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bluelimn 2008.05.04 00:16
노숙을 해서인지 일찍 출발하게 되었다. 이미 대구 근처라 별로 힘들 것도 없었지만 도착지가 가까워지니 발이 가벼워졌다. 가는 도중에 안경을 떨어뜨려서 거의 망가지기도 했지만 그날만큼은 큰 사고없이 대구에 도착했다. 도착했을 때 11시도 채 되지 않았다. 마지막인데 남은 돈이 꽤 있어서(마지막 날에 시원한 맥주나 한잔 하려고 아껴뒀었다) 아침겸 점심은 사먹기로 했다. 도로변에 있는 아무렇지도 않은 음식점에 순두부 찌개를 먹었는데 꽤 감동적인 맛이었다. 같이 목욕도 하고 술도 한잔 하고 노래방에서 즐기다가 집에 가............ㄹ 예정이었으나 너무 이른 시간이라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우선 목욕탕을 찾았는데 잘 보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그날이 화욜이라 대부분의 목욕탕이 쉬는 날이었다. 어째서 같은 날 똑같이 쉬는건지..
다 같이 목욕탕이나 가고 싶었는데 그게 무산되자 무준이가 계속 집에 가고싶다고 보채기 시작했다. 아...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갈 때는 체력이 빵빵하니 3일잡고 돌아올 땐 엉금엉금 기어서 4일로 하자고 했건만 돌아올 때 무리했음 하루만에, 널널하니 이틀만에.. 그것도 오전에 도착해버렸으니 갈 곳도 없고 할 것도 없었다.
뭔가 특별한 뒷풀이를 원했지만 그날은 정말 피곤했는지 다들 집으로 흩어져버렸다.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마치고 나니 몸이 완전 나른해졌다. 5일만에 아들 보신 어머니의 소감은 '살은 안찌고 다리면 더 굵어져서 왔네'였다.

스무살.. 뭘 해도 좋게 봐줄 수 있는 풋풋한 시기여서 가능한 여행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가자면 갈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좋게 봐주는 사람은 많지 않을듯..

우리가 대구에 도착한 날 저녁부터 그해 여름 내내 비가 내렸다. 여름 내내 거의 하루도 쉬지않고 비가 내린 해는 내가 기억하는 한 그때 뿐이었다. 한여름에 보일러를 틀기도 했을 정도였으니 일찍 여행을 다녀온 것이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문득 포항에서 경주까지 같이 갔던 대학 팀이 생각났다. 그들의 전국일주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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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luelimn 2008.04.18 16:32
좁고 모기가 꽤 있었지만 따뜻한 방에서 깊이 잠들었던 우리는 멀리서 들리는 신음소리에 잠을 깼다. 조금씩 정신이 깨어나자 그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신음소리가 아니라 울음소리라는 것을 느꼈다. 그것도 흐느끼는 것이 아니라 통곡을 하는 소리였다. 소리는 한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통곡 소리가 한데 섞여있는 울림이었다.
예상치못한 상황을 만나면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욱 커진다. 살짝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큰 강당에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통곡을 하며 울고 있었다. 게중엔 무릎을 꿇은 상태로 제자리에서 계속 뛰는 사람들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은 독실한 믿음이라기보다 광기로 보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기도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종파가 있단다. 하지만 잘 모르고 보는 사람에겐 두려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잘못해서 우리를 끌어들이려고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인사도 없이 서둘러 도망쳐나왔다.

