 찾아봐라. 여기에 먼지 쌓인 시멘트 조각이랑 쥐똥 묻은 배관 말고 뭐가 더 있어? 이걸 던져서 맞추냐?”

하늘이 이리저리 발길질을 하며 투덜대자, 천기패의 화면이 한 번 더 요란하게 반짝였다.

— 정답이야. 만물 할아버지의 고물상에서 네가 챙겨온 개사기 템들 중에서 기가 막힌 게 하나 짱박혀 있거든. 그걸로 이 지하실 전체를 거미줄처럼 엮어서 거대한 ‘진법’을 펼칠 거야. 적을 우리 안방 구역으로 끌어들여서 무한 버퍼링 걸어놓고 영혼까지 털어버리는 작전이지.

로그의 안 보이는 목소리에서 홈쇼핑 완판 쇼호스트 같은 자신만만한 확신이 철철 넘쳐흘렀다. 하늘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손바닥에 땀이 배어나는 천기패를 더욱 꽉 쥐었다. 비록 손안에 쥔 저장된 부적은 전멸했고 배터리 잔량은 가슴 떨리게 위태로웠지만, 로그의 골 때리면서도 파격적인 작전 브리핑을 듣고 나니 지하실의 서늘한 공기 속으로 굴욕감을 이겨낸 묘한 긴장감과 초딩 특유의 오기가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진법이고 안방이고 간에, 당장 그 기막힌 템이 뭔지 말이나 해봐! 숨넘어가겠네 진짜!”

하늘은 등 뒤에서부터 목덜미를 타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축축하고 음산한 기운에 닭살이 돋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하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철국자 긁는 소리는 아까보다 한 옥타브는 더 날카롭고 신경질적으로 변해 있었다. 스으으으윽…… 쾅! 스으으으윽……. 요괴가 이쪽의 기척을 완벽하게 눈치채고 쿵쾅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게 분명했다. 당장이라도 어둠을 뚫고 괴물이 들이닥칠 것 같은 일촉즉사의 상황이었지만, 로그는 천기패 화면 가득 아주 느긋하게 깜빡이는 커다란 화살표 아이콘을 띄우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 뭐 그리 서둘러, 어쩔도사님. 진정하고 네가 메고 있는 그 보조가방 지퍼부터 열어봐. 그리고 손을 깊숙이 찔러 넣어봐. 아까 만물 할아버지가 고물상에서 우리가 나설 때 쓱 챙겨주셨던 거 있잖아.

“할아버지가 챙겨주신 거? 아, 맞다! 그 주머니에 넣어둔 거!”

하늘은 다급하게 등 뒤에 매고 있던 메신저 가방을 앞으로 휙 돌려 지퍼를 직 열었다. 할아버지가 고물상 문앞에서 “요긴하게 쓰일 게다”라며 은밀하게 쥐여주셨을 때는 솔직히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전설의 영약이나 고대 마법 주문서 같은 엄청난 보물인 줄 알았다. 하지만 먼지 섞인 가방 구석탱이를 허우적거리며 더듬다가 손끝에 걸리는 까칠까칠하고 길쭉한 뭉치를 끄집어낸 순간, 하늘의 입이 어이없다는 듯 떡 벌어졌다.

“야…… 로그. 너 지금 진짜 나랑 장난하냐?  이게 무기라고? 이걸로 싸우라고?”

하늘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치켜든 것은 동네 철물점이나 시골 고추밭 기슭, 혹은 이삿짐 트럭 뒤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샛노란 나일론 끈 뭉치였다. 심지어 새 제품도 아니었다. 어디서 쓰다 남은 걸 대충 손발로 둘둘 말아놓은 모양새라, 끝부분은 실밥이 올풀린 채 풀풀 풀려 고물상 마당의 매캐한 흙먼지까지 잔뜩 머금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아파트 분리수거 날 노끈 버리는 함으로 직행해야 마땅할 비주얼의 쓰레기였다.

— 왜, 내 눈엔 아주 기가 막히게 잘 빠진 명기(名器)로 보이는데. 비주얼이 우리 도사님의 고결한 자존심을 또 사정없이 스크래치 냈나 보지?

“스크래치 수준이 아니라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린 수준이거든! 요괴는 자기 몸뚱이만 한 시커먼 철국자를 들고 돌진해 오는데, 나는 이 꼬질꼬질한 노란 노끈 한 뭉치 들고 뭘 어쩌라는 거야! 가서 요괴랑 고무줄놀이라도 하랴? 아니면 기차놀이?”

하늘이 억울함과 황당함이 뒤섞인 목소리로 지하실벽이 울려라 왁왁대자, 천기패 화면 속 로그의 푸른 불빛이 장난기를 싹 지우고 지극히 진지한 파형을 그리며 반짝였다. 화면 픽셀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모습이 마치 훈장 선생님의 엄숙한 얼굴 같았다.

— 쯧쯧, 하여간 보이는 껍데기만 믿고 판단하는 초딩의 한계란. 그게 그냥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노끈 쪼가리로 보이냐? 만물 할아버지가 보통 분이 아니시라는 건 너도 고물상에서 겪어봐서 알 텐데. 그 노란 끈은 할아버지가 수십 년 동안 그 신비로운 고물상 안에서 온갖 기운이 담긴 물건들을 묶고, 고정하고, 다스릴 때 쓰시던 유서 깊은 물건이야. 한마디로 할아버지의 묵직하고 단단한 도력이 아주 은은하게, 하지만 뼈대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영물(靈物)이란 말씀이지.

