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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 신고계도협의회 “낯선 사람 보면 신고, 땅굴 견학”… 정권 바뀐 뒤 국가보안법 연행·구속, 민간 사찰 줄이어

▣ 춘천=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강원 춘천시 한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경수(가명)씨는 지난 4월 말 경찰서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신고계도협의회’를 만들려고 하는데 모임에 참석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지난 5월2일 한 음식점에서 회의가 열렸다.


△ 총선을 앞두고 부하 경찰관들과 함께 여권 실세인 이재오 의원 지역구를 방문해 지역 유지들과 함께 식사를 한 사실이 드러난 어청수 경찰청장(맨 왼쪽). 그가 총수에 취임한 뒤 공안경찰의 움직임이 부쩍 늘어났다. 지난 3월26일 경찰청에서 어 경찰청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박종식 기자)

“일단 가봤어요. 신고계도협의회가 뭔지도 모르고, 궁금하기도 하잖아요. 리마다 농민들이 한 명씩 참석했는데, 춘천경찰서 보안과 형사가 나와서 간첩 얘기를 참 많이 하더라고요. 요새도 간첩이 많다, 그런데 간첩이 들어와도 잡기가 어렵다, 간첩들은 인터넷으로 손쉽게 북에 보고를 할 것이다, 뭐 그런 말들이었죠. 결론은 동네에서 낯선 사람이나 차량을 보면 곧바로 신고해달라는 것이었어요. 땅굴 견학도 갈 예정이고, 회원증을 만들어줄 테니 반명함판 사진도 제출하라고 하더군요.”

“서장 판단으로 좀더 활성화”

모임에 다녀온 김씨는 “우습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고 말했다. 요즘처럼 하루하루가 급변하는 세상에 경찰이 ‘간첩신고 타령’이나 하고 있는 모양새가 우스웠다면, 하필 보안과가 전면에 나서 ‘신고 조직’을 만든 배경에 뭔가 음흉한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는 것이다. 가볍게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사안이었다. 그는 “(도시 사람들에게는) 요새 시대에 이런 것을 만든다는 게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농촌은 다르다. 시골에서는 한 동네에 살면 서로 뻔히 아는 사이인데,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신고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주민들 사이에 불신과 반목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경찰로부터 참여 제안을 받은 농민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런 이유를 들어 ‘그런 일을 내가 왜 하냐’고 불쾌해하며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렇듯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작지 않은 파문을 일으킨 신고계도협의회라는 것은 사실 크게 새삼스러운 제도는 아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한창 운용됐던 ‘멸공신고계몽요원’이 그 전신이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경찰은 ‘공산당을 때려잡고 간첩을 때려잡자’며 마을마다 멸공신고계몽요원이라는 신고 전담 요원들을 지정하고 모임을 운영했다. 80년대 중반께 신고계도요원으로 이름이 다소 순화됐지만, 요원들은 동네에서 무시 못할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지난 5월18일 춘천에서 만난, 복숭아 과수원을 운영한다는 한 60대 농민은 “옛날에는 경찰이 마을마다 정보요원을 하나씩 뒀다. 그 사람들이 동네에서 술 먹고 시끄럽게 하거나 사이가 안 좋은 사람들을 경찰에 신고해 당사자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도록 하기도 했다. ○○리에서는 당시 경찰 신고요원이었던 주민과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던 주민이 지금도 술만 마시면 서로 싸운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씨 또한 “동네에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 가운데 상당수는 신고 조직을 기억하고 계셨는데, 대부분이 삼청교육대에 보낼 사람들을 여기서 정했다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병찬 춘천경찰서장은 “요새 치안 상황이 불안하다는 말도 있고 농산물 절도나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 적지 않아, 이런 경우 곧바로 신고해달라는 취지에서 하려는 일”이라며 “위에서 따로 지침이 내려온 것은 아니고, 서장 판단으로 좀 활성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농촌 마을에는 이미 면 단위마다 이장단협의회가 있어 행정적인 사안들이 전달되고 있으며, 경찰 지구대를 중심으로 꾸려진 생활안전협의회를 통해 각종 사건·사고 신고가 이뤄지고 있다. ‘일반 범죄 신고라면 왜 형사과나 생활안전과가 아닌 보안과가 나서냐’는 질문에 이 서장은 “이미 (보안과 밑에) 조직이 있었던 것이기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덕분에 안 팔리던 <사회주의자> 나가