포항을 떠나려는데 재현의 자전거가 또 말썽을 일으켰다. 이번엔 다른 바퀴가 펑크나버린 것이다. 이른 아침은 아니었지만 주말 오전이라 수리점을 세군데 돌아다녔지만 없었다. 결국 수리점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서 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싸게 중고자전거를 샀지만 싼게 비지떡이라고 자꾸 고치니 수리비가 자전거 가격보다 비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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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로 갈 때는 해안도로를 따라 힘들게 갔는데 올 때 31번 국도를 타니 단숨에 지나갔다. 반나절 고생하며 걷고 달리며 갔던 길을 40분만에 가로질렀다. 포항을 지나칠 때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 무리가 있었다. 복장을 제대로 갖추고 안전모에 지도며 잡다한 것들을 다 갖추고 출발한 자전거여행 팀. 자전거 뒤쪽엔 대학 깃발까지 달고 달렸는데 포항대학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포항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세명으로 이루어진 그 팀은 포항을 시작으로 전국일주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포항에서 경주로 가는 7번 국도는 아주 평탄하고 거의 평지에 가까울 정도로 완만한 내리막길로 되어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엔 최고의 길이었다. 다만 곳곳에 동물들의 사체가 있었고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재현이를 기다리느라 시간이 조금씩 지체되었다. 빠른 속도로 계속 달려도 바람의 저항 때문에 생각처럼 속도감을 즐기기는 어려웠다. 맞바람때문에 숨쉬기도 힘들었고 시야도 조금씩 흐려졌다. 그렇게 열심히 달릴 필요는 없는 길이었지만 적은 노력으로 많이 갈 수 있다는 장점을 놓치고 싶지 않아 열심히 달렸던 기억이 난다.

경주에 도착할 무렵엔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경주에 도착하여 공원에 잠시 짐을 내려놓고 있는데 포항에서 만났던 자전거 여행객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신 앞서 달렸는데 길을 잘못 들어섰는지 우리보다 늦게 도착했다. 배가 고팠던 우리는 회비를 털어서 뻥튀기를 사먹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일었으나 돈을 남겨서 뒷풀이로 시원한 맥주한잔 하기로 약속하고 욕구를 버텨냈다.
경주는 벗꽃놀이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자전거 타기도 좋은 곳이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기거나 미니바이크를 빌려서 타기 좋은 곳들이 많이 보인다.

비가 잦아들자 우리는 다시 대구를 향해 전립선에 고통을 가했다. 그날은 하루종일 소나기가 내리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경주를 지나면서 재현이는 기어 조절방법을 터득하여 더이상 뒤쳐지지 않게 되었다. 비가 와서 국도는 더욱 위험해 보였다. 커다란 트럭들이 옆을 지날 때마다 트럭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달리다보니 무준이가 보이지 않았는데 알아서 잘 오겠지 하며 속도를 조금 줄여 달렸다. 한참이 지나도 따라오지 못하자 다 같이 멈추어 무준이를 기다렸다. 그때 무준이는 빗길을 달리다 넘어졌고 바로 옆을 트럭들이 질주하는,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꽤 충격적인 경험이었는지 그 이후부터 무준이는 어서 집에 가고싶다는 말만 반복했다.

내 자전거는 선배에게 공짜로 받은 자전거인 만큼 제대로 관리가 되어있지 않은 자전거였다. 기어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는데 빗물이 들어가자 더욱 뻑뻑해졌다. 힘이 들었지만 기어조절 없이 달리기엔 무리가 있는 도로라 억지로 힘을 줘서 기어를 변속하자 결국 부러져버렸다. 마침 마을이 보여 자전거를 수리하고 가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곳이 영천이라고 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그곳의 중심가로 보였는데 반갑게도 자전거 수리점이 보였다. 자전거 전문점은 아니고 손수레며 농기구 장비들을 모두 다루는 곳이었는데 출장수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무지 기뻤다.
 
오른쪽 기어 수리비는 8천원. 안이 녹슬어 있었다고 한다. 점심을 먹긴 했지만 무더웠던 그날 팥빙수가 너무 먹고 싶어 근처 제과점을 찾았다. 역시 팥빙수라면 제과점에서 찹쌀떡을 넣어주는 것이 진짜 아니겠어? 빙수를 하나씩 먹고나니 사람들 맛보라고 놔두는 빵이라면서 빵을 잔뜩 줬다. 맛있게 먹으니 몇개 더 줬는데 결국 배가 불러서 다 먹진 못했다. 영천의 인심은 기분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영천을 벗어나 계속 4번 국도를 따라갔다. 가는 길에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지만 쉴만한 곳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가기로 한 우리는 비상등 없이 어두운 날 자전거를 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지 실감했다. 날이 저무니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길에 가로등이 있긴 했지만 꽤 멀리 떨어져 있었고, 비가 온 다음이라 안개까지 껴 있었다. 지도가 없던 우리는 안내 표지판에 의지하여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도 하면서 경산에 도착했다.(그곳이 경산이 맞는지 기억이 확실치 않다.)