“만물 할아버지의 기운이…… 진짜로 이 끈에 있다고?”

하늘은 로그의 진지한 팩트 폭격에 투덜거리던 입을 다물고, 샛노란 끈 뭉치를 다시 찬찬히 내려다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집중하자, 그저 거칠고 뻣뻣하기만 한 줄 알았던 나일론 표면 위로 아주 미세하게 아지랑이 같은 투명한 파동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손바닥을 기분 좋게 간지럽히는 찌릿찌릿한 전기 같은 잔상이 잔잔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 그래, 이제야 좀 알아채네. 네가 아까 온갖 수치심을 다 갈아 넣어서 겨우 켜놓은 [개이득 충전부적]이 주스 한 팩 겨우 나오는 임시방편용 미니 보조배터리라면, 이 나일론 끈은 네 손끝에서 나올 도력을 단 한 방울의 누수도 없이 지하실 전체로 초고속 뿜어내 줄 '초고속 광랜 케이블'이야. 네 약해 빠진 초보 도력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을 넘어, 공간에 고정해 몇 배로 증폭시켜 줄 최고의 진법 재료라고. 할아버지가 다 뜻이 있어서 챙겨주신 거니까 의심하지 마.

로그의 상세하고도 과학적인(?) 장비 설명에 하늘은 침을 꼴깍 삼켰다. 할아버지가 내어주신 꼬질꼬질한 노란 노끈이 갑자기 무협지에 나오는 전설의 신물이나 초현대식 첨단 하이테크 장비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13세 소년의 단순한 뇌가 로그의 현란한 말솜씨에 완벽하게 설득당한 순간이었다.

— 자, 장비 브리핑이랑 약 팔기는 여기까지. 확인 끝났으면 이제 군말 말고 몸 쓸 시간이야, 어쩔도사. 내가 지금부터 네 망막 시야에 실시간으로 최적의 네트워크 노드를 찍어줄 테니까, 군대 유격 훈련하는 것처럼 정신없이 뛰면서 이 끈을 연결하는 거다. 알겠어?

어둠 속에서 마침내 요괴의 거친 가래 끓는 듯한 숨소리가 지하실 콘크리트 벽을 타고 웅웅 울리며 코앞까지 다가왔다. 하늘은 침을 한 번 더 삼키고는, 노란 나일론 끈을 마치 목숨줄이라도 되는 양 손에 땀이 나도록 꽉 움켜잡았다. 준비된 부적은 없고 배터리는 위태로웠지만, 할아버지가 주신 끈과 로그의 설계가 있다면 해볼 만하다는 도사 꿈나무의 오기가 지하실의 서늘한 공기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뜀박질 시작해, 어쩔도사! 3시 방향 보일러 배관!”

천기패 너머로 들려오는 로그의 날카로운 도술적 호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늘의 시야가 기이하게 뒤틀렸다. 컴컴하고 칙칙하던 지하실 허공 위로, 마치 신비로운 도사들의 비급에나 나올 법한 은은한 푸른빛의 도력 점들이 징검다리처럼 둥둥 떠오른 것이다. 로그가 천기패의 영묘한 기운을 빌려 하늘의 망막에 실시간으로 짚어준 진법의 연결점, 즉 ‘네트워크 노드’의 궤적이었다.

“으아아아! 몰라! 나 잡히면 저승길 길동무는 무조건 너다!”

하늘은 만물 할아버지가 챙겨주신 샛노란 나일론 끈의 한쪽 끝을 녹슨 보일러 배관에 대충 둘둘 감아 투박하게 매듭을 지었다. 손가락 사이로 거친 녹가루와 먼지가 서각거리며 사정없이 묻어났지만 털어낼 시간 따윈 없었다. 복도 저 모퉁이 너머로 콘크리트 벽면을 가득 채우는 거대하고 음산한 그림자가 일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다음 연결점은 11시 방향, 벽면에 붙은 낡은 소화전 손잡이야! 야, 배터리! 속도 안 올려? 적의 접근 속도가 아까보다 훨씬 빨라졌다고! 다리뚱뚱이 좀 빨리빨리 놀려봐!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 말고 네가 나와서 대신 묶든가! 이 잔소리꾼아!”

하늘은 지하실 바닥에 사방으로 널브러진 깨진 시멘트 덩어리와 정체 모를 고물 부속품들을 야생의 고라니처럼 폴짝폴짝 뛰어넘었다. 가뜩이나 먼지가 가득한 지하실에서 전력 질주를 하려니,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목구멍에서 피 맛 섞인 단내가 풀풀 풍겼다. 초등학교 6학년 체육 시간 셔틀런(왕복 오래달리기) 때도 이토록 필사적으로 뛰어본 적이 없었다. 소화전 앞으로 슬라이딩하듯 슬쩍 미끄러진 하늘은, 로그가 짚어준 붉은 도력 마크 위에 노란 끈을 교차해 단단히 동여맸다. 운동화 코가 낡은 콘크리트 바닥에 쓸려 하얗게 까졌지만 아플 겨를도 없었다.

