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고 모기가 꽤 있었지만 따뜻한 방에서 깊이 잠들었던 우리는 멀리서 들리는 신음소리에 잠을 깼다. 조금씩 정신이 깨어나자 그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신음소리가 아니라 울음소리라는 것을 느꼈다. 그것도 흐느끼는 것이 아니라 통곡을 하는 소리였다. 소리는 한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통곡 소리가 한데 섞여있는 울림이었다.
예상치못한 상황을 만나면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욱 커진다. 살짝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큰 강당에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통곡을 하며 울고 있었다. 게중엔 무릎을 꿇은 상태로 제자리에서 계속 뛰는 사람들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은 독실한 믿음이라기보다 광기로 보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기도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종파가 있단다. 하지만 잘 모르고 보는 사람에겐 두려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잘못해서 우리를 끌어들이려고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인사도 없이 서둘러 도망쳐나왔다.
포항을 떠나려는데 재현의 자전거가 또 말썽을 일으켰다. 이번엔 다른 바퀴가 펑크나버린 것이다. 이른 아침은 아니었지만 주말 오전이라 수리점을 세군데 돌아다녔지만 없었다. 결국 수리점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서 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싸게 중고자전거를 샀지만 싼게 비지떡이라고 자꾸 고치니 수리비가 자전거 가격보다 비싼 것 같았다.
구룡포로 갈 때는 해안도로를 따라 힘들게 갔는데 올 때 31번 국도를 타니 단숨에 지나갔다. 반나절 고생하며 걷고 달리며 갔던 길을 40분만에 가로질렀다. 포항을 지나칠 때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 무리가 있었다. 복장을 제대로 갖추고 안전모에 지도며 잡다한 것들을 다 갖추고 출발한 자전거여행 팀. 자전거 뒤쪽엔 대학 깃발까지 달고 달렸는데 포항대학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포항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세명으로 이루어진 그 팀은 포항을 시작으로 전국일주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포항에서 경주로 가는 7번 국도는 아주 평탄하고 거의 평지에 가까울 정도로 완만한 내리막길로 되어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엔 최고의 길이었다. 다만 곳곳에 동물들의 사체가 있었고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재현이를 기다리느라 시간이 조금씩 지체되었다. 빠른 속도로 계속 달려도 바람의 저항 때문에 생각처럼 속도감을 즐기기는 어려웠다. 맞바람때문에 숨쉬기도 힘들었고 시야도 조금씩 흐려졌다. 그렇게 열심히 달릴 필요는 없는 길이었지만 적은 노력으로 많이 갈 수 있다는 장점을 놓치고 싶지 않아 열심히 달렸던 기억이 난다.
경주에 도착할 무렵엔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경주에 도착하여 공원에 잠시 짐을 내려놓고 있는데 포항에서 만났던 자전거 여행객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신 앞서 달렸는데 길을 잘못 들어섰는지 우리보다 늦게 도착했다. 배가 고팠던 우리는 회비를 털어서 뻥튀기를 사먹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일었으나 돈을 남겨서 뒷풀이로 시원한 맥주한잔 하기로 약속하고 욕구를 버텨냈다.
경주는 벗꽃놀이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자전거 타기도 좋은 곳이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기거나 미니바이크를 빌려서 타기 좋은 곳들이 많이 보인다.
비가 잦아들자 우리는 다시 대구를 향해 전립선에 고통을 가했다. 그날은 하루종일 소나기가 내리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경주를 지나면서 재현이는 기어 조절방법을 터득하여 더이상 뒤쳐지지 않게 되었다. 비가 와서 국도는 더욱 위험해 보였다. 커다란 트럭들이 옆을 지날 때마다 트럭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달리다보니 무준이가 보이지 않았는데 알아서 잘 오겠지 하며 속도를 조금 줄여 달렸다. 한참이 지나도 따라오지 못하자 다 같이 멈추어 무준이를 기다렸다. 그때 무준이는 빗길을 달리다 넘어졌고 바로 옆을 트럭들이 질주하는,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꽤 충격적인 경험이었는지 그 이후부터 무준이는 어서 집에 가고싶다는 말만 반복했다.
내 자전거는 선배에게 공짜로 받은 자전거인 만큼 제대로 관리가 되어있지 않은 자전거였다. 기어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는데 빗물이 들어가자 더욱 뻑뻑해졌다. 힘이 들었지만 기어조절 없이 달리기엔 무리가 있는 도로라 억지로 힘을 줘서 기어를 변속하자 결국 부러져버렸다. 마침 마을이 보여 자전거를 수리하고 가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곳이 영천이라고 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그곳의 중심가로 보였는데 반갑게도 자전거 수리점이 보였다. 자전거 전문점은 아니고 손수레며 농기구 장비들을 모두 다루는 곳이었는데 출장수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무지 기뻤다.
오른쪽 기어 수리비는 8천원. 안이 녹슬어 있었다고 한다. 점심을 먹긴 했지만 무더웠던 그날 팥빙수가 너무 먹고 싶어 근처 제과점을 찾았다. 역시 팥빙수라면 제과점에서 찹쌀떡을 넣어주는 것이 진짜 아니겠어? 빙수를 하나씩 먹고나니 사람들 맛보라고 놔두는 빵이라면서 빵을 잔뜩 줬다. 맛있게 먹으니 몇개 더 줬는데 결국 배가 불러서 다 먹진 못했다. 영천의 인심은 기분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영천을 벗어나 계속 4번 국도를 따라갔다. 가는 길에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지만 쉴만한 곳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가기로 한 우리는 비상등 없이 어두운 날 자전거를 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지 실감했다. 날이 저무니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길에 가로등이 있긴 했지만 꽤 멀리 떨어져 있었고, 비가 온 다음이라 안개까지 껴 있었다. 지도가 없던 우리는 안내 표지판에 의지하여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도 하면서 경산에 도착했다.(그곳이 경산이 맞는지 기억이 확실치 않다.)
경산에는 마땅히 잘만한 곳이 보이지 않아서 역사 안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늦은 밤이긴 해도 조금 더 달리면 대구까지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만에 대구까지 가는 것은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하룻밤을 더 지내기로 했다. 역에는 노숙자 너댓명과 가출 청소년으로 보이는 애들이 두어명 있었다. 그곳에서 서로 이야기도 하며 밤을 지내려고 했는데 막상 자려고 하니 잠이 오질 않았다. 결국 잠을 포기하고 TV도 보고 이야기도 하면서 밤을 새기로 했다.
그렇게 밤이 흘러 새벽 2시가 되자 역무원이 다가왔다. 역을 닫아야 하니 나가라고 한다. 예상치못한 상황이었지만 말 잘듣는 우리로써는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영천에서 구입한 5백원짜리 우의를 입고 있으니 꽤 따뜻했다. 벤치에 지붕이 있어 비는 피할 수 있었다. 그곳에 쭈구리고 앉아 살짝 잠이 들었다. 그땐 스무살 때였으니 그랬지만 지금은 비오는 날 노숙하라고 하면 힘들 것 같다. 꽤 힘든 상황이었는데 집이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푸근했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