경산에는 마땅히 잘만한 곳이 보이지 않아서 역사 안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늦은 밤이긴 해도 조금 더 달리면 대구까지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만에 대구까지 가는 것은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하룻밤을 더 지내기로 했다. 역에는 노숙자 너댓명과 가출 청소년으로 보이는 애들이 두어명 있었다. 그곳에서 서로 이야기도 하며 밤을 지내려고 했는데 막상 자려고 하니 잠이 오질 않았다. 결국 잠을 포기하고 TV도 보고 이야기도 하면서 밤을 새기로 했다.

그렇게 밤이 흘러 새벽 2시가 되자 역무원이 다가왔다. 역을 닫아야 하니 나가라고 한다. 예상치못한 상황이었지만 말 잘듣는 우리로써는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영천에서 구입한 5백원짜리 우의를 입고 있으니 꽤 따뜻했다. 벤치에 지붕이 있어 비는 피할 수 있었다. 그곳에 쭈구리고 앉아 살짝 잠이 들었다. 그땐 스무살 때였으니 그랬지만 지금은 비오는 날 노숙하라고 하면 힘들 것 같다. 꽤 힘든 상황이었는데 집이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푸근했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 끝나가고 있었다.
posted by bluelimn 2008.04.01 16:06
도시 중심가를 벗어나 다시 도로를 달린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걱정이 되어 꿀호떡과 라면을 사서 짐칸에 달았다. 일반적으로 다리에 부담을 적게 주기 위해 베낭을 메고 자전거를 달리는데 우리는 덥기도 하고, 미약한 우리의 가랑이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짐은 싣고 다녔다.

포항시내를 벗어나 31번 도로를 타고 달리던 우리는 925번 도로를 만나 그 길을 따라갔다. 해변을 따라가면 오르막이 완만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 길을 선택했는데, 해안도로의 최대 약점은 평지가 없다는 것이다. 오르막과 내리막길만이 계속 이어졌다. 길게 이어진 내리막길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다리는 움직일 필요도 없이 상체를 숙이고 드는 것을 이용해 바람의 저항만으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내리막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만큼 올라가야 하는 지극히 당연한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했다. 925번 도로를 타는 동안 재현이가 계속 쳐졌고 나머지 3명은 속도를 즐기며 한참 가다가 재현이가 도착하면 다시 가버리기를 반복했다.(생각해보면 재현이는 쉬지않고 계속 달린 셈이다.)
평지랑 다르게 오르막이 많은 지형에서 자전거로는 멀리가지 못한다. 나중엔 오르막을 만나면 그냥 포기하고 걸어다녔다. 옆을 지나가던 스쿠터족이 부러워 스쿠터에 줄을 묶어 자전거를 끌고가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구룡포에 도착한 것은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아직 해가 떨어지진 않았지만 계속 달리다가 길에서 자게되는 경우는 피하고 싶었다. 잘 곳을 돌아다니며 '아무도 없는 학교에서 자는 것이 어떨까'하고 생각했지만 춥기도 하거니와 경비원이 있어 그냥 들여보내주진 않을 것 같았다. 우린 첫날을 생각하며 다시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커다란 성당이 있긴 했지만 성당은 어쩐지 외부로부터 굳게 닫혀진 기분이 들어 교회를 찾아갔다. 마침 아주머니 서너명이 나오고 있었다. 주말이라 집이 멀리 있는데 교회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마침 만났다며 하느님이 정해주신 뜻깊은 인연이라 믿고 싶어했다. 바로 앞 국밥집을 교인이 한다며 국밥을 사주려고 했는데 마침 문을 닫으려고 정리중이라 그곳에서 그냥 라면을 끓여줬다. 소금기 없는 빵만 먹다가 라면에 열무김치를 먹으니 살 것 같았다.