쿵! 쿵! 스으으으윽…….

마침내 모퉁이를 완전히 돌고 지하 급식실 요괴가 그 육중하고 기괴한 자태를 완전히 드러냈다. 뿜어져 나오는 허연 김 사이로 거대한 철국자를 든 채, 시뻘건 안광을 번뜩이며 하늘을 노려보는 요괴의 위압감은 초딩 도사가 감당하기엔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였다. 요괴가 큼지막한 입을 벌려 지하실이 떠나가라 기괴한 포효를 내지르자, 지하실 벽면 전체가 웅웅 울리며 하늘의 고막을 사정없이 때렸다.

— 쫄지 마, 강하늘! 시선 뺏기지 말고 다음은 중앙의 콘크리트 기둥이야! 기둥을 크게 한 바퀴 감아 돌아서 반대편 배수관으로 끈을 던져 연결해!

“엄마야……! 살려주세요!”

요괴가 부자연스러운 듯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국자를 치켜들고 성큼성큼 다가오자, 하늘은 척추가 오싹해지는 공포 속에서 나일론 끈 뭉치를 가슴에 꼭 안고 기둥을 향해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렸다. 요괴의 집채만 한 덩치에 비하면, 꼬질꼬질한 노란 노끈 한 뭉치를 들고 지하실 구석구석을 허우적거리며 뛰어다니는 6학년 초딩의 모습은 애처롭다 못해 눈물겨운 꼴이었다. 마치 거대한 포식자 거미를 피해 제 몸에서 필사적으로 실을 뽑아내 배치를 짜는 서툰 아기 거미의 형국이었다.

“으랴아아! 기둥 감기 완료! 다음은 어디야, 어디냐고! 빨리 짚어!”

이마에서 폭포수처럼 흐른 땀방울이 눈을 찔러 시야가 흐릿하고 따끔거렸지만, 하늘은 셔츠 소매로 눈가를 벅벅 닦아내며 로그가 망막에 새로 띄워준 푸른 점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배관에서 기둥으로, 기둥에서 다시 소화전과 바닥의 녹슨 철근 고리로. 하늘의 손길이 가쁘게 닿을 때마다, 만물 할아버지가 챙겨주신 노란 끈은 지하실의 복잡한 구조물들을 거미줄보다 더 촘촘하게 엮어 나갔다.

숨이 정수리 끝까지 차올라 당장이라도 바닥에 대자로 주저앉고 싶었지만, 손끝을 통해 은은하게 전해지는 할아버지의 묵직하고 단단한 기운과 천기패 안에서 실시간으로 진형의 파형을 연산해 이끄는 로그의 기운이 하늘의 다리를 강제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 마지막 노드다! 저기 구석에 있는 배수관 밸브에 단단히 묶고 중앙으로 탈출해! 그럼 진형이 닫힌다!

“끝이다, 이 괴물 떡대야! 맛 좀 봐라!”

하늘은 마지막 남은 도력을 손끝에 쥐어짜며 배수관 밸브에 노란 끈의 끄트머리를 결사적으로 꽉 매듭지었다. 그와 동시에 팽팽하게 당겨진 노란 나일론 끈들이 지하실의 상하좌우, 허공을 정교하게 가로지르며 마치 거대한 입체 거미줄이나 정밀하게 짜인 도력의 회로판 같은 촘촘한 물리적 네트워크를 완성해 냈다. 암흑천지였던 지하실 한가운데, 드디어 요괴를 사로잡을 거대한 첫 번째 진법의 ‘선’들이 완벽한 진형을 갖추고 숨죽인 채 맥동하기 시작했다.

 

“다, 다 묶었다! 야, 로그! 나 진짜 무릎 연골 가출하기 직전이거든? 이제 어떡해? 다음 단계 빨리!”

하늘은 자리에 멈춰 서서 양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폭포수 같은 숨을 몰아쉬었다. 허파 뒤쪽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웠고, 목구멍에서는 동전이라도 삼킨 듯 쇠 맛이 풀풀 풍겼다. 이마에서 눈썹을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이 눈자위를 사정없이 찔러대어 시야는 온통 눈물 가득한 가을 안개처럼 흐릿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초등학교 6학년에게 주어지는 달콤한 쉬는 시간 따위는 이 축축한 지하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늘이 필사적으로 엮어놓은 노란 나일론 끈 진형의 바로 정중앙에서, 지하 급식실 요괴가 콧구멍으로 허연 김을 씩씩 뿜어내며 마침내 제 몸만 한 철국자를 무지막지하게 치켜들었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머리통을 때려 부술 기세로 내리꽂히는 요괴의 일격을 마주한 순간, 하늘의 심장은 서랍에 발가락을 찧었을 때보다 대략 100배는 더 사정없이 덜컥거렸다.

— 지금이야, 어쩔도사! 네 손가락으로 천기패 화면에 실시간 도술 문양을 직접 그려 넣는 거다! 내 기운의 흐름을 똑바로 따라와!