이명박 정부의 과거 회귀, 공안 중시 바람을 타고 지난 독재정권 시절 활동하던 간첩신고 주민조직까지 재건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 서장의 설명대로라면, 신고계도협의회 재건은 경찰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아니다. 실제 다른 지역 경찰관들은 “웬 신고계도협의회냐?”라며 일반 시민들만큼이나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경찰의 분위기를 보면, 춘천의 사례는 전혀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다. 최근 들어 어린이 납치 미수 사건 신고를 받고도 미적거리거나 택시 트렁크 안에 숨어 있던 현금수송차 탈주범을 놓치는 등 민생 치안에 연달아 ‘구멍’이 나는 상황에서도 유독 공안 분야는 활동의 폭을 넓혀왔기 때문이다.

지난 2월11일 어청수 경찰청장 취임 뒤 열흘이 채 안 돼 송현아(34)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선전위원장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으며, 며칠 뒤에는 전교조 소속 김형근(49) 교사와 윤기진(33) 범청학련 남쪽본부 의장이 잇따라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고 구속됐다. 5월 초에는 노점상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조덕휘 전국빈민연합 집행위원장이 한밤중에 경찰청 보안과 소속 형사들에게 연행되기도 했다.

민간 사찰도 부쩍 활성화됐다. 18대 총선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3월 말 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이 강금실 당시 통합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과 대운하 반대모임 소속 서울대 교수들을 사찰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뒤이어 ‘그날이 오면’과 ‘풀무질’ 같은 대학가 사회과학 서점에 대한 사찰이 강화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 서점 김동운 대표는 “(정권교체가 기정사실화된) 지난해 말부터 정보과 형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부쩍 자주 서점을 드나들며 각종 운동단체들이 펴낸 기관지나 소식지 등을 사갔다”며 “이 덕분에 평소에 전혀 팔리지 않던 <사회주의 노동자>와 <사회주의자> 같은 서적이 여러 권 팔렸다”고 말했다.

이런 정황들은 공안경찰의 활발한 움직임이 정권 교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관측을 뒷받침한다. 문성호 한국자치경찰연구소장은 “일제시대에 독립군 때려잡고 해방 이후엔 공산당 때려잡기 위해 만든 조직이 경찰 정보·보안과인데, 정권 교체와 더불어 또다시 정권과 경찰 총수 개인의 안위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아무리 외부에서 비판을 하더라도 경찰 수뇌부는 꿈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백골단과 민간사찰 부활 등을 두고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격렬하게 반발했지만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서 대국민 사과까지 하게 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를 두고서도 “배후를 수사하겠다”며 떳떳이 여론에 맞설 정도였다. 이는 물론 정권의 묵인 또는 지원이라는 뒷심이 있기에 가능이다. 이런 점을 뒷받침하듯, 최근엔 어청수 경찰청장이 총선을 두 달여 앞둔 지난 1월 말 권력 실세인 이재오 의원의 지역구(서울 은평을)에서 지역 유지, 은평구청장, 전·현직 은평경찰서장 등과 모임을 가진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지율이 바닥이니 할 일은 더 많고…

이명박 정부의 잇따른 실정으로 국정 지지율이 바닥을 기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공안경찰은 더욱 할 일이 많아질 전망이다. 전북 전주에서 정보과 형사가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신고를 낸 고등학생을 수업시간에 불러내 조사해 문제가 된 경우가 대표적이다.

오창익 경찰청 인권위원(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대통령이 시켜서인지 경찰 스스로 코드를 맞추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권 교체를 전후해 경찰청에서 내건 구호대로 경찰이 새롭게 달라지긴 달라졌다”며 “다만 달라진 방향이 오로지 정권 안위만을 위한 5공 경찰로의 회귀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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