교회에는 합창단의 단복을 보관하는 작은 방이 있는데 그곳은 보일러 불도 들어온다며 그 방을 내어줬다. 다음날 새벽기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도 없는 교회를 우리에게 내어준 친절이 고마웠다. 그날은 그렇게 피곤한 몸을 뉘었다. 날씨가 흐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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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luelimn 2008.03.28 02:31
포항에 일찍 도착한 우리는 목적지인 포항에 도착한 기념으로 짜뽜게리를 해먹었다. 수퍼마켓에서 5개를 구입한 우리는 바로앞에 있는 평상에서 해먹을 생각이었으나 아지매가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해서 쫓겨났다. 놀이터에서 물을 구하고 길거리에서 라면을 끓이는 우리가 거지같았지만 그제껏 먹어본 짜뽜게리중 최고의 맛이었다. 축구하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병원 대기실에서 축구를 보고나니 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병원에서 잠을 잘 생각이었지만 대기자들 때문에 제대로 자긴 힘들겠다고 판단하여 잘만한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때 문득 생각난 것이 파출소였다. 역 바로 옆에는 파출소가 있었고 파출소엔 당직실과 남는 방이 한두개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우리는 파출소에 들어갔다.
그곳엔 두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한 명은 마른 체형에 조금 신경질적으로 생겼고, 다른 한명은 살이 좀 있었다.
잘 곳이 없어 하룻밤 재워달라고 하자 마른 사람이 가출한거 아니냐 무슨 나쁜짓하고 다니는거 아니냐면서 신경을 긁었다. 좀 지나치다 싶었는지 뚱뚱한 사람이 일단은 신원조회를 해봐야 하니까 신분증을 달라고 했다. 쭈뼛거리며 신분증을 건네자 마른 사람이 신원조회를 했고, 뚱뚱한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재현이와 같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란 것을 알게되었다.
그러나 갑자기 친한 척을 하면서 음료수와 컵라면을 내어줬다. 우린 이미 저녁을 먹어서 배가 부른 상태였지만 무쟈게 배가 고팠던 사람인양 맛있게 먹어줬다. 그러자 흐뭇해하며 아는 여인숙이 있다면서 그곳에서 하룻밤 지내라면서 전화도 해주고 숙박비도 대줬다.
그다지 돈내고 잘만한 곳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따뜻한 곳에서 자게되어 좋았다. 복도측 창문이 깨져있어 모기가 많았고 밤늦게 불러준 매춘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소란을 피우는 아저씨때문에 시끄럽긴 했지만 따듯한 곳에서 이불을 덮고 잔다는 것만으로 좋았다.
그런데... 너무 늦게 일어나버렸다. 10시 30분쯤 일어나 느릿느릿 준비를 하고 11시가 되어서야 나섰다. 여인숙에서 나선 것이지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꿀호떡과 쿨피스로 늦은 식사를 하고나니 12시가 다 되어갔다.
posted by bluelimn 2008.03.25 23:21

십자가 표시가 있기에 교회라고 생각했는데 교회는 앞에 따로 있고 그곳은 기도원이라고 했다. 남자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그 기도원의 강당으로 여겨지는 곳이었는데 온통 나무로 되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쉬고 갈라지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로 오셨는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다. 갑자기 바로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서 놀란 것도 있었지만 TV에서 보던 사이비 교수의 목소리와 엄청 흡사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길고 검은 머리에 창백해 보이는 인상의 여자였는데 작은 덩치에도 엄청난 포스가 느껴졌다.
이미 말을 꺼냈으니 용기를 내어 재워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미 온 사람을 내쫓을 수 없으니 사용하지 않는 방을 내어주겠다고 했다.
남자는 여자가 시키는데로 우리는 안내했다. 뒤쪽으로 돌아서 가니 커다란 컨테이너가 있었다. 남자는 그곳을 소개하는 종이 하나와 모기향, 그리고 얇은 이불을 두고는 조용히 사라졌다. 안내장에는 그곳의 이름과 함께 가정불화나 사업문제, 건강문제 등을 자기 기도원에서 기도하면 모두 해결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문제가 커질 수 있으니 그곳의 이름은 비밀~)
우리는 화재 위험때문에 독한 모기향을 머리쪽에만 두고 잠을 청했지만 그곳의 음산한 분위기 때문에 어서 나가고 싶었다.(곳곳에 원한은 품은 령은 어떤 령이고..하는 식의 낙서가 꽤 있었다.)