로그의 고함과 동시에 천기패 액정 위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기묘한 선의 궤적이 흐릿한 파란 빛으로 나타났다. 평소처럼 미리 도력을 낭랑하게 써서 깔끔하게 저장해 둔 하급 부적의 이름을 크게 외쳐 발동하는 편리한 방식이 아니었다. 적이 코앞까지 들이닥쳐 국자 바람을 쌩쌩 일으키는 이 촉박한 순간에, 오직 자신의 손가락 끝으로 도술의 설계도를 실시간으로 한 땀 한 땀 그려내야만 하는 위험천만한 백지시험이었다. 조금이라도 선이 삐끗하거나 수전증 때문에 멈칫하면 도술은 그대로 펑 불발되고, 간당간당한 배터리만 날린 채 요괴의 쇠국자에 정타로 인디언 밥을 맞을 판이었다.

“으아아, 떨지 마! 수전증은 할머니나 오는 거라고! 내 손가락아 제발 움직여라!”

하늘은 영혼을 출가시킨 눈빛으로 천기패 화면 위에 손가락 끝을 대고 사정없이 비벼대기 시작했다. 부채꼴 모양으로 겹겹이 퍼져나가는, 일상생활에서 매일같이 보던 너무나도 익숙한 ‘와이파이 안테나’의 형상이었지만, 도술로서 짜인 그 문양은 곡선의 미세한 각도와 획의 굵기마다 영혼의 엑셀 연산을 요구하는 정밀한 도력의 집합체였다. ‘어쩔티비’를 외칠 때의 창피함과는 결이 다른, 실기 시험 전광판을 마주한 초딩의 쫄깃한 긴장감이 온몸의 털을 바짝 곤두세웠다.

그 순간, 기이하다 못해 소름이 쫙 돋는 감각이 하늘의 온몸을 관통했다. 조금 전 [개이득 충전부적]을 통해 혈관 구석구석으로 야금야금 미세하게 공급되던 따스한 도력들이, 마치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먼지들처럼 오른쪽 팔뚝을 타고 단숨에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운들이 손가락 끝으로 무섭게 뭉치더니, 천기패 액정을 타고 스마트폰 내부로 찌릿찌릿하게 쪽쪽 빨려 들어가는 생생한 감각이 손가락 마디마디를 타고 전해졌다. 마치 내 몸이 거대한 빨대에 꽂혀 에너지를 강탈당하는 듯한 기분 좋은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그, 그려졌다! 통했다! 받아라, 이 국자 요괴야!”

마지막 가장 굵은 부채꼴 곡선을 화면 상단에 벼락치기 하듯 강렬하게 그어 내림과 동시에, 하늘은 지하실 천장이 무너져라 목청껏 주문을 내질렀다. 가창시험 때도 이보다 크게 소리를 질러본 적은 단언컨대 없었다.

“와이파이(歪移波利)!! 접속 완료오오오!!”

하늘의 절규 섞인 외침이 지하실 벽을 때리기 무섭게, 천기패 화면에서 눈이 멀 것 같은 강렬한 푸른빛의 폭발이 펑 일어났다. 그리고 그 푸른 빛줄기들은 하늘이 온 지하실 구조물에 눈물겹게 묶어놓았던 노란 나일론 끈의 매듭을 타고 사방으로 사납게 번개처럼 뻗어 나갔다.

파지직! 파직! 웅웅웅웅—!

꼬질꼬질하고 더러웠던 노란 노끈들이 푸른 도력을 가득 머금자, 마치 시골 장터의 야시장 조명선처럼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일제히 공명하기 시작했다. 푸른 기운이 흐르는 끈들은 더 이상 평범한 노끈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하실의 허공을 3차원으로 가르는 정교한 도력의 혈관이 되어, 상하좌우를 격자무늬로 촘촘히 메웠다. 끈과 끈이 교차하는 점마다 푸르스름한 기운의 불꽃이 튀어 오르더니, 이내 지하실 전체에 투명하면서도 팽팽한 도력의 막이 겹겹이 쳐졌다.

마치 거대한 컴퓨터의 메인보드 회로 속에 들어온 듯, 지하실 바닥과 천장, 벽면을 잇는 수천 개의 푸른 선이 기하학적인 무늬를 그리며 요동쳤다. 음산했던 지하실은 순식간에 찬란한 푸른빛의 결계로 뒤덮였고, 그 빛의 그물망은 요괴의 발밑을 옥죄며 공기를 무겁게 눌러버렸다. 침입자에게 무한 로딩의 지옥을 선사하겠다는 듯 팽팽하게 맥동하는 푸른 결계의 빛이 요괴의 시뻘건 안광을 정면으로 받아치며 지하실을 가득 메웠다.

 

“크롸아아아아아—!!”

하늘이 외친 찬란한 주문과 동시에 사방으로 뻗어 나간 푸른 도력의 회로망을 보며, 지하 급식실 요괴는 일순간 기가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요괴는 요괴였다. 녀석은 이내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털며 시뻘건 안광을 다시금 부릅떴고, 제 몸뚱이만 한 거대 철국자를 헬리콥터 프로펠러처럼 빙글빙글 돌리며 앞으로 성큼 뛰어들었다. 당장이라도 하늘을 국자 바닥으로 납작하게 눌러 누룽지처럼 만들어 버리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돋보이는 돌격이었다.