새벽... 아직 어둠이 지배할 시간 갑자기 눈을 떴다. 너무 추워서...
이불이 모자랐는데 잠결에 다들 이불을 돌돌 말아버리니 나만 이불없이 누워 있었다. 게다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창문이 열려 있었다. 워낙 큰 컨테이너여서 모르고 있었다. 창문을 닫고 다시 누웠는데 몸이 얼어서 잠이 오질 않았다. 6월의 마지막에...

6시쯤 그곳을 나섰는데 다들 몸이 얼어서 힘들어했다. 나서려고 인사를 하자 그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고 간다면서 방명록을 내밀었다. 이름, 주소 , 전화번호를 남기라고 했는데 겁에 질린 우리는 조금씩 다르게 적어버렸다. 생각해보면 아무런 대가없이 재워주고 이불도 주고 모기향도 줬는데 안좋게 생각하고 도망치듯 가버린건 정말 철이 없던 나이여서 그랬던 것 같다.

그날 아침은 919번 지방도로를 타고가다가 휴게소에 들러 빵과 우유먹었다. 그런 다음 4번 국도를 타고 열심히 가니 점심은 경주에서 먹을 수 있었다. 역시나 쿨피스를 샀고, 이번엔 꿀호떡 대신 소보로 빵을 샀다.
경주는 다 둘러보진 못했지만 가는 곳마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었다. 그런데 인도블럭으로 되어있는 곳이 많아서 자동차 도로를 타고 달리는 것이 더 안전하게 느껴졌다. 특수 자전거를 파는 상점이 곳곳에 보여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이미 걸인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버스 정류장에 있는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빨래까지 했다. 빨래는 짐 위에 덮어서 햇볕을 받으며 달리니 금방 말랐다.

경주를 벗어나 한참을 달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준과 재현의 자전거가 동시에 펑크가 났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길이라 자전거를 끌고 한참을 걸어 사람이 사는 동네까지 가서 그곳이 어딘지 물어보니 천북이라고 한다.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그곳은 자전거 수리점이 없다고 했다. 한달에 두번 출장수리가 오는데 며칠 더 있어야 한다고 그랬다.
우린 지도도 없었고 지리에 밝은 편도 아니라 그곳이 어딘지 감이오질 않았다. 모아 초등학교와 동국 휴게소가 있다는 것밖에..
114에 문의해서 가까운 자전거 수리점에 전화를 했더니 출장비로 3만원을 요구했다. 몇백원하는 패치와 휴대용 펌프만 있어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건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별수없이 와달라고 했다. 엄청 오래 기다렸다. 재현이 자전거는 타이어도 갈아야 겠다고 그러자 재현이는 바로 그러겠다고 했다.(출발할 때 검사할 땐 괜찮다고 그랬는데 이윤을 많이 남기려는 속셈 같아 싫었지만 본인이 그러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출장비를 제외하고 4만원이 나왔다. 상상도 못할 바가지였다.(패치를 붙일경우 개당 2천원이면 충분하다. 튜브를 가는 것도 5천원이다.) 아저씨는 인심쓰듯 5천원을 할인해줬다.

자전거 여행 시 주의: 애매한 곳에서 출장수리를 받아야 할 경우 해당 서비스를 이야기하고 가격을 합의한 다음 출장을 부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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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후에야 안 사실이지만 펑크가 난 곳은 경주도 벗어나지 못한 지점이었다

자전거를 수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힘껏 달려 포항에 도착했다. 그 때가 2002년이었다. 월드컵 열기로 다들 미쳐있을 때였는데 그날도 8시에 축구경기가 있었다. 그 경기를 보기위해 질주를 했더니 5시에 벌써 포항에 도착해버렸다.

posted by bluelimn 2008.03.21 01:49

난 고생을 많이 하는 여행을 좋아한다. 도보여행이나 자전거여행은 항상 생각만 해보고 실제로 해보질 못해서 친구들에게 우리도 한번 자전거여행을 해보자고 꼬셨더니 예상외로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목표는 무전여행이었으나 정말 무전여행을 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최소한의 금액으로 고생을 많이하는 여행을 즐겨보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처음 만난 난관은 자전거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돌아보니 4명 모두 자전거가 없었다. 난 대학 선배에게 3만원이었던 동아리 회비를 대신 내는 조건으로 자전거를 얻었다.(사실 3만원에 산 것으로 보면 된다.) 종환은 친척의 자전거를 낚았고, 무준은 자전거를 새로 샀으며(12만원 상당의 알통자전거였다.), 재현은 중고자전거를 샀다.(자전거는 3만5천이었는데 수리비가 꽤 들었다.)

천천히 무리하지 말고 일주일동안 포항이나 다녀오자는 우리의 여행! 자전거를 장만한 우리는 여행을 시작한 6월 28일 10시까지 두류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8시 30분에 벌써 도착했다는 종환이의 문자가 왔다. 재현이와 난 집이 가까웠기 때문에 9시쯤 만나서 같이 가기로 했다. 재현과 만난 시간은 9시 20분쯤이었는데 이미 기다리고 있을 친구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다급해졌다.

재현은 자전거를 타는 것이 익숙치 않은데다 자전거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안장이 흔들려서 더욱 느렸다. 다급해진 내가 자전거를 바꿨는데도 속도는 비슷했다.
두류공원에서 만나서는 다 같이 자전거 수리점에 들렀다. 짐을 실을 수 있도록 안장을 달고, 줄도 달고나서 자전거여행을 갈테니 이상이 있는 곳은 없는지 잘 봐달라고 했다. 자전거 수리점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전거에 대한 낭만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자전거여행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수리를 마치고 천천히 준비를 해서 떠나니 11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한여름 가장 햇살이 뜨거운 시간에 한시간가량 달리니 시작부터 힘이 빠졌다. 상인동에서 시작했는데 MBC사거리를 만나고부터는 힘이 빠져서 방향도 잘 모르겠고 힘도 빠지고 해서 쉴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오후 1시무렵 대구도 벗어나지 못하고 동남쪽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쉬기로 했다. 자전거 수리비를 제외하고는 돈을 쓰지 않는 것이 목표였기때문에 점심은 아주 간단히 먹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의 식사는 '꿀호떡+쥬시쿨'조합이었다.

한시간을 쉬고나서 달리니 의외로 길이 쉬웠다. 국도를 타고 갔는데 길이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저녁 6시쯤 되니 배가 고파서 라면 6개로 끼니를 떼웠다. 점심도 대충먹고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난 후라 진수성찬으로 느껴졌다. 지금도 라면은 자주 먹지만 그때만큼 맛있는 라면은 드물었다고 기억한다.

지도라고는 대구를 벗어나는 길을 프린트해온 종이가 고작이었는데 그것마저 대구를 벗어나면서 쓸모없는 이면지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달린 길은 25번 국도.. 국도는 대부분 가로방향은 짝수, 세로방향은 홀수로 표시한다고 한다. 25번 국도는 대구에서 경산까지는 동쪽을 향하지만 경산부터는 진해까지 남쪽만을 향해서 달리는 국도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어 따라가던 길을 버리고 919번 도로를 탔다. 난 이상하게도 평소엔 길도 방향도 모르다가 길을 잃으면 감이 좋아진다.
저녁을 먹고도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달리다가 시골에 십자가 표시가 있길래 첫날은 그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특별히 종교를 믿는 건 아니지만 종교단체가 그나마 지나가는 행인을 잘 재워줄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다들 가정집에 들어가서 재워달라고 할 만큼 능글맞진 못했다. (절에서도 자보고 싶었지만 자전거로 산에 있는 절을 찾아가기란 무리였다.)

입구에서 서성거리자 마침 관리자의 포스가 느껴지는 남자가 지나가다가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어본다. 자전거 여행 중이라고 말하며 포항에 가려고 한다고 그러니 길을 잘못 들었다며 길을 다시 알려준다. 그런 다음 잘 곳이 마땅히 없으니 재워줄 수 없느냐고 물으니 일단 들어오라고 권한다. 생각 없이 따라들어간 우리는 넓고 어두운 강당에 크게 적혀있는 그곳의 이름을 목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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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얼마 가지도 못했다