“히익! 온다, 온다! 야, 로그! 와이파이 켰는데 왜 저 상태로 직진해 오냐고! 결계가 고장 난 거 아냐?!”

하늘은 등 뒤의 콘크리트 벽면에 등을 바짝 붙인 채,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은 표정으로 비명을 질렀다. 요괴의 묵직한 발걸음이 푸른 선들이 거미줄처럼 가로지르는 진법의 경계선을 막 넘어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쿵…… 즈어…… 억…….

갑자기 지하실의 시간축이 기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무섭게 돌진하던 요괴의 거대한 몸뚱이가, 마치 엘리베이터 안에서 동영상을 틀었을 때처럼 화면이 완전히 굳었다가 툭 튕기듯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 어라?”

하늘이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요괴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국자를 머리 위로 치켜든 채 앞으로 나아가려는데, 몸은 앞으로 가고 싶어 하지만 진법 구역에 가득 찬 푸른 도력의 간섭 때문에 공간 전체가 요괴의 움직임을 거부하고 있었다. 요괴가 오른발을 내딛는 순간, 발이 허공에서 뚝. 뚝. 뚝. 멈췄다가 한참 뒤에야 바닥에 쿵! 하고 떨어졌다. 스마트폰 화면 한가운데에 동그란 로딩 표시가 뜨면서 화면이 먹통이 되었을 때나 볼 수 있는 기이한 끊김 현상이었다.

— 풋하하하! 봤냐, 어쩔도사? 이게 바로 우리 와이파이 진법의 무한 로딩 지옥이다! 저 녀석 지금 기운의 주파수가 완전히 꼬여서 뇌에서 내리는 명령이랑 몸뚱이 출력 타이밍이 안 맞고 있는 거야!

천기패 안에서 로그의 자지러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요괴는 상상을 초월하는 이 기괴한 현상에 엄청나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녀석은 어떻게든 이 답답한 공간을 뚫고 나가보겠다는 듯, 시뻘건 얼굴로 콧김을 뿜으며 억지로 철국자를 휘둘렀다.

“크, 크롸…… 아…… 아…… 악………!”

포효 소리마저도 소리가 안 터져서 끊기는 것처럼 뚝뚝 끊겨서 들려왔다. 요괴가 국자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두르는 과정은 눈물겨울 정도로 대단했다. 국자가 허공에서 움직였다가, 갑자기 정지 화면처럼 멈췄다가, 다시 툭 튀어나오듯 다음 동작으로 순간 이동하기를 반복했다. 마치 와이파이가 한 칸만 떠서 실시간 방송 화면이 지직거리며 정지하는 불쌍한 꼴이었다.

하늘은 무서움도 잠시 잊은 채, 제 앞에서 뱅글뱅글 도는 가상의 로딩 창에 가로막힌 것처럼 버퍼링 댄스를 추고 있는 요괴를 보며 슬금슬금 입꼬리를 올렸다.

“와…… 대박. 야, 로그. 저 요괴 지금 완전히 화면 멈춤 상태 맞지? 쇼츠 넘기다가 데이터 끊겨서 무한 대기 타는 내 모습 같은데?”

방금 전까지 오줌을 지릴 뻔했던 6학년 초딩 도사는 어디 가고, 이제는 팔짱까지 턱 끼고 요괴의 눈물겨운 멈춤 동작을 구경하는 여유까지 부리기 시작했다. 푸른 빛의 진법 공간 안에서 요괴는 제 기운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발버둥을 쳤지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나일론 끈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도력들이 녀석의 주파수를 사정없이 교란하며 더 심한 화면 멈춤 현상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쿠우우웅—!!
지하실 바닥을 통째로 긁어내며 무한 버퍼링 댄스를 추던 지하 급식실 요괴의 시빨건 눈에 무시무시한 핏발이 와작 섰다. 어떻게든 이 지독한 렉의 굴레를 스스로의 괴력으로 탈출하고야 말겠다는 요괴 특유의 눈물겨운 발악이었다. 녀석은 굳어버린 온몸의 근육을 터질 듯이 쥐어짜며, 뚝뚝 끊기는 화면 속 프레임을 오직 무지막지한 힘 하나로 강제로 짓누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정지 화면 같던 거대 철국자가 사나운 잔상을 그리며 공간을 찢고 내려앉았다.
“크아아아아악! 맛없으면! 퇴식구에! 버리지! 마아아아라!!”
비록 내뱉는 대사는 다소 유치 찬란한 급식실 영양사 선생님의 단골 잔소리 같았으나, 그 국자에 실린 파괴력만큼은 진짜배기였다. 진법의 노란 선들이 터질 것처럼 팽팽하게 비명을 질렀고, 요괴의 초강력 일격이 하늘의 머리통을 향해 일직선으로 떨어졌다.
“어? 어어?! 야, 로그! 렉 풀렸잖아! 화면 완전히 정지라며! 내 연골 다 갈아가며 뛰어다녔는데 이게 무슨 사기극이야!!”
하늘은 등 뒤의 벽에 등 가죽이 달라붙을 정도로 바짝 붙은 채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당장 주머니를 다 털어봐도 미리 쟁여둔 든든한 방어용 하급 부적은 단 한 장도 없었다. 요괴가 국자를 크게 치켜올렸다가 내리꽂는 그 짧은 몇 초의 찰나, 오직 실시간으로 부적을 직접 액정에 그려내어 곧바로 터트려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타이틀 매치였다.
그때, 천기패의 액정 너머로 느티나무가 전해준 푸른 빛의 데이터들이 일제히 점멸하기 시작했다. 수백 년간 학교를 지켜보며 모든 움직임을 기록해온 '살아있는 블랙박스'가 요괴의 궤적을 실시간으로 분석해내고 있었다.
— 멍 때리지 마, 어쩔도사! 화면 봐! 놈이 국자를 치켜올릴 때 어깨가 떨리는 틱(Tick) 현상이 보이지? 바로 그때가 옆구리가 비는 시간이야! 단 0.5초라고!
로그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하늘의 눈앞에 요괴의 움직임이 마치 프레임 단위로 쪼개진 것처럼 느릿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국자를 머리 위로 치켜든 요괴의 왼쪽 옆구리. 그곳에 데이터가 가리키는 붉은색 타격 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0.5초... 좋아, 이번엔 진짜 데이터만 믿는다!”
하늘은 본능적으로 몸을 숙여 첫 번째 국자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콰강—! 지하실 콘크리트 바닥이 박살 나며 파편이 튀었지만, 하늘은 멈추지 않았다. 요괴가 미친 듯이 연달아 국자를 휘두르는 두 번째, 세 번째 궤적을 데이터가 예고한 '예측 무빙'으로 아슬아슬하게 흘려보냈다.
드디어 세 번째 휘두름이 끝난 찰나, 요괴의 거구에 아주 짧은 숨 고르기 딜레이가 발생했다. 놈의 왼쪽 옆구리가 텅 비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 지금이야! 저장할 시간 없어! 하급 부적은 이름을 외쳐야 발동되는 거 알지? 빨리 이름 대고 바로 쏴버려!
하늘의 손가락이 액정 위를 미친 듯이 휘저었다. 사선으로 꺾고 동그라미 두 개,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운을 응집시키는 획을 그었다. 문양이 완성되자마자 천기패가 눈부신 황금빛을 내뿜으며 기술명을 요구했다. 하늘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요괴보다 더 붉게 달아올랐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자기가 지은 이름이 너무 창피해 입이 떨어지지 않은 탓이었다.
"아, 진짜... 꼭 이걸 내 입으로 말해야 하냐고...!"
— 빨리 안 해? 머리통 깨지고 싶어?!
로그의 재촉에 하늘은 눈을 질끈 감고 지하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받아라! '어쩔티비 저쩔부적 무지개 반사'—!!"
파지직—! 쾅!!
하늘의 외침과 동시에 천기패에서 뿜어져 나온 황금빛 충격파가 정확히 요괴의 옆구리 급소를 직격했다. 단순한 타격이 아니었다. 느티나무가 가르쳐준 약점에 정밀하게 꽂힌 데이터 기반의 일격이자, 놈의 공격 에너지를 그대로 되돌려주는 완벽한 반격이었다. 요괴는 억눌렀던 렉이 다시 도진 것처럼 온몸을 비틀거리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자신이 내뱉은 기술명의 민망함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하던 하늘은, 먼지 구덩이 속에서 다시금 기괴한 기운을 내뿜으며 몸집을 불리는 요괴를 보고 서둘러 천기패를 고쳐 잡았다. 창피함은 잠시였지만, 놈의 분노는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우어어어어어—!!”

황금빛 냄비 뚜껑 방어막에 국자를 정타로 얻어맞고 엉덩방방이를 찧었던 지하 급식실 요괴가 먼지 구덩이 속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존심에 제대로 스크래치가 난 녀석의 몸집이 분노로 인해 아까보다 1.5배는 더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요괴는 이대로는 물러설 수 없다는 듯, 큼지막한 입을 찢어지게 벌리더니 기괴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오오오옹— 파아앗!

그 순간, 요괴의 시커먼 몸뚱이에서 검은 연기 덩어리들이 수십 개씩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연기들은 지하실 바닥에 닿자마자 찌그러진 식판, 이 빠진 뚝배기, 손잡이가 부러진 뒤집개 등 온갖 기괴한 형상을 한 하급 분신들로 변해 뼈다귀처럼 달그락거리며 날뛰기 시작했다. 수십 마리의 주방 도구 분신들이 지하실을 가득 메우며 하늘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자, 방금 전 굴욕적인 주문의 여운에서 채 깨어나지 못했던 하늘의 눈이 달걀만 해졌다.

“엄마야! 저건 또 뭐야! 무슨 급식실 설거지통이 통째로 복사됐잖아!”

하늘은 사방으로 증식하는 주방 도구 요괴들의 면상을 보다가, 문득 며칠 전 학교 옥상에서의 기억이 벼락처럼 뇌리를 스쳤다. 전학 온 윤이슬 앞에서 가오를 잡으려다 요괴에게 쫓겨 개망신을 당했던,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그 잔혹한 기억 속의 요괴들. 지금 제 발밑을 기어 다니는 시커먼 뒤집개 요괴들이 바로 옥상에서 자신과 이슬이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그 녀석들과 판박이처럼 똑같았던 것이다.

— 어쩔도사, 대충 눈치챘지? 저번에 옥상에서 윤이슬이랑 같이 맞닥뜨렸던 그 꼬맹이 녀석들도 다 이 급식실 요괴 본체가 뿜어낸 하급 분신 찌꺼기들이었어! 학교 전체를 야금야금 먹으려고 사방에 정찰대를 뿌려둔 거지. 머릿수만 많지 알맹이는 텅 빈 놈들이니까 쫄지 마! 진법의 흐름을 봐! 저 녀석들이 사방으로 기운을 흩트리는 바람에 오히려 진형의 중앙이 텅 비었어. 지금이 타이밍이다!

천기패 너머 로그의 날카로운 분석이 하늘의 귓전을 때렸다. 로그의 말대로 요괴가 분신들을 사방으로 뿜어내느라 무리하게 도력을 분산시킨 탓에, 날뛰는 분신들 사이로 기운의 통로가 일직선으로 훤히 뚫려 있는 게 보였다. 옥상에서의 치욕을 이슬이 대신 갚아줄 기회가 마침내 온 것이다.

— 화면에 거대한 거절의 표식을 그려! 사선으로 교차하는 두 개의 선! 이번엔 저장할 시간도, 주문을 외치며 수치심을 견딜 시간도 없다! 네가 유일하게 몸으로 익힌 그 실전 기술을 쓰는 거야!

“아, 그거! 이름은 진짜 현대식인데 알고 보면 무지막지하게 아날로그인 그 기술!”

하늘은 침을 꿀컥 삼키며 천기패 액정 위에 손가락을 대고 대각선으로 크게 두 번, 거대한 ‘X’자 문양을 사정없이 그어 내렸다. 화면을 쪼갤 듯이 강렬한 궤적이 붉은 빛을 발하며 완성되는 순간, 천기패에 고여 있던 도력이 하늘의 두 다리로 단숨에 쏟아져 내렸다.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이 마치 스프링처럼 팽팽하게 압축되는 생생한 감각이 전해졌다.

“가자아아아! 딜리트(地履理特)—!!”

하늘은 지하실 콘크리트 바닥을 부서져라 힘차게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단어만 들으면 스마트폰의 ‘삭제(Delete)’ 버튼을 누르는 스마트한 기술 같지만, 한자를 풀이하면 ‘땅 지(地)’, ‘밟을 리(履)’, ‘이치 리(理)’, ‘특이할 특(特)’. 즉, 땅의 이치를 기묘하게 밟아 도약을 극대화하는 무지막지한 육체파 즉시 시전 도술이었다. 학교 체육 시간 제자리높이뛰기 때는 고작 30cm도 겨우 넘기던 6학년 초딩의 몸뚱이가, 도술의 힘을 빌리자 지하실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높이 솟구쳐 올랐다.

“다 삭제해 버리겠어!!”

허공에 떠오른 하늘의 발끝에서 거대한 붉은색 ‘X’자 모양의 도력 파동이 부메랑처럼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회전하며 몰아쳤다.

콰과과과광—! 콰직! 바스락!

공중에서 하강하며 하늘이 땅을 강하게 내딛는 충격파와 함께, 거대한 X자 도술 파동이 사방으로 날뛰던 주방 도구 분신들을 정확하게 정타로 쓸어버렸다. 옥상에서 저를 쫓아왔던 원수 같은 뒤집개 녀석들도, 찌그러진 식판과 이 빠진 뚝배기 요괴도 붉은 빛의 궤적에 닿기가 무섭게 마치 컴퓨터 휴지통에 들어가 소멸하듯 ‘바스락’ 소리를 내며 검은 먼지가 되어 흔적도 없이 깨져 나갔다.

수십 마리의 분신들이 단 한 방에 사방으로 분쇄되어 공중으로 흩날리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먼지 구덩이 한가운데에 투박하게 착지한 하늘은, 다리가 살짝 후들거려 중심을 잡느라 허우적거리긴 했지만, 제 손으로 수많은 적들을 단숨에 쓸어버린 생생한 도술의 위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비록 폼 나게 착지하려다 낡은 시멘트 바닥에 엉덩이를 찧을 뻔했지만, 요괴의 분신들을 완벽하게 소멸시킨 초딩 도사의 눈앞에는 드디어 본체인 지하 급식실 요괴의 당황한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딜리트!”의 충격파로 분신들을 쓸어버린 하늘이 착지했지만, 상황은 기대만큼 깔끔하게 종료되지 않았다. 딜리트로 본체인 요괴를 직접 타격하려 했던 계획과 달리, 요괴는 교묘하게 뒤로 물러나며 철국자가 찌그러지는 것을 감수하고 방패 삼아 버텼다. 더욱 큰 문제는 진법이었다. 요괴의 몸을 휘감아야 할 푸른 나일론 끈들이 마치 자석의 같은 극끼리 만난 것처럼 요괴의 몸 근처에서 웅웅거리며 튕겨 나가고 있었다.

“야, 로그! 다 묶인 거 아니었어? 왜 끈들이 요괴 근처에서만 헛발질을 하냐고!”

하늘은 당황하며 천기패를 들여다보았다. 분명히 진법의 선 위로 푸른 도력이 흐르고 있었지만, 요괴의 움직임은 아까보다 조금 더뎌졌을 뿐 여전히 국자를 휘둘러 올릴 수 있을 만큼 자유로웠다. 완전한 결계가 작동하지 않은 상태였다.

— 젠장, 어쩔도사! 주파수가 안 맞아! 네가 방금 쓴 ‘어쩔티비 저쩔부적’의 방어 기운이랑 나일론 끈에 걸어둔 ‘와이파이’ 도술의 파장이 서로 간섭을 일으키고 있어! 두 힘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하는데, 지금은 서로 밀어내면서 진법의 효율을 깎아먹는 중이라고!

머릿속을 찌르는 로그의 외침에 하늘은 식은땀을 흘렸다. 초보 도사답게 급하게 이것저것 도술을 쏟아붓다 보니, 도력의 성질들이 지하실 안에서 제멋대로 엉켜버린 것이었다. 요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금 국자를 고쳐 잡으며 돌진할 기세를 보였다.

“그럼 어떡해! 설정값이라도 바꿔야 하는 거야?”

— 설정이고 뭐고 직접 조정해야 해! 천기패 화면에 흐르는 도력의 선을 봐. 나일론 끈에서 올라오는 파동이랑 네 손끝의 기운이 일직선이 되도록 조율해! 어떤 정해진 틀을 찾지 말고, 네 감각으로 그 선들의 흐름을 하나로 묶으란 말이야!

하늘은 로그의 말대로 눈을 가늘게 뜨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푸른 선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천기패 액정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이번에는 새로운 문양을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진법에 흐르고 있는, 제멋대로 날뛰는 도력의 파형을 손가락 끝으로 직접 붙잡아 부드럽게 다듬기 시작했다.

마치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듯, 혹은 엉킨 실타래를 조심스럽게 푸는 느낌으로 하늘은 화면 위의 도력 선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정렬시켰다.

“제발…… 맞춰져라, 맞춰져라……!”

손가락 끝을 타고 전해지는 찌릿한 진동이 어느 순간 매끄러운 공명음으로 변했다. 불협화음을 내던 진법의 기운들이 하늘의 손가락 끝에서 하나의 거대한 파동으로 합쳐지는 순간, 지하실 전체를 메우던 푸른 빛이 일순간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해졌다.

위잉— 콰악!

주파수가 완벽히 정렬되자마자, 요괴 주변에서 겉돌던 나일론 끈들이 마침내 제 자리를 찾았다. 수십 가닥의 끈들이 마치 굶주린 뱀처럼 순식간에 쇄도하여 요괴의 사지를 옭아맸다. 이번에는 아까와 달랐다. 끈이 닿는 곳마다 푸른 도력의 고리가 요괴의 피부 깊숙이 박히며, 녀석의 시간 자체를 정지시킨 것처럼 완벽한 화면 멈춤 상태로 몰아넣었다.

“크, 크으…… 으…….”

요괴는 국자를 든 채 그대로 박제된 동상처럼 굳어버렸다. 손가락 하나, 눈동자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완벽한 구속이었다.

“후우…… 하아……. 됐다. 진짜 잡은 거 맞지?”

하늘은 그대로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땀에 젖은 앞머리가 눈을 찔렀지만 닦을 힘조차 없었다. 무릎 위에 놓인 손은 도력의 과부하로 인해 잔잔하게 떨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자신이 설치한 진법과 실시간 도술을 조화시켜 거둔 성공이었다.

— 오~ 어쩔도사. 방금 주파수 맞추는 거 좀 쳤는데? 수치심만 잘 견디는 줄 알았더니 제법 섬세한 맛이 있어.

생생하게 들려오는 로그의 얄미운 목소리에 하늘은 붉어진 얼굴로 허공을 향해 투덜거렸다.

“……시끄러. 나 진짜 죽을 뻔했다고. 이제 빨리 나가서 이슬이한테 도우미 부르자.”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천기패를 챙기려던 그 순간이었다.

드드드득…… 콰과광!

갑자기 꽁꽁 묶여 있던 요괴의 몸 깊은 곳에서부터 불길한 시커먼 진동이 다시금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완전히 정지된 줄 알았던 요괴의 눈동자가 기괴하게 뒤집히며, 나일론 끈에 가로막힌 기운을 억지로 폭발시키려는 듯 지하실 바닥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잡아두었다고 생각한 결계의 틈새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며 끈들이 팽팽하게 비명을 질렀다.

— 어쩔도사, 조심해! 이 녀석 본체의 진짜 힘은 이게 끝이 아니야! 결계를 깨고 강제로 폭주하려고 해!

“뭐?! 여기서 더 날뛴다고?!”

하늘은 다급히 천기패를 움켜쥐었지만, 이미 바닥난 도력으로는 억지로 버티는 요괴의 마지막 발악을 완전히 찍어 누를 재간이 없었다. 지하실 문 너머로 다급한 발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요괴의 시커먼 기운이 다시 한번 크게 요동치며 지하실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더 거대한 